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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으론 진보 못한다

북한의 3대 세습을 놓고 제2의 종북주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2007년 대선 직후 민노당 내에서 불거진 종북주의 논쟁은 노회찬·심상정 등이 진보신당으로 분당하는 사태로 귀결되었다. 북한 핵실험을 용인하고 사실상 고려연방제를 뜻하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대선 구호로 내세운 민노당 내 친북세력과 더 이상 당을 함께할 수 없다며 한 지붕, 두 가족을 해체한 것이다.

민노당은 3대 세습에 대해 “우리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해도 북한의 문제는 북한이 결정할 문제”라며 ‘이해론’을 폈다. 이는 진보 주류로부터 나온 “국가의 운명을 유전자 재조합이라는 생물학적 우연에 맡기는 어리석은 일”(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명백한 역사적 반동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행위”(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나 현대 민주주의의 일반적 정신과는 상당한 거리”(진보신당)라는 비판론과 대조적이다. 이에 대해 민노당의 한 이론가는 “단순히 아들이 후계자가 돼선 안 된다는 단 한 가지의 논리만을 절대화하며 종북으로 몰지 말라”는 반론을 펼쳤다.

하지만 이미 ‘김씨 왕조’라는 말이 상식화되었듯이 북한 권력 세습은 우연한 선택이 아니라 제도로 고착됐다. 김정일 세습 당시만 해도 능력과 자질이 있다면 아들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김정일이 북한 체제를 철저히 망가트리면서 이는 웃음거리가 되었다. 김정은은 오로지 김정일의 아들이라는 생득적 기득권 때문에 후계자가 됐다고 볼 만한 충분한 근거가 존재한다. 김정은 후계 조짐은 2년 전부터 외부에 포착됐는데, 그가 불과 25세에 경쟁적인 방식의 지도자 검증과정을 통과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 애초부터 김정일은 다른 가능성을 배제한 채 아들 중에서 후계자를 고른 것이 확실하며, 북한에서는 ‘대를 이은 혁명위업’이라며 당연시하고 있다.

종북주의의 뿌리는 1980년대에 대학가에서 유행한 주사파 운동권(NL)이다. 사회주의 체제 붕괴의 충격으로 민중민주주의(PD)파가 급속히 약화되자, NL파는 좌파 운동권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그 때문에 진보진영 안에 주사파 잔존세력과 북한 체제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공존하면서 종북 논쟁이 표출되곤 해왔다. 진보 전반이 관용과 포용의 대북정책을 선호하는 데다, 보수에 대항하는 같은 편이라는 논리가 작용하면서 비정상적인 공존을 지속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종북과 반(反)종북의 공존은 진보=친북 이미지를 만드는 등 한국 진보세력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해왔다.

진보진영 인사들과 북한 문제를 논의하다 보면 몇 가지 인식을 공유하게 된다. 첫째, 북한 경제가 매우 낙후돼 남한과 수십 배의 격차가 나고 있다. 둘째, 북한에서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가 꽤 심각한 수준이다. 셋째, 김정일 개인의 강력한 독재체제가 형성돼 있는데 어떤 식으로든 개선이 필요하다. 넷째, 북한의 개혁·개방이 필요하다.

그러나 3대 세습이 이뤄진 지금, 김정일에 의한 개혁·개방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줘 체제 유지를 보장받겠다고 선택한 김정일이 변화를 꾀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좌우의 이념적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주제 중 하나는 북한 문제다. 하지만 종북세력을 논외로 하면, 보수·진보 진영의 북한 현실 인식은 공유점을 넓혀 갈 수 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진보적인 북한 민주화운동을 주창했는데, 이제 진보도 인권과 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유독 북한 체제에 대해 예외를 두려 한다는 오명을 벗을 때가 되었다. 종북과 진보는 양립할 수 없다.



홍진표 서울대 총학생회 사무국장, 범민련 간사 등을 역임하며 세 차례 투옥됐으나 1997년 이후 북한민주화운동과 뉴라이트운동을 펼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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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