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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를 주는 게 인간 본성, 진범의 진술은 흔들리게 마련”

김종률 검사에 따르면 “진술분석의 고수가 되려면 적어도 100케이스 정도는 다뤄봐야 한다.” 신인섭 기자
거짓말하는 능력은 생후 3년 이후에 발현돼 평생 발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짓말이 발각되지 않으려면 ‘앞뒤가 잘 맞아야 한다’. 이를 전문 용어로 ‘의미 누설 통제(semantic leakage control)’라고 한다. 7세는 돼야 ‘의미 누설 통제’에 대한 이해를 갖추게 되기 때문에 3~6세 어린이의 거짓말은 쉽게 드러난다. 어쩌면 평생 배워도 제대로 배울 수 없는 게 거짓말이다. 진실게임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것도 거짓말을 가려내는 것도 어렵다.

국내 최초 ‘진술분석’펴낸 김종률 검사

경우에 따라 한마디 말을 분석해 진실게임의 결말을 알 수 있는 ‘진술분석(陳述分析·statement analysis)’이라는 기법이 있다. 진술분석은 감이나 경험도 중요하지만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최근 김종률(서울대 법대 졸, 사법시험 26회 합격) 검사가 국내 최초로 과학적인 진술분석에 대해 다룬 『진술분석:실제 사례를 통한 숨겨진 진실과 정의 찾기』(사진)를 출간했다. 그에게 “수사는 진실을 파헤치는 작업”이자 “범인이 지워버린 숨은 그림을 맞추어 나가는 작업”이다. 김 검사는 『진술분석』에서 수사의 초동 단계에서 재판 단계까지 실무에서 활용될 수 있는 ‘과학적 내용분석(Scientific Content Analysis·SCAN)’을 실제 사례를 통해 소개했으며 이를 위해 ‘기억의 전진 법칙’ ‘암초 효과’의 개념을 고안하기도 했다.

김종률 검사는 법무연수원 진술·증거분석 연구센터장이다. 센터장으로서 김 검사는 수사의 선진화·과학화를 위한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고 있다. 조사기법과 행동분석 도입 등 수사심리학 분야를 개척해 온 김 검사는 미국 조지워싱턴대(1996년), 샌타클래라대(2000), 영국 포츠머스대(2007)에서 연수한 성과를 대검 과학수사담당관, 대검전략과제 연구관직 수행에 활용했으며 저서로는 『수사심리학』(2002) 등이 있다. 현재 전 검찰을 비롯한 전 수사기관에서 수사바이블로 통하는 『조사·신문핵심원리 실무 매뉴얼』도 김 검사의 작품이다. 김 검사를 15일 용인시에 있는 법무연수원에서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진술분석의 원리는.
“진술분석 기법 중 하나인 SCAN을 창시한 아비노암 사피르(Avinoam Sapir)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모든 정보를 주고 싶어한다.(Everyone wants to give every information to everyone.)’ 그런데 진술인이 진범인 경우 모든 정보를 줄 수 없기에 진술은 흔들리기 마련이다.”

-어떻게 흔들리나.
“진술인이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는 정보가 있다면 그 정보는 암초처럼 작용하게 된다. 진술의 흐름이 강물처럼 흘러가다가 의식적으로 숨기고자 하는 정보들이 암초처럼 작용해 말실수, 머뭇거림, 말 늘어짐, 호칭 등 단어의 변화, 불필요한 어구 사용, 동어반복 현상이 나타난다. 이처럼 특정 정보 근처에서 미묘한 파장이 일어나는 것을 ‘암초효과’라고 부를 수 있다.”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거짓말을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의외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거짓말은 은폐(concealment)와 조작(falsification)으로 이뤄져 있는데, 진술인은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조작해 내기보다는 뭔가를 생략하거나 숨기는 은폐를 많이 시도한다. 수사 경험상 누구도 100% 거짓을 말하거나 100% 진실을 말한다고 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대체로 진실한 진술을 하되 단지 모든 내용을 진술하지는 않을 뿐이다. 수사관은 진술에서 거짓말을 찾아낸다기보다는 ‘말하지 않은 것’을 찾는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진술분석’을 국내에 도입하면서 개발한 ‘기억의 전진 법칙’이란 무엇인가.
“기억을 떠올릴 때 우리는 해당 정보가 입력될 당시의 맥락으로 돌아가게 된다. 우리 눈은 전방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가 입력될 때 우리의 시선은 앞쪽을 향해 나가면서 시각적 정보를 인식한다. 따라서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에서도 인식한 장면을 그대로 상기하는 속성이 있다. 기억을 인출하지 않고 상상해 진술하고자 할 때에는 상황이나 장면을 제3자의 시점에서 묘사하게 된다. 예를 들면 ‘나는 돼지갈비집을 나와서 포장마차로 갔다’는 식으로 진술하게 된다. 이 경우 직접 경험한 진술인은 ‘나는 2차로 포장마차로 갔다’는 식으로 진술하고 출발지를 물을 때에만 ‘돼지갈비집에서 나왔다’고 답하는 것이 보통이다.”

