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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전투는 한국인이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

영화 ‘혹한의 17일(17 Days of Winter)’을 찍을 제작진이 15일(현지시간) 미국 샌디에이고 인근의 미 해병대 기지인 캠프 펜들턴에 세워진 장진호 전투 기념비 옆에 서 있다. 왼쪽부터 감독 에릭 브레빅, 총괄 제작자 제이슨 원, 프로듀서 샬럿 허긴스, 작가 프랭크 피어슨. [매드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인근에 위치한 해병대 기지인 캠프 펜들턴(Pendleton). 지난달 15일 이곳에 미 해병대 ‘스타’들이 줄줄이 떴다. 4성 장군인 제임스 콘웨이 사령관을 비롯한 해병대 수뇌부가 집결했다. 한국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장진호 전투 기념비 제막식과 인천상륙작전 60주년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기지 남쪽 언덕의 기념비 주변엔 250여 명의 한국전 참전용사와 유족도 보였다. 장진호 전투의 생존자 모임 ‘초신 퓨’(Chosin Few:초신은 장진의 일본식 발음) 회원들이었다. 장진호 전투는 한국 사회에서 잊히고 있지만 미 군사(軍史)에선 ‘전설’로 남아 있다. 그런 만큼 분위기는 엄숙하고 비장했다.

6·25 영화 ‘혹한의 17일’ 한국서 꼭 찍겠다는 제이슨 원

이날 행사에서 눈에 띈 한국인이 딱 한 명 있었다. 주최 측의 공식 초청을 받은 40세의 제이슨 원(Jayson Won·한국명 수찬·아래 사진)이었다.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제작비 1억 달러(약 1150억원)의 3D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주인공이다.
올봄 제이슨 원은 ‘매드미디어 엔터테인먼트’라는 영화사를 설립했다. 2012년 개봉 예정으로 영화 ‘혹한의 17일’(17 Days of Winter)을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영화 제작 경험이라곤 전무한 사람이다. 하지만 허언이 아니다. 그는 할리우드의 A급 프로듀서, 감독, 작가와 ‘혹한의 17일’ 제작을 함께 하기로 계약을 마쳤다. 영화정보 전문사이트인 IMDB에도 영화 내용이 등록됐다. 영화업계 권위지인 ‘버라이어티’는 ‘혹한의 17일’ 제작진을 소개하며 “디지털 3D로 만들어져 발표될 최초의 전쟁 서사물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총괄 제작자인 제이슨 원에 대해선 “4년간 이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려 노력해 왔으며 이미 8000만 달러의 예산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제이슨 원은 오는 7∼15일 열릴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세부계획을 발표할 계획이다.

-‘혹한의 17일’은 어떤 영화인가.
“치열했던 장진호 전투와 그 덕에 남쪽으로 피란할 수 있었던 수많은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단순히 전쟁의 잔혹함이나 비극만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다. 전쟁이란 극단상황에서 발휘되는 영웅적 인류애에 주목했다.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전혀 알지도 못한 누군가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당시 미 장병 대부분은 한국이란 나라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 전쟁은 인간의 악함과 선을 행하는 모습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혹한의 17일’에는 그런 정신을 담으려고 한다.”

-왜 하필이면 장진호 전투인가.
“부친이 장진호 전투로 살아남은 피란민이었다. 할머니가 당시 14세였던 아버지의 온몸에 쌈짓돈을 꽁꽁 싸매 배에 태웠다고 한다. 그게 아버지가 고향과 가족을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홀로 피란선에 올라 배 안에서 가진 걸 모두 빼앗기고 이후 말로 못할 고생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아직도 그 시절 얘기를 꺼리신다. 너무도 고통스러운 기억이기 때문일 것이다. 장진호 전투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란 생각에 언젠가 꼭 이를 소재로 무엇이든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왔다. 장진호 전투에 대해 공부하고 영화를 준비하면서 ‘이것은 한국인으로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라고 확신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오늘날의 한국이 있다는 사실을 올바로 알고 기억해야 한다. 나는 이 영화를 상업적으로는 재미나게, 역사적으로는 정확하게 만들려고 한다.”

제이슨 원은 원래 음악을 하던 뮤지션이었다. 드러머였고 인디 레코드사도 운영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도 이름을 날렸다. 1K 스튜디오라는 디자인 회사를 세워 DVD 메뉴와 인터랙티브 부가기능 디자인 분야에서 업계를 선도하면서 파라마운트, 20세기 폭스, 유니버설 등 굵직한 영화사들과 일해 왔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그에게 아이앱스, 아이튠 등의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맡겼다. 제이슨 원이 영화 제작에 뛰어들 수 있었던 디딤돌이었다. ‘혹한의 17일’의 감독 에릭 브레빅, 프로듀서인 샬럿 허긴스와도 그 시절에 만나 친분을 쌓았고 함께 영화사를 차리게 됐다.

-영화 제작진이 정말 쟁쟁하다.
“에릭 브레빅과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다. 내 디자인을 좋아해줘서 자연스레 친해진 것이다. 그가 할리우드 전쟁영화의 권위자라는 걸 알고 있어 ‘혹한의 17일’에 관한 아이디어를 의논할 수 있었다. 많은 대화 끝에 지난해 11월 에릭이 다른 좋은 제안들을 거절하고 이 영화를 찍기로 결정해 줬다. 내 입장에선 제임스 캐머런이나 스티븐 스필버그가 이 영화를 찍겠다고 해도 에릭을 선택했을 것이다. 전쟁, 특수효과, 3D 분야에서 그처럼 완벽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작가인 프랭크 피어슨은 아카데미 수상 작가다. 20여 년간 영화계를 떠났지만 이 작품을 위해 다시 돌아왔다. 모두들 이 영화의 의미에 깊이 공감했다.”

