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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유독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 겨울의 찻집’에 나오는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경우가 잦다. 문자를 보내면서 그런 감정을 표현해야 할 경우 적당한 이모티콘이 없어서 조금 답답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고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이라 나는 직접 ‘슈슈’라는 이모티콘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나는 밤 산책을 좋아한다. 사계절 다 좋지만 이맘때 그러니까 환절기가 가장 좋다. 심한 일교차가 주는 심리적·생리적 긴장도 즐겁고 마치 계절의 변화가 내 몸에서도 일어나는 것 같은, 몸의 변화도 흥미롭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밤 산책의 묘미는 느긋함에 있다. 표정도 옷차림도 느슨해진다. 운동복에 사파리 점퍼를 걸치고 나는 천천히 발걸음이 가는 대로 마음의 리듬에 따라 걷는다. 걸음의 호흡에 맞춰 숨 쉬고 그 숨결에 따라 생각을 풀어놓는다. 걸으면서 기지개도 켜보고, 권투선수처럼 팔을 죽죽 뻗기도 하면 행복 같은 간지러움이 발가락 끝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보스포루스로 산책 나가는 걸 좋아했던 오르한 파묵의 문장을 살짝 빌려서 말하면 나는 때로 이렇게 생각한다. “삶이 그렇게 최악일 수는 없어. 여전히 중앙공원으로 산책 나갈 수는 있으니까.”

밤에 중앙공원을 걸으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 생각은 번잡한 낮에 떠올리는 것과는 다르다. 가령 공원 숲길을 걸으면서 부동산 투기나 위장 전입 등을 생각하기란 좀 어렵지 않겠는가. 밤 산책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가령 이런 것이다. 군에서 야간 보초 설 때 ‘주변시’라고 해서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경계하라고 주의를 준다. 어둠 속에서 한 사물만 오래 보고 있으면 상상하는 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나도 경험했는데 심지어 바위가 여자로 보이기도 했다. 사는 게 어두울수록 주변시가 필요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주변을 휘휘 둘러본다.

밤 산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밤의 공기다. 그것은 신의 숨결이나 손길 같다. 몸 전체를 감싸는 서늘하고 부드러운 감촉. 온몸의 숨구멍을 열어 약간은 관능적이기까지 한밤의 공기를 호흡하다 보면 가만가만 밤의 소리가 들린다. 밤은 소리의 세계다. 낮의 번잡과 소음에 가려 들리지 않던 작은 것들이 내는 소리의 우주. 풀벌레와 새와 나뭇잎과 바람이 내는 소리가 다 들려온다.

느긋한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고 하자 나는 “잠깐만요”라고 소리치며 허둥지둥 탄다. 산책자에서 도시생활자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기다려준 아주머니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 나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나는 아주머니의 눈길을 피해 괜히 엘리베이터 안 게시판을 읽는 척한다. 거기 이런 게시물이 있다. 송곳 등으로 차량 타이어 펑크를 내고 다닌다는 용의자를 찾는 내용인데 그의 인상착의가 다음과 같다. “키 1m70~1m80㎝ 정도, 마르고 왜소한 체격. 약간의 대머리, 코가 크고 수염이 더부룩함. 회색 사파리 잠바, 줄무늬 바지. 경상도 말투,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님.”

비로소 나는 아주머니의 눈빛에 담긴 의혹과 불안을 이해했다. 용의자의 인상착의는 나와 흡사했으니까. 먼저 나는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뺐다. 그리고 아주머니를 향해 힘껏 웃었다.
“저는 코가 납작하잖아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슈슈.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스스로 우유부단하고 뒤끝 있는 성격이라 평한다. 웃음도 눈물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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