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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박찬호 6500만 달러 계약 산파, MLB‘수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누구일까. 버드 실릭 커미셔너? 타계한 조지 스타인브레너(뉴욕 양키스 구단주)? 지난 20년 동안 야구 판도의 흐름만 놓고 본다면 ‘수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56) 이상 영향력을 발휘한 이는 없다. 그는 바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추신수 선수의 에이전트다. 올해 메이저리그 최저수준인 46만 달러 연봉을 받았던 추신수는 올 시즌 팀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3할-20홈런-20도루’를 기록해 ‘연봉 대박’을 예고했다.

뉴포트비치=LA중앙일보 원용석 기자 won@koreadaily.com

선수들 사이에서 ‘1인 선수노조’라고 불릴 정도로 그는 메이저리거들의 연봉이 수직 상승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 2001년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텍사스 레인저스 이적 당시 10년 2억5200만 달러의 초대형 계약을 성사시킨 것도 바로 보라스였다. 2007년 로드리게스가 양키스로 이적할 때는 10년 2억75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해 기록을 경신했다. 무엇보다 2001년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에이전트로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 6500만 달러 계약을 체결케 해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이 됐다. j는 최근 뉴포트비치에 위치한 보라스 코퍼레이션 본사를 찾아 메이저리그 최고의 에이전트인 보라스의 ‘추신수 이야기’를 들어봤다. 추신수의 22홈런-22도루 기록 달성 뒤엔 전화로 보완 취재를 했다.

● 추신수에 대해 평가해 달라.

“그는 한마디로 5툴(타격 정확성, 장타력, 수비, 송구, 주루) 플레이어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할 만한 특급 타자로 성장할 잠재력이 보인다. 아메리칸리그만 따지면 20(홈런)-20(도루) 클럽에 2년 연속 가입한 선수는 추신수가 유일하다. 부상만 없었다면 30-30도 가능했다고 본다. 추신수의 출루율이 4할(0.401)을 넘어선 것도 주목해야 한다. 현재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구단에서 추신수보다 기여를 많이 하는 선수는 없다.”

● 추신수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 병역문제를 해결한다면 연봉이 급격히 인상될 것 같다.

“그는 내 고객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다. 당연히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다.”

#사실 클리블랜드 구단은 추신수가 보라스와 손잡은 것을 썩 내켜하지 않는다. 제프 사이벌 클리블랜드 PR담당은 “솔직히 추신수의 에이전트가 보라스라서 껄끄러운 것은 사실”이라고 솔직히 토로했다.

● 추신수의 에이전트가 된 배경이 궁금하다.

추신수.
“그의 친지로부터 에이전트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아 그와 손잡게 됐다.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난 외야수 중 하나로 성장할 수 있다고 봤다. 잘 뛰고 잘 치는 데다 수비도 잘하지 않느냐.”

#올 4월 보라스 코퍼레이션을 직접 방문했던 추신수는 보라스의 능력에 감탄한 모습이 역력했다. 추신수는 “보라스와 에이전트 계약 후 세 번째 만남이었던 것 같다”며 “보라스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소리도 듣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보라스 당신의 야구 인생에 대해 알고 싶다. 메이저리거가 되는 게 꿈이었다는데.

“그랬다. 하지만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선수생활이 조기 마감됐다. 그렇다고 우울해하진 않았다. 내가 수퍼스타가 될 자질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야구란 게임에서 뛸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다. 미련은 없다.”

● 약대를 졸업했는데.

“선수생활을 하면서 약학을 공부했다. 시즌 중엔 야구, 오프 시즌엔 공부했다. 그 생활을 2~3년 동안 하며 약대를 졸업했다. 원래 화학하고 과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성공적인 메이저리거가 됐다 해도 나중엔 제약회사에서 일할 생각이었다.”

● 법도 공부했다고 들었다.