-영화 준비 과정은 어떤가.
“최종 대본 작업을 하는 중이다. 몇 주 안에 캐스팅을 확정한 뒤 내년 4월 촬영에 돌입한다. 2012년 12월 개봉할 예정이다. 제작비 규모는 총 8000만~1억 달러로 본다. 돈은 거의 확보됐지만 최종 대본이 나오면 조금 변동이 생길 수 있다. 프랭크 피어슨이 대본을 쓰며 ‘너무 비싼 영화가 될까 봐 걱정’이라기에 ‘돈 걱정은 하지 말고 쓰고 싶은 대로 맘껏 쓰라’고 했다. 지금도 투자하겠다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한국 자본이 좀 들어와 영화에 대한 지분과 권리를 함께 가졌으면 좋겠다.”

제이슨 원이 ‘혹한의 17일’에 올인하는 이유는 또 있다. 한국 사랑이 각별하기 때문이다. 그는 “여섯 살 때 진해에서 이민 와 캘리포니아에서 자라나는 동안 하루도 내 정체성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아메리칸 코리안’이 아닌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불리길 원한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 어떤 상황에서도 아들을 믿고 지지해 준 어머니의 희생과 기도 덕택이다.

-촬영 장소는 한국으로 정해졌나.
“그게 나의 간절한 바람이다. 한국에서, 한국 스태프들과, 한국 기술을 이용해 만드는 첫 번째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가 될 것이다. 영화가 성공한다면 한국영화는 세계 수준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뉴질랜드가 ‘반지의 제왕’을 통해 그렇게 됐지 않은가. 전쟁영화는 모든 장르 가운데서 가장 찍기 힘들다. 게다가 영화 배경은 겨울이고, 대부분의 전투 장면은 밤에 찍어야 한다. 촬영은 전부 3D로 해야 한다. 자라나는 영화학도에게도 더 좋은 환경과 기회를 주고 싶다. 다른 나라에서 찍는 것보다 돈이 더 들 수도, 영어가 안 통해 더 힘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를 꼭 한국에서 찍고 싶다.”

-한국에서 촬영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나.
“도와주겠다는 분은 정말 많다. 그동안 만난 정치인들이나 정부 관계자들, 참전용사단체 모두가 ‘무조건 돕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나는 실질적 진행이 필요하다. 만나서 웃고 ‘잘해 보자’며 악수하고 끝나선 별 의미가 없다. 모든 결정에 정치나 위계질서가 관여돼 일 처리가 더디고 힘들지만 그것도 내 나라 문화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촬영지 문제는 부산영화제 기간 중 필요한 분들을 만난 후 최종 결정할 것 같다.”

-앞으로 만들 영화의 흥행 전망은.
“나는 순댓국이 아니라 불고기를 만들 것이다. 한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겠다는 뜻이다. 인류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더 많이 갖고 있다. 나는 이 영화로 박스오피스 히트도 기록하고, 아카데미상도 타고 싶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혹한의 17일’이 갖는 정신을 함께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장진호 전투
1950년 겨울 미 해병 1사단 1만2000여 명이 함경남도 개마고원 장진호 인근에서 12만 명 규모의 중공군 제9병단에 포위돼 전멸 위기에 몰렸던 전투. 당시 북한 임시수도였던 강계를 서둘러 점령하려다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말려들었다. 미 해병 1사단은 영하 30도를 밑도는 추위와 폭설 속에 11월 26일부터 12월 13일까지 17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여 중공군의 남하를 지연시켰다. 또 병력이 10배에 달하는 중공군의 포위를 뚫고 흥남에 도착해 193척의 군함으로 군인 10만 명, 민간인 10만 명을 남쪽으로 탈출시켰다.
미군 전사(戰史)에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 중 하나로 기록돼 있다. 당시 뉴스위크는 “진주만 피습 이후 미군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라고 보도했다. 영어로 ‘초신(Chosin)’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당시 일본어 지도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스태프
▶에릭 브레빅(감독):‘어비스’(제임스 캐머런), ‘후크’(스티븐 스필버그), ‘진주만’(마이클 베이) 등의 시각효과를 맡은 바 있다. 할리우드에서 특수효과 전문가로 통한다. 아카데미상 특수효과 분야에서 세 번이나 후보로 올라 한 번 수상한 경력이 있다. 2008년 3D영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프랭크 피어슨(작가):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주연의 ‘스타 탄생’, 해리슨 포드 주연의 ‘의혹’을 감독하고 ‘뜨거운 오후’로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미 작가협회 회장을 두 차례,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장을 한 차례 역임했다.
▶샬럿 허긴스(프로듀서):‘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용기의 날개’ ‘플라이 미 투 더 문’ 등의 영화를 제작해 온 3D 영상제작 부문의 권위자. 미 특수효과협회 이사며 버라이어티지에 의해 ‘2008년 여성 파워’, 할리우드 리포터지에 의해 ‘디지털기술 50인’으로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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