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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칠레를 배우자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국민연금은 과연 무엇인가? ‘사회복지’를 통해 노후생활을 보장해 주는 제도이지만 40여 년 뒤 연금 고갈사태가 예상되면서 우리 사회의 최대 이슈로 잠복해 있다. 누구나 국민연금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왠지 모를 ‘손해’의 위험이 있음을 감지한다. 직장인들은 월급을 탈 때마다 떼가는 국민연금을 ‘세금’처럼 착각한다. 우리나라 연금제도의 형태인 부과형(pay-as-you-go)의 위험성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의 대처 방법에는 속 시원한 게 보이지 않는다. 수장인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소위 금융전문가이고, 한두 개 임원 자리도 공모 형식을 빌려 어김없이 보건복지부 관료가 차지한다. 요즘엔 해외 부동산을 사들이고 새로운 자산운용 방식을 홍보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선 수익률이 0%라고 떠들면서 외국과 비교하면 마이너스는 아니니 이만하면 선방했다고 자화자찬한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연금 수익률이 은행 정기이자 4.6%에 못 미치면 실패한 것`이라고 단순하게 지적하는 사람조차 없다. 향후 2040년까지 2400조원까지 늘어날 국민연금. 그렇다면 총체적인 문제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우선 마인드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은 금융이 아니라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 세종시나 4대 강보다 훨씬 중요하고 심각하다. 연금의 출발점에는 ‘소득 재분배’라는 내용이 함의돼 있다. 대개 사회학적으로 비주류 구성원의 입장을 주류사회에 대한 대항적 차원에서 국가가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정책적 배려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여성, 노동자, 소외계층을 의식하다 보니 보수 입장에선 제도개혁의 틀로 접근하기가 어렵다. 반면 연금개혁의 항목, 즉 ‘수익률’ ‘민영화’ ‘연금 축소’ 등의 요소에는 진보 시각에서 수용될 수 없는 전략적 형태가 내재돼 있다. 보수든 진보든 어느 누가 소득 재분배와 평등, 더 많은 연금을 받자는 데 딴죽을 걸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 해답을 미완이지만 칠레의 개혁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1970∼80년대 칠레의 군부 독재자였던 피노체트는 장기집권 과정에서 인권유린을 자행한 독재자였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사회복지를 강조한 케인지언들이 판치는 상황에서 과감하게 프리드먼 식의 ‘작은 정부’를 수용해 신자유주의 이념을 정착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시장 위주 개혁을 염두에 두고 당시 30대 초반의 시카고학파 호세 피녜라를 노동부 장관에 임명한 다음, 연금개혁에 대한 모든 권한을 주었다. 젊은 피녜라는 이를 바탕으로 연금개혁에 성공했다. 피노체트를 얘기하면서 ‘연금개혁 부문’만을 부각해 군부독재를 미화시키고 ‘민영화 논리’에 정당성을 부여하자는 것은 아니다. 칠레 국민연금의 민영화 요체는 11개 민간연금관리회사(AFP)를 두고 개인은 자유선택·의무가입을 하되, 국가는 위법행위 등만 감독하며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국민연금의 태동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의 선심성 공약에서 비롯됐다. 우리 사회는 ‘모두 잘살게 된다’는 달콤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보 입장에서 보면 ‘연금 민영화’ 담론은 평등 개념을 무너뜨리는 시도일 수 있다. 만일 국민연금에 대해 사학연금·공무원연금·군인연금처럼 국가가 매년 지원해야 하는 사태가 온다면 ‘국가 재정 파탄’을 초래할 수 있는 사태까지 상상되지 않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 당국자,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금융적 사고’에서 ‘제도의 문제’로 인식이 전환될 때 성찰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때다. 그래야만 다음 세대에게 떠넘길 대재앙을 막을 수 있다.




김진태 경주 출생(51). 서강대 석사(영상)·박사(사회정책)학위를 땄다. 고속철도공단 언론팀장, 파이낸셜뉴스 상무이사, 새마을운동중앙회 정책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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