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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도 없는데다 무대 울렁증 … 내가 자신 있는 무술로 길 찾았습니다”

‘달인’김병만씨는 이번 추석‘달인쇼’ 방송 후 시청자들에게 ‘이 시대 진정한 광대’란 말을 많이 들었다. 개그콘서트 녹화를 앞두고 대기실에 만난 그는 방송인,예능인처럼 세련되진 않지만 구수한 느낌이 나는 ‘광대’로 불리는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지난 추석 개그맨 김병만(35)씨는 무척 바빴다. 추석 특집으로 방송된 ‘김병만의 달인쇼’(9월 22일 KBS-2TV) 때문이었다.

‘달인’ 생활 2년 9개월, 개그맨 김병만의 프로페셔널리즘

첫 장면은 김씨가 ‘트램펄린’ 위에서 펄쩍펄쩍 뛰며 묘기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트램펄린은 스프링이 달린 매트 위에서 공중회전 등을 겨루는 체조종목의 하나다. 김씨는 트램펄린 위에서 계속 뛰며 옷도 갈아 입고 컵라면도 먹었다. 트램펄린 연기를 모두 마치고 지쳐 쓰러진 ‘달인’에게 사회자(류담)가 물었다.
“힘드신 거예요?”

“(헉헉 거리면서) 아니요. 힘든 게 아니라 제가 추위는 잘 견디는데 더운 걸 못 참아서요.”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달인 코너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나왔고 사회자가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은 16년간 추위를 못 느끼고 살아오신 ‘오한’ 김병만 선생을 모셨습니다.”
두 가지의 달인을 무대 위에서 바로 연결한 무대였다. 추위를 못 느끼는 척해야 하는 김씨는 커다란 얼음 조각을 소파라고 하고는 그 위에서 팬티차림으로 누워 TV와 책을 보는 연기를 해냈다.

10년 넘게 함께 개그를 하며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는‘달인’팀이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고 있다. [KBS제공]
이날 ‘달인쇼’는 2007년 12월부터 2년9개월간 개그콘서트 ‘달인’ 코너를 통해 선보였던 206개의 달인 시리즈 중 일곱 가지(트램펄린의 달인, 추위를 못느끼는 달인, 흡입의 달인, 몸 그림의 달인, 링의 달인, 미각을 못 느끼는 달인, 잠수의 달인)를 리바이벌한 걸 방송했다. 추석 연휴 기간 특집 예능 프로그램 중 가장 높은 시청률(12.8%, TNmS 제공)을 기록했다.

이 방송을 보고 감동한 한 시청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 시대, 현존하는 최고의 광대를 보았다”는 글을 남겼다.

방송 일주일 후인 29일 오후 KBS 신관 개그콘서트 대기실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그날 오후 7시부터의 프로그램 녹화를 위해 마지막 무대 리허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얀색 모자티에 트레이닝 바지, 검은색 운동화 차림이었다. 어딜 가도 몸을 많이 쓰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항상 편한 옷을 입는다고 했다. 인사를 나눌 때 얼핏 보니 얼굴에 피곤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KBS ‘드라마시티’에 카메오로 출연, 새벽까지 촬영하다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씨는 조용하고 진지한 태도로 그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능청스러운 몸개그 달인의 모습은 마치 무대 위에서만 존재한다는 듯이.


추석 특집 시청률 12.8% 기염
-추석 때 방송된 ‘김병만의 달인쇼’에 대한 반응이 무척 뜨거웠는데요.
“이런 반응은 상상도 못했어요. 오히려 걱정이 컸죠. ‘달인’이 전파를 탄 지 거의 3년이 다 돼 가는 데다 지금까지 한 것 중에서 7개를 고른 거라… 이번에 너무 아쉬웠던 건 ‘트램펄린의 달인’이에요. 준비를 정말 많이 한 건데 녹화 당일 그동안 연습했던 선수용이 아니라 일반인용 트램펄린이 나왔어요. 일반용은 선수용에 비해 절반도 안 튕기거든요. 준비한 것의 반도 못 보여 드렸어요. 무릎 꿇고 공중돌기 하는 것도 연습 많이 했는데…(웃음).”

