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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너제이에서 바라 본 예술축제

새너제이에서 샌프란시스코에 이르는 소위 실리콘밸리의 형편은 그리 좋지 않았다. 집값이 반 토막 나고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우울한 심정이 회색구름처럼 낮게 깔려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세계를 놀라게 했던 정보사회 혁신가들의 그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과 오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세계를 집어삼킬 듯했던 정보기술(IT) 혁명의 그 높은 파도는 태풍 뒤의 해변처럼 벌써 잠잠해졌는가?

아닐 것이다. 뉴욕발 금융위기와 주 정부의 재정파탄 등에 쉽게 무너진다면 IT 혁명의 중심부를 자처할 수 없다. 실리콘밸리는 2차 혁명을 준비하려는 조용한 열기로 꿈틀대고 있었다. 새너제이에서 열리는 예술축제, 제로원(ZERO1)이라 명명된 정보예술축제에서 그것을 확인했다. 제로원은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추구하는 비엔날레로 2000년 IT 붐의 절정에서 시작된 축제다(제로에서 하나를 만들고, 무형의 바다에서 유형의 창조를 해내자는 뜻이다). 나는 궁금했다. 메마른 과학자들의 도시, 기술지상주의자들이 우글거리는 도시에서 어떤 예술적 발상이 선을 보일까? 실리콘처럼 드라이하고 전자회로처럼 복잡하며 프로그램 언어처럼 낯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제로원 페스티벌은 아무도 매력적인 도시라 생각하지 않는 새너제이에 활기와 정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우선 발상이 참신했다. 디지털 아트라 하면 흔히 대형 스크린이나 건물외벽에 수놓는 환상적 이미지, 혹은 정교한 과학기술로 구현된 난해한 작품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환상적이고 난해하기는커녕 현실적이고 친근했다. IT 문외한이라도 쉽게 접근해 경탄해 마지않을 아이디어들이 운집해 있었으며, 관람객 스스로가 예술가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엉큼한 의욕을 갖게 만드는 실용예술이 선을 보였다.

제로원의 전시장이 그랬다. 전 세계에서 모인 작가들은 도심 한가운데 설치된 길이 180m, 폭 40m의 대형 텐트에서 자신의 워크숍을 운영했는데, 마치 차고에서 무언가를 뚝딱거리며 만드는 일상적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이들은 자신의 워크숍을 방문한 관객들을 맞아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작품을 함께 만들기도 했다. ‘차고에서 세상으로(Out of Garage Into the World)’라는 주제의 이 안티-스펙터클은 결과보다는 과정, 물질보다는 아이디어, 자본보다는 창조적 발상을 중시하는 실리콘밸리의 정신을 구현한 전시였다. 인텔에서 구글에 이르기까지, 몇몇 젊은이들이 차고에서 세상을 바꾼 DIY(Do-It-Yourself)식 기상을 다시 되짚어 보자는 의도가 읽혀졌다.

바다 건너 한국에는 전례 없는 예술 축제의 물결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 광주·부산·서울·대구·인천에서 세계적 규모의 비엔날레들이 한꺼번에 개최되고 있다. 다 둘러보기도 힘든 이 수많은 전시는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가? 새너제이의 차고에서 피어난 DIY 정신처럼,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예술적 해법이 모색되고 있는가? 아니면, 유명작가들을 화려하게 진열해 놓은 다채롭지만 허허로운 잔치인가? ‘자, 고상한 말만 하지 말고, 솔루션을 좀 내보자고. 반역이란 이런 거야!’라며 우아한 갤러리에서 우리를 끌어내 허름한 차고로 데려간 제로원의 파격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술의 기대지평을 확장하며 사회와의 관계를 새롭게 설계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는가?

CO2 배출을 줄이자는 공익적 발명들, 새로운 오피스 디자인, 헌 옷이나 고물차 재활용품, 그리고 환경 데이터를 시각화한 것과 같이, 전통 예술의 고정 관념을 넘어 예술이 인간에게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 전시가 아쉽다. 인간과 사회를 먼 곳에서 관조하는 시선의 형상화가 지배하는 우리의 예술판에서는 무어랄까, 어설프지만 진솔함에서 오는 생명력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게다가 그 형상화는 종종 자기복제적이며 매너리즘적 인상을 준다. 광주비엔날레의 ‘광주민주화운동’ 테마처럼 말이다. 이런 추상적·관념적 사회참여보다는, 손에 흙을 묻히며 함께 일상을 빚는 행위에서 비상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것이 더 소중하게 여겨짐은, 엘리트적 타성에 젖은 예술계의 만트라를 너무 많이 들은 탓이기도 하다. 많은 돈을 써 가며 진부한 클리셰를 읊고 있는 비엔날레들, 관람객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것들은 누굴 위한 축제인가?

다시 돌아온 청명한 계절, 삶의 낡은 고정 틀을 깨고 신선한 의욕을 북돋워줄 예술축제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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