-진술분석 기법은 서양 언어를 배경으로 개발됐다. 우리말에 적용할 때 주의할 점은 없나.
“영어에서는 대명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술 내에서 대명사의 변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거의 80~90%의 시인 내지 자백을 드러낸다고 할 정도다. 우리말에서는 동사와 동사를 연결하는 ‘그래서’ ‘그런데’ 같은 연결 어구의 해석이 중요하다. 언어와 무관하게 중요한 것은 시제와 호칭의 변화다. 진술에서 시제가 과거형에서 현재형으로 변화하는 것은 진술 내용이 과거의 경험을 기억해 낸 것이 아니라 진술 당시 시점에서 머릿속으로 지어내고 있는 장면임을 시사할 수 있다.

호칭의 변화도 중요하다. 동일한 인물을 지칭하는 단어가 미묘하게 변화한다면 이는 진술인의 내면에서 진술인과 그 인물 간의 관계에 대한 심경 변화를 의미할 수 있다.”

-다른 분야에도 적용 가능한가.
“진술분석은 수사나 재판에서 이루어진 진술뿐만 아니라 정치 연설이나 사회 논평, 심지어 기자회견 등에서 행해지는 발언이나 글쓰기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산악인 오은선씨의 칸첸중가 등정 논란에도 적용할 수 있나.
“동일한 장면을 묘사하는 셰르파들의 진술이 있기 때문에 진술분석이 가능하다. 진술분석 기법을 동원해 상황에 대한 진술이 생각과 감각, 행동적 측면에서 일목요연하게 연결되는지, 상상에 의한 진술인지 아니면 경험에 의한 진술인지를 따지면 어느 쪽 진술이 더 신뢰할 만한지를 알 수 있다.”

-진술한 양이 많지 않아도 진술분석을 적용할 수 있나.
“그렇다. 해리 케멜먼(Harry Kemelman)의 단편 추리소설 『9마일은 너무 멀다 (The Nine Mile Walk)』(1947)에는 지방 검사와 영문과 교수가 나오는데 교수는 ‘9마일이나 걷는 것은 장난이 아니야, 더구나 이런 빗속에서(A nine mile walk is no joke, especially in the rain.)’라는 짧은 문장에서 ‘화자는 운동선수나 야외 활동가가 아니다’ ‘화자가 걸었던 시간은 아주 밤중이거나 아주 이른 새벽이다’ ‘화자는 확실한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고, 더욱이 일정한 시간에 도착해야만 했었다’는 등의 사실을 추론해 낸다.”

-우리나라에서 진술분석의 도입은.
“우리나라는 진술분석이 이제 겨우 시작단계이지만 우리나라는 수사기관에 진술분석관을 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국가이기도 하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진술분석과 같이 새로운 기법을 개발하고 동시에 과거의 사례를 점검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과거 진술분석 기법이 도입되기 전 중요한 단서를 놓쳐 버려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미국의 경우 DNA 기법을 과거 사례에 적용해 보니 무죄 사례가 많이 나왔다. 진술분석은 수사나 재판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기술이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신개척지다. 국민적 관심과 후원이 있으면 우리 사법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성과를 내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제시할 수 있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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