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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손에서, 컬렉터의 손에서…예술은 두 번 태어난다

검소한 차림으로 수장품을 살피는 간송 전형필. 사진 김영사 제공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사건 당시 국내뿐 아니라 해외 미술계에서도 한국 미술시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일시적인 타격일 뿐이지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리히텐슈타인의 만화 같은 그림이 97억원이나 한다는 사실, 그리고 몇 년 뒤에 서너 배 가격이 상승했다는 사실을 모든 매체가 대대적으로 홍보한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노이지 마케팅(noisy marketing)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진숙의 ART BOOK 깊이읽기<2> 컬렉터란 무엇인가? 『간송 전형필』과 『명품의 탄생』

19세기는 작가의 시대, 20세기는 평론가의 시대, 21세기는 컬렉터의 시대라고 한다. 2007~2008년 한국 미술의 호황기에는 주식·부동산 시장과 미술시장의 변별력을 알지 못하는 세력이 대거 미술 시장으로 유입됐다. 『명품의 탄생』의 저자 이광표는 “문화재와 미술품을 투자와 투기의 대상으로만 보려” 하는 세태를 우려하며 “컬렉션의 진정한 의미와 아름다움을 소개”하려는 의도에서 책을 집필했다고 밝히고 있다. 타당한 시기에 제기된 타당한 문제 설정이었다. 시장의 주요한 축을 이루는 컬렉터들의 순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한국 미술계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이다. 한국 미술 컬렉터의 역사를 밝히는 이광표의 『명품의 탄생』(2009·산처럼·1만8000원)과 간송미술관 창립자의 일대기를 다룬 이충렬의 『간송 전형필』(2010·김영사·1만8000원)은 이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술 작품은 두 번 태어난다”고 『명품의 탄생』은 말한다. “한 번은 예술가의 손에서, 또 한 번은 그것을 느끼고 향유하는 사람 즉 감상자나 컬렉터에 의해 다시 태어난다”는 말이다. 이 책은 고미술을 중심으로 17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화 패트론으로서의 건전한 컬렉터의 역할을 보여준다. 18~19세기에 이들은 작가들과 교우하며 창작에 영감을 주고, 한 시대의 문화를 만들어나갔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문화재를 지켜내기도 했다.

평생 공들여 모은 작품을 미술관을 건립하거나 공공미술관에 기증함으로써 대중에게 공개한 사례를 살펴보는 과정은 책의 절정 부분에 해당된다.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개별 컬렉터들의 간절한 열망이 없었더라면 많은 작품이 사장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들 덕분에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이 작품들을 감상하고 그를 밑거름으로 문화의 발전이 이루어진다. 한 사람의 꿈이 모든 사람의 꿈으로 전환되는 위대한 순간을 함께 체험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명품의 탄생』이 통사론적으로 컬렉터와 컬렉션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다면, 『간송 전형필』은 한 컬렉터의 일대기를 좀 더 밀착해서 다루고 있다. 전형적인 영웅담의 구조로 쓰인 『간송 전형필』은 빠르고 쉽게 읽히며 적절한 순간에 감동을 조율해낸다. 간송이 문화재를 집중적으로 수장하던 1930~40년대는 일제의 수탈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다. 당시 고려시대 고분 2000여 기가 도굴되고 고려청자 1000여 점이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 하니 나머지 문화재의 현황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문화보국(文化保國)”이라는 오세창의 말이 실천의 강령으로 뜨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던 시점이었다.

간송은 “자신의 취향보다는 그것이 이 땅에 꼭 남아야 할지 아니면 포기해도 좋을지를 먼저 생각했다. 그래서 숙고는 하지만 장고는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 나타났을 때 놓친 적이 거의 없다”고 책은 평한다. 간송의 컬렉션 과정을 살펴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컬렉션의 시작과 과정에 좋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다. 화가 고희동, 역사소설가 월탄 박종화, 평생의 스승 위창 오세창, 한림서점의 백두용, 그리고 작품 수집의 손과 발이 되어준 이순황과 순보 기조가 그의 곁에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은 좋은 작품과의 인연으로 연결됐다.

특히 3·1 만세운동의 민족대표 중 한 사람인 오세창은 본인이 대수장가였으며 당대 ‘최고의 감식안’으로 알려져 있었다. 오세창은 『근역화휘』『근역서휘』『근역서화징』등 자신이 집필한 서화에 관한 책을 간송에게 전해 주었고, 초창기 간송은 이런 학습을 통해 유명 작가의 작품뿐 아니라 시기별로 중요한 작품을 수집했다. 또한 간송은 작품을 가지고 오는 거간꾼들을 홀대하지 않기로 유명한데, 스스로 좋은 인연을 좋게 유지할 수 있는 인품을 갖추고 있었다.

이 책에는 “군계(群鷄)가 일학(一鶴)을 당하지 못한다”는 문장이 나온다. “그저 그런 골동품이 아무리 많아도 명품 한 점을 당하지 못하고, 명품을 한 점 소장하고 있으면 다른 골동품들도 덩달아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수많은 작품 중에서 ‘일학’을 고르기가 쉽겠는가? 재력뿐 아니라 ‘안목과 열정’이라는 항목이 컬렉터의 필수 항목이 되는 이유다. 안목과 열정이 없으면 컬렉션을 한다는 것은 ‘쓸모 없는 물건’에 막대한 재산을 낭비하는 일에 지나지 않게 된다.

간송이 유산으로 받은 전답을 팔아가며 구입한 작품가액은 어마어마한 액수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지금 돈 60억원에, 혜원의 ‘혜원전신첩’은 90억원에, 영국인 개스비로부터 청자 22점을 일괄 구입하는 데 1200억원을 투여한다. 국가도 못할 일을 개인이 한 것이다. 애국만이 목적이었다면, 이 정도 규모의 자금으로 다른 할 일도 많았으리라. 이러한 행위 뒤에 애국심 이상의 것이 있다고 내가 생각하는 이유다.

그것은 바로 미술품 컬렉터의 마음이다. 작품을 소장하는 것은 단순한 물욕,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호사취미가 아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의협심이 투철하더라도 진정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 미술품 컬렉션이다. 또한 우리 같은 범인들이 감히 문화재를 소장할 수도 없다. 답은 이거다. 김용진이 간송에게 단원의 ‘모구양자’ ‘황묘농접’을 넘겨주며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늘그막에 벗 삼아 보려고 자네에게 넘겨주지 않은 단원의 그림일세.”

‘늘그막에 벗삼아 보려고’ 간직한 작품! 작품은 친구나 부부만큼 깊은 인연으로 찾아오는 법이다. 안 해 본 사람은 절대 모르는 기쁨을 주는 것이 미술품 컬렉션이다. 나 혼자만 소유할 수 있고, 이리 보아도 예쁘고 저리 보아도 예쁜 그런 단 하나의 존재가 바로 작품이다. 그것은 평생을 함께할 친구를 얻는 일이다.

이런 미술품에 대한 애정을 갖지 않는다면 컬렉션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단기 차액을 노리고 ‘문화재와 미술품을 투자와 투기의 대상으로만 보’았던 사람들이 낭패를 겪는 이유는 작품과 친구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시나 주식이나 부동산과 ‘마음의 친구’가 되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으면 연락 주시기 바란다.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서 본 그림들에 충격 받아 미술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10년간 큐레이터로 일했다. 『러시아 미술사』 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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