“제약회사를 다니던 중 ‘제약회사에서 성공하려면 변호사 자격증을 따라’는 충고를 들었다. 그래서 법대에 가게 됐다. 변호사 자격증을 따낸 뒤 제약회사의 변호사로 활동했다.”

● 그럼 에이전트가 될 생각은 없었나.

“전혀 없었다. 메이저리거 친구 마이크 피스클린이 내게 계약을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면서 첫 딜을 성사시켰다. 이후 내 예전 팀 동료들의 계약도 도와주게 됐다. 사실 그 당시엔 드래프트된 선수들은 에이전트가 없던 시절이다. 난 이후 드래프트 전체 1, 2번에 지명된 선수들을 대변하게 됐고, 그 뒤 빌 코딜과 큰 계약을 이뤄내면서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에 등장한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내 전화벨이 많이 울리기 시작했다.”

● 그 친구(마이크 피스클린)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안 그래도 마이크는 보라스 코퍼레이션에서 20년째 일하고 있다. 에이전트 생활을 하면서 내 고객이 나중에 나와 함께 일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 언제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싶다는 마음을 굳혔나.

“선수들이 얼마나 도움이 필요한지를 알게 됐다. 약학과 법학이 모두 스포츠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걸 알게 됐다. 계약 내용도 잘 이해했고, 난 선수 출신이라 선수들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모든 점을 미뤄볼 때 내게 최적의 직업이라 생각했다. 또 당시엔 제대로 된 에이전트 시스템이 없었다. 난 지금도 야구장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와이프가 ‘이젠 휴가도 한번 갈 때가 되지 않았느냐’라고 얘기하지만 난 내가 하는 일을 무척 즐긴다. 나에겐 이 직업이 특혜이자 운명이다.”

● 처음에 에이전트로 활동했을 때 환경이 어땠나. 팀이 선수를 악용하는 분위기였나.

“1980년대 초만 해도 지금과 천지차이였다. 선수들이 변호사나 에이전트를 대동하는 것을 적대시하는 분위기였다. 한 번은 어느 단장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는데, 로비에서 8시간이나 기다리다 허탕을 친 적도 있다. 그 다음 날 또 갔는데 역시 마찬가지였다. 금방 나오겠다고 해놓고는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그래서 셋째 날 그냥 떠났다. 결국 계약을 성사시켰지만 당시 그 단장이 보인 그런 행동은 현재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박찬호의 에이전트였던 것으로 한인들에게 유명한데, 박찬호가 먼저 접촉했나.

“박찬호가 마이너리그에서 뛰었을 때 그를 처음 봤다. 그때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친분을 다졌다. 그리고 3, 4년 뒤 그가 우리를 고용했다. 결국 한인 야구선수로는 최고의 빅딜(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간 6500만 달러)을 성사시켰다. 부상 때문에 텍사스에서의 활약이 좋지 못했지만 결국 재기에 성공해 지난해에는 월드시리즈에서도 뛰어 기뻤다. 항상 열심히 훈련하는 친구였다.”

● 텍사스와 계약했을 때 박찬호의 반응은.

“정말 흥분된 상태였다. 그때 찬호가 한국, 아니면 LA에 있을 때였던 것 같다. 난 그때 텍사스에서 협상을 막 끝났을 때였다. 찬호가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다. 나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물론 ‘제리 맥과이어’처럼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말하는 그런 식은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기쁨을 표현하는 선수들도 있지만. 텍사스에선 트레이너와 팀의 관리가 좋지 않아 잘 풀리지 않았다.”

● 텍사스 홈구장이 타자친화적인 요인도 있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텍사스에 입단한 직후 허리와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박찬호가 이후 볼 스피드를 되찾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다저스에서 재기했다. 열심히 훈련하고 팔 힘이 좋아 재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 한국 야구 수준은 어떻다고 생각하나.

“한국 선수들은 다리가 강한 선수가 많다. 파워 있는 타자들도 있다. 문제는 한국리그에서의 파워히터가 미국에서도 파워히터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파워와 스피드를 모두 겸비한 선수를 찾기 힘들다. 내가 볼 때 미국 무대에서 스피드와 파워를 골고루 발휘할 선수를 찾기란 쉽지 않다.”