-차력에 가까운 힘든 도전을 하러 무대에 서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무대에선 관객들 박수소리도 잘 안 들려요. 끝나고 내려와서 동료한테 어땠느냐고 물어보죠. 집중 안 하면 크게 다치는 게 ‘달인’ 코너인데 이번 특집 땐 중간에 쉬지 않고 계속 이어서 하는 거라 더 조심했죠. 녹화 도중 다치면 저야 참고 계속해도 관객들이 긴장해요. 혹시 또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보는데 웃음이 나오겠어요.”

-‘미각을 못 느끼는 달인’에서 매운 고추를 한 움큼 먹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참 신기한 게 연습이나 리허설 때는 매운 고추 한 개만 먹어도 죽을 것 같은데 무대만 올라가면 덜 매워요. 관객들 기를 받는 것 같아요. 올라가면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생각뿐이거든요. 매운 걸 한 움큼 먹고도 안 매운 척하면 얼마나 웃기겠어요. 또 그 순간에 눈물·콧물이 함께 흘러주면 짱이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더 먹었어요. 표정은 안 맵다고 하는데 눈물·콧물 질질 흘리려고요. 그런데 이어서 고추냉이를 주는데 순간 저도 ‘이걸 어떻게 먹지’ 하는 두려움이 엄습하더라고요. 그럴 때 노하우는 애드리브을 쳐 조금 쉬는 겁니다(웃음).”

-‘달인’코너를 보고 나면 몸은 괜찮을까 걱정이 돼요.
“정말 위험한 거면 안 하죠(웃음). 제가 어릴 때부터 몸 가지고 노는 걸 좋아했어요. 건물 난간에서 물구나무 서기, 배수구 잡고 건물 올라가기 같은 것들을 많이 했죠. 한번은 빌딩 공사장에 올라갔다가 엘리베이터 말고 다르게 내려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옆에 설치된 지지대를 잡고 내려온 적 있어요. 참 무모하고 위험한 도전인데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어릴 때 학교에서 인기도 많았죠. 묘기 한 번씩 보여주면 친구들이 와~ 하고 박수 치고 말이죠. 어떻게 보면 ‘달인’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데뷔 후 슬랩스틱(몸개그)을 고집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만약 제가 끼가 출중했다면 다른 방식의 개그를 했을 거예요. 저는 춤도 노래도 잘 못해요. 게다가 무대 울렁증이 있었어요. 개그맨 데뷔하기 전에 그걸 극복하려고 연극무대 바람잡이를 자원했는데 그것조차 대본을 쓰고 외워서 했으니까요. 달인 하기 전까지도 무대 울렁증이 고쳐지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타고난 끼가 있는 애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열심히 하기는 했죠. 근데 방송에는 잘하는 게 나가지 열심히 한다고 나가는 게 아니더라고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최고가 돼 보자고 생각했죠. 무술은 자신있었거든요(김씨는 태권도·합기도·쿵후·격기도 등 무술 합계가 8단이다). 무술을 응용한 몸개그를 하다가 ‘달인’을 하게 됐는데 달인이 뜬 후엔 내 말만 듣고도 시청자가 웃대요. 자신감이 생겼죠.”

-무술을 응용한 몸개그는 나이가 들고 힘이 빠지면 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오히려 그런 예상을 깨고 개그를 계속 하면 더 웃기지 않을까요. 당연히 텀블링 못할 거라 보는 50세 때 멋지게 텀블링을 하면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저는 세상의 기인들에게서 희망을 얻어요. 10년 넘게 개콘을 해 온 리듬을 계속 타면 불가능한 건 아닐 듯싶어요.”

50세 넘어서도 몸개그 할 것
-꾸준한 인기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꾸미지 않고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려운 도전을 하다가 제가 살려고 꾀부리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실제로 당황할 때일지라도) 오히려 그 모습에 웃음을 터뜨려요. 실수하면서도 간신히 넘어가는 모습, 한 번에 성공하는 것보단 그런 인간적인 모습에 박수를 더 보내더라고요.”

