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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중국 주식 투자의 신, 楊百萬

ⓒImagineChina
“생선 먹을 때 머리와 꼬리는 먹지 마세요. 중간 부분을 드세요(吃魚不吃魚頭和魚尾,吃魚中段).” 지난 9월 5일 중국 장시(江西)성 난창(南昌)의 시립예술극장. 한 중년 남자가 극장 1, 2층을 가득 메운 1500여 명의 청중을 상대로 강연하고 있었다. 하반기 증시 전망이 주제였다. ‘투자 강연에 웬 생선?’ 강사의 이어지는 말을 듣고서야 청중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증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적당히 올랐다 싶을 때 빠져나오세요. ‘머리(고점)’에 이를 때까지 먹겠다고 욕심부린다면 이미 먹은 것까지 토해낼 수 있습니다. 매입할 때에도 어느 정도 빠졌다 싶을 때 들어가세요. ‘꼬리(저점)’까지 내리기를 기다리다가는 기회를 놓치게 마련입니다. 증시에서도 몸통에 먹을 게 많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요.”양바이완(楊百萬·60). 그였다. 중국에서 ‘주식투자의 신(股神)’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청중들은 ‘신(神)’의 숨소리마저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세웠다. 강연 내내 탄식과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신’의 목소리를 노트에 꼼꼼이 적는 청중의 모습이 관영 CC-TV에 흘렀다.

사회주의 중국에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증시가 들어선 지 올해로 20년이다. 급등락이 심한 시장이었기에 ‘스타 투자가’도 많았다. 그럼에도 중국 투자가들이 유독 양바이완을 ‘신’으로 떠받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한우덕 기자

투자의 신

1987년 상하이의 허름한 한 철공소에 양화이딩(楊懷定)이라는 젊은이가 일하고 있었다. 한 달에 53위안(당시 환율 약 15달러)의 박봉이었지만 돈이 생기면 은행으로 달려가는 성실한 직원이었다. 어느 날 공장에서 절도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엉뚱하게도 평소 말이 없었던 그가 범인으로 몰리게 된다. 아무리 부인해도 주변 사람들은 그를 싸늘하게 쳐다봤다.

“며칠 뒤 진범이 잡혔습니다. 누명이 벗겨졌지요. 회사에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무작정 사표를 던졌습니다. ‘하늘이 나를 낳았다면, 반드시 쓸모가 있겠지(天生我才必有用)’라는 생각에서였지요.”

그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학력이래야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던 그가 할 일은 없었다. 집에서 신문지 깔고 빈둥빈둥 뒹구는 게 일이었다. 그는 우연히 신문에서 ‘국채 시세’ 코너를 발견했다. ‘국채’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그였다. 호기심에서 거래소로 달려간 그는 ‘104위안에 매입하면, 연 15% 이자를 받게 된다’는 창구 직원의 설명을 들었다. 그와 투자가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5년 직장생활으로 모은 돈 2만 위안이 종잣돈이었다. 몽땅 국채를 샀다. 이튿날 거래소에 간 그는 깜작 놀랐다. 104위안에 샀던 국채가 112위안에 거래되고 있었던 것이다. 팔았다. 800위안을 벌었다. 철공소에서 1년 죽어라 일해도 만지기 어려운 돈을 하루 만에 번 것이다.

“당시 중국에는 7개 도시에서 국채거래소가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일한 상품임에도 거래소 간 가격이 달랐지요. 상하이에서는 94위안 하는 게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哈肥)에서는 98위안에 팔리는 식입니다. 상하이에서 기차를 타고 밤새 달려 허페이에 도착해 전날 상하이에서 산 국채를 팔았습니다. 국채 가격이 싼 거래소를 돌며 밤 기차를 탔지요.”

‘발품’이 그의 첫 투자전략이었던 셈이다.

개미처럼 전국을 쏘다닌 지 1년여, 그는 채권투자로 약 100만 위안을 벌었다. ‘집에 지폐 계수기를 사야 했을 정도’였단다. 당시 그의 사례가 상하이의 한 지방 신문에 실렸고, 그는 ‘백만(百萬) 위안을 번 사나이’로 불리게 됐다. 그의 이름이 ‘양화이딩’에서 ‘양바이완(楊百萬)’으로 바뀐 연유다.

주식

식자(識者)들은 이를 투자라고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돈 놓고 돈 먹기’의 세계일 뿐이었다. 1990년 12월 19일 상하이에 들어선 주식시장 역시 ‘큰 도박장(大盤賭場)’이었을 뿐이다. 채권거래를 통해 돈의 생리를 깨친 그는 투자의 흐름이 채권에서 주식으로 바뀔 것임을 직감하게 된다. 상하이의 전자업체인 디엔전쿵(電眞空)이 첫 투자 대상이었다. 현지 언론이 전하는 그의 투자 스토리는 이렇다.