● 김병현의 에이전트로도 활동했는데, 김병현이 컴백할 수 있다고 보나.

“잘 모르겠다. 여기서 피칭한 지는 꽤 됐다. 선발보다는 계투로 컴백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그의 자질은 대단하지만 2년간의 공백도 무시하지 못한다.”

● 아시아 선수들에게 항상 관심이 았나.

“아시아든 어느 나라든 항상 관심이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마쓰자카 다이스케는 일본에서 최고의 투수였다. 그리고 미국에 와서도 성공적이다. 앞으로 아시안 선수가 더 많이 메이저리그에 오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계약이 있다면.

“음…. 와이프와의 결혼이다(웃음). 기나긴 협상이었다.”

● 선수 계약으로는.

“외국에서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을 했던 선수들의 계약을 성사시킬 때 큰 보람을 느낀다. 그들의 인생뿐 아니라 할아버지, 삼촌 등 친척까지도 생활이 한순간에 달라진다. 애드리언 벨트레 같은 경우에는 메이저리그 계약을 한 뒤 도미니카공화국에 아파크 단지를 짓기도 했다. 몇 세대의 인생이 바뀌는 것이다. 또 좋은 계약을 성사시키면 다른 선수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매년 선수들의 가치도 달라진다. 최근에는 메이저리그 총수익이 70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선수들도 그에 상응하는 수익을 받아야 된다고 본다.”

● 성공적인 에이전트가 되려면.

“성실해야 된다. 그리고 열정이 있어야 한다. 또 이건 아주 개인적인 서비스 직종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회사를 위해, 빌딩을 위해, 땅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고 선수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 보통 계약하면 계약액수의 몇 %를 받나.

“선수마다 다르다. 더 많이 받을 수도 있고, 적게 받는 일도 생긴다.”

● NBA, NFL 선수를 대변할 생각은 없나.

“하키·농구선수로부터 자주 접촉이 온다. 그러나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잘하고 싶다. 만약 NBA와 NFL 선수들까지 맡는다면 그쪽의 규정도 다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또 30명, 혹은 60명의 단장들도 추가로 알아야 하고 그쪽 분야에도 훤해야 된다. 그렇게 되면 한 가지 스포츠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 야구계에 어떤 인물로 남고 싶나.

“선수들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 또 야구에 모든 열정을 바쳤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 인생 목표가 있다면.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또 내가 하는 일에 최고이고 싶다.”

● 이미 최고의 에이전트 아닌가.

“지금은 그럴지 모르지만 언제 바뀔지 모르는 일이다.”

● 아이들은.

“대학 다니는 딸이 있고 아들은 USC에서 야구선수로 활동 중이다. 아들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부터 드래프트 제의를 받기도 했다.” .


칵테일 >> 보라스 회사는 ‘철통 요새’

보라스가 설립한 스포츠 에이전시 ‘보라스 코페레이션’에 소속된 메이저리거만 무려 175명이다. 로드리게스뿐 아니라 매니 라미레스, 배리 지토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그를 에이전트로 두고 있다. 2136㎡ 에 달하는 보라스 코퍼레이션 본사는 마치 요새를 방불케 한다. 2층으로 된 오피스 건물 정문은 마치 은행 철문을 연상시킬 정도로 철두철미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형 벽면이 보이는데, 야구공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이외에 10개의 XM 위성 리시버, 32개의 TV 리시버, 컴퓨터와 대형 스크린 TV 70대가 각각 설치돼 있다. 또 안에는 부엌과 빨래방, 헬스클럽, 샤워실, TV 라운지, 4.5m 폭포수까지 마련돼 있다. 직원은 70~80명이며 그중 한인 직원 3명은 주로 한국야구 커뮤니티와 한인 메이저리거들을 위해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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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