-최근 몇 년 사이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의 눈높이가 많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3개월 빼곤 매주 개콘 녹화에 참가했어요. 초창기보다 지금 관객 수준이 높아진 걸 피부로 느끼죠. ‘달인’은 반전이 중요한 코너예요. 달인 초기 컨셉트는 ‘허무·가학·우기기’ 세 가지였어요. 그것도 처음엔 먹혔는데 시간이 갈수록 신선도가 떨어져요. 그래서 새 컨셉트로 잡은 게 ‘도전’입니다.”

-힘든 도전이 많아 NG도 자주 나겠어요.
“NG는 거의 없어요. 소품 때문에 가끔 나는 거 빼면요. 요즘 관객들은 NG를 내면 오히려 개그맨을 걱정해 주세요. NG 낸 다음 긴장하는 걸 알고 혹시 또 실수할까봐 조마조마 하는 거죠. 당연히 저희도 사람인지라 말을 더듬거나 대사를 까먹을 때가 있지만 그것조차도 개그로 만들어요. 전에 한번은 원래 대사가 ‘꽃은 있으나 화병은 없다’였는데 ‘화병은 있으나 꽃이 없다’라고 거꾸로 말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순간 ‘미안해요~ 이런 것도 감독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겠죠~’라고 애드리브를 했어요. 그날 주제가 긍정의 달인이었거든요. 그때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달인’은 역대 개그콘서트 코너 중 봉숭아학당에 이어 두 번째 장수 코너죠. 장수 비결이 뭔가요.
“팀워크죠. 셋이 만난 지 10년이 넘어 그런지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요. 누가 실수해도 애드리브로 채워주거든요. 사실 ‘달인’이 잘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저만 받는데도 담(류담·사회자 역할)이랑 우진(노우진·수제자 역할)이가 전혀 불만이 없어요. 오히려 제 걱정을 더 해주고 응원해줘요. 그런 면에서 참 고맙죠.”

-세 분이 뭉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신인 개그맨이 새로 들어오면 선배들이 자기랑 같이 할 후배를 골라요. 류담이 새로 들어왔을 때 제가 담이를 찍었죠. 신인일 때 담이는 평범했지만 연기를 할 줄 안다는 게 참 맘에 들었어요. 그래서 어디든 데리고 다녔죠. 하루는 담이가 ‘선배, 근데 아이디어 회의는 안 하나요’라고 물어요. 그래서 호흡 맞추는 게 먼저라며 따라다니기만 하라고 했죠(웃음). 선배보단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어요. 우진이는 군대 말년 휴가 때 절 찾아와서는 너무 힘들어서 개그맨 되는 꿈 접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포기하지 말고 제대하면 우리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어요. 제대하고 우리 집에 같이 살며 아이디어 짜고 연습도 했는데 제대 한 달 만에 개그맨 공채 시험에 합격하더라고요(웃음). 둘 다 후배이기 전에 소중한 동생들이죠.”

-‘달인’ 코너 탄생의 비화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다른 개그 프로에 ‘고수를 찾아서’라는 비슷한 코너가 있었어요. 그걸 지방 투어를 하면서 류담이랑 같이 하고 있었죠. 제가 진지함 속에 반전이 있는 개그를 좋아해요. 콧수염도 진지해 보이려고 그리는 거죠. 그러다 개그콘서트에서 브리지로 할 만한 코너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한번 해보겠다고 했죠. 브리지 코너니까 1분30초에서 2분 정도인데 그 사이에 두 번만 웃기면 성공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하다 보니 처음 소개할 때, 중간, 그리고 마지막 반전까지 세 번 이상 터지더니 조금 지나니깐 제가 말만 하면 사람들이 웃는 거예요. 그러다 브리지에서 메인 코너로 승진한 거죠.”