“양바이완은 1989년 7월 액면가 100 위안인 디엔전쿵 주식을 91위안에 3000주 매입했다. 이듬해 디엔전쿵 주가가 급등하더니 800위안까지 치솟았다. 상하이 증시 상장업체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그는 8배 이익을 남기고 팔았다. 증시 개장 첫날 디엔전쿵은 3.75위안(액면가 1위안)으로 시작했고, 이날 1000주가 거래됐다. 이 중 500주를 양바이완이 샀다. 주가는 며칠 사이에 5.00위안으로 뛰었다. 그는 팔았다. 그가 파니 3.70위안으로 떨어졌다. 그는 3.75위안에 다시 사 장기 보유를 하게 된다. 90년대 초 주가가 폭등하면서 이 회사 주식은 무려 25위안까지 올랐다.”

이 사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양바이완은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당연했다. 그가 손댈 때마다 주가가 폭등했고, 시장에서 빠져나오면 폭락을 했으니 말이다.

그는 90년대 말 주식시장을 떠난다. 주식 붐이 일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의아스럽게 생각했다. 그가 찾은 곳은 부동산시장. 상하이에서 ㎡당 1300위안을 주고 빌라급 호화주택 두 채를 샀다. 아니나 다를까, 주가는 2001년 들어 장기 하락세를 탔지만 집값은 폭등했다. 1300위안에 샀던 집은 2005년 7000위안으로 뛰었다. 탄식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2005년 그는 집을 모두 팔고 주식시장으로 돌아왔다. 모두 30만 주를 샀단다. 역시 대박이었다. 2005년 여름 1000선까지 떨어졌던 상하이 주가는 2007년 10월 6000대까지 폭등했으니 말이다. 또다시 거금을 챙겼다. 언론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했다. 언론은 그를 ‘투자의 신(神)’으로 우상화하기 시작했다.

양바이완 따라하기

그렇다고 모든 투자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실패의 쓰라림을 봐야 했다. 중국석유가 그랬다. 그는 2008년 주당 31위안에 이 회사 주식 4000주를 산 것으로 알려졌다. 주가가 떨어지자 보유량을 더 늘렸다. 이 종목의 현재 가격은 10위안 선. 매입가의 3분의 1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를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는 증권업계 투자분석가들은 이를 들어 ‘양바이완의 성공은 지독하게도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비웃는다. 그러나 당사자인 양바이완은 느긋하다.

“뭐가 걱정이냐. 나는 우리 손자에게 이 주식을 유산으로 물려줄 것이다.”

작은 실패가 그의 큰 성공을 가리지 못했다. 양바이완은 여전히 중국 증시에서 움직이고 있는 수억 ‘개미’들의 우상이다. ‘나도 양바이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등불과 같은 존재다. 중국 증시 20년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그는 환갑의 나이에도 매일 10개 이상의 신문을 구독하며 시장을 연구하고 있다. 가끔 그가 던지는 한마디는 투자 격언으로 이튿날 신문 증권면을 장식하곤 한다.

그가 본 중국 주식시장 전망은 어떨까. 그는 간명하게 분석한다.

“호재가 안 보인다. 시장 위험이 크다. 얼마를 벌 것이냐보다는 어떻게 리스크를 줄일지를 연구하라. 지금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시장을 떠나라(現在看不淸的人,離場)!).”

난창 강연의 한 대목이다.

양바이완은 주식투자의 도(道)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주식 투자에서 10 중 6은 마음 상태에 달려 있고, 3은 기교, 1은 운이 작용한다(六分心態, 三分技巧, 一分運氣). 주가 파동에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투자 기법은 그 다음이다. 여기에 작은 운이 따라준다면 주식 투자는 성공할 것이다.”  


j 칵테일 >> 양바이완의 주식투자 오심

① 내심(耐心) 시장 여건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을 가져라.
        인내심이야말로 이익을 창출하는 바탕이다.

② 세심(細心) 유망한 종목을 가려낼 수 있는 세심한 마음이 필요하다.
        치밀하게 선정하지 않으면 상승장세에서도 손실을 볼 수 있다.

③ 결심(決心) 투자를 결정할 때는 과감하고 신속하게 행동하라. 머뭇거리다가는 좋은 주식을 놓치고, 손실 키우기 십상.

④ 신심(信心) 일단 매입한 주식에 대해서는 믿음을 가져라. 작은 주가 파동에 결심이 흔들린다면 돈이 쌓일 수 없다.

⑤ 한심(狠心) 주가가 떨어진다 싶으면 모질게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폭락장세를 경험하지 않은 투자자는 성숙한 투자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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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