-기발한 아이디어들은 어디서 얻나요.
“팀플레이죠. 우린 일단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며 놀아요. 그러면서 아이디어를 건지죠.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셋이 나란히 앉아 있다 옆에 있는 의자를 보고 한 명이 ‘16년간 의자에서만 살아온 달인? 어때?’라고 툭 던져요. 그럼 다른 두 사람이 한마디씩 받아 치죠. 저는 주로 몸과 관련된 걸 내고, 담이(류담)는 살찐 이야기를 많이 내죠(웃음). 만약 한 명이라도 그날 기분이 안 좋으면 자리를 접고 술 먹으러 가요. 붙잡고만 있다고 아이디어가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고민하고 머리 쥐어짜 찾은 아이템은 감독님에게 퇴짜맞은 게 많아요.”

-코너가 오래돼 아이디어가 고갈될 만도 한데요.
“가만 생각해보니까 그동안 제 몸 중 안 쓴 부위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혀나 머리카락을 써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혀로는 할 수 있는 게 너무 적고, 머리는 너무 짧아 긴 머리를 붙일 수가 없더라고요. 또 다른 걸 찾아내려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변하지 않는 건 몸개그라는 거죠.”

장수 비결은 노우진·류담과의 찰떡 호흡
-지금까지 연기한 것 중에서 가장 힘든 도전은 무엇이었나요.
“어려운 것에 도전하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사람들을 웃기려고 무대에 올라갔는데 못 웃겼을 때가 가장 힘들죠. 그런 날은 저녁에 술을 마셔도 술이 써요. 한번은 웃음을 참느라 힘든 적이 있었어요. ‘방귀의 달인’ 편을 보면 제가 고개를 숙이고 팔로 얼굴 감싸는 장면이 있어요. 그건 제가 순간 너무 웃겨 웃음 참느라 그런 겁니다. 무대에서 개그를 하는데 갑자기 ‘세상에 뭐 이런 사기꾼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근데 제가 웃어버리면 코너를 망치잖아요. 그래서 엎드려서 혼자 몰래 웃고 다시 일어나서 연기했었죠. 그러고 보면 우린 일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정말 즐기면서 노는 기분으로 개그 해요.”

-올해 초 대학원(건국대 건축공학 전공)에 진학했다고 들었습니다.
“제 손으로 개그하기에 가장 좋은 공연장을 짓고 싶어 시작했어요. 개그 공연장은 개그맨의 미세한 표정까지 보여줄 수 있게 관객과 최대한 가까운 것이 좋거든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학교에 가는데 너무 재밌네요.”

-쉬는 날이 거의 없다고 들었습니다.
“월·화는 개콘 리허설, 수요일은 개콘 녹화, 목요일은 개그스타, 금요일은 개콘 회의, 토요일은 상상대결, 일요일은 드림팀에 출연하고 있고 짬짬이 드라마 촬영도 하고 있어요. 물론 항상 피곤하죠. 하지만 쉬고 싶은 마음보다는 기회가 왔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데뷔하고 몇 년 동안 무명의 설움을 겪었어요. 근데 지금은 제가 뭘 하건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 주시니 감사할 뿐이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요.”

-절친 동료 이수근씨는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는데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이신지요.
“수근이는 2000년에 영화 ‘선물’ 오디션장에서 처음 만나 옥탑방에서 같이 동고동락한 절친이죠. 데뷔 초에는 우리 둘을 구별 못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수근이가 결혼한 건 부럽지 않은데(웃음) 아기는 좀 부러워요. 근데 저는 아직 저를 더 챙겨야 할 것 같아요. 할 일이 많거든요. 연애는 좀 더 있다 하죠 뭐.”

-스스로 꿈꾸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궁극적으로 드라마나 영화 속 희극배우가 꿈이에요. 카메오지만 꾸준히 드라마에 출연하는 이유죠. 병아리 장수부터 의사까지 다양한 인생을 공부하고 경험할 수 있어 좋아요. 촬영장에 가면 ‘왜 개그맨인 나를 캐스팅 했을까’에 대해 자주 생각해요. 분명 희극을 원하니까 날 불렀을 것인데 그렇다고 제가 개콘에서처럼 오버하면 극을 망칠 것 같고… 너무 진지해도, 너무 우스워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중간 접점을 찾는 게 과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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