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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 파워] 젊음은 각성하라!

# 로버트 윌슨은 올해 69세다. 이미지 연극의 세계적 거장이다. 그는 지난달 24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사랑’이란 테마로 국립극장 등에서 펼쳐지는 ‘2010서울연극올림픽’에 참가했다. 13개국의 45개 작품 중 개막작인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를 연출하고, 자신의 실제 나이와 같은 극중 인물 크라프를 연기했다. 크라프는 매년 자기 생일에 지난 1년의 기억을 반추하는 내용을 육성으로 테이프에 녹음하는 별난 취향의 사내다. 그가 우연히 30년 전 녹음한 테이프를 듣게 되면서 극은 전개된다. 이른바 ‘부조리극’의 개척자인 사뮈엘 베케트의 일인 독백극이니만큼 섣부른 해석 자체가 부질없지만 윌슨은 그 어떤 젊은 배우나 연출가보다 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로 연출하고, 연기했다. 그런 그에게 나이는 무의미했다. 그저 녹음테이프 하나가 더해질 뿐이었다.



# 그제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피아노 리사이틀을 연 나카무라 히로코는 세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15세에 국제무대에 공식 데뷔한 후 최근까지 3700회가 넘는 연주회를 가졌다. 데뷔 50주년 기념으로 일본 전국투어 연주회를 할 예정이라니 산술적인 나이야 익히 짐작되지만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자신의 나이를 35세라고 말할 만큼 여전히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게다가 피아니스트의 생명인 타건의 강렬함과 명징함은 그 어떤 젊은 피아니스트도 따라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런 그녀에게 나이는 세다가 만 정거장이다. 열차는 통과하지만 더 이상 헤아릴 이유가 없는 정거장 말이다.



# 며칠 전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내린 김성녀의 뮤지컬 모노 드라마 ‘벽 속의 요정’은 두 시간 넘는 공연 내내 감동이었다. 사상범으로 몰린 아빠가 아내의 기지(機智)와 어린 딸의 도움으로 40년 넘게 벽 속의 틈새와 다락에 은거하며 산 얘기다. 스페인 내전 당시의 실화를 바탕으로 후쿠다 요시유키라는 일본 작가가 극화한 것을 젊은 작가 배삼식이 빼어나게 각색해 6·25 전쟁 이후 우리의 상황으로 재현해 낸 작품이다. 이 극에는 30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모든 인물을 단 한 명의 배우가 소화해 낸다. 그저 무리 없이가 아니라 너무나도 재미있고 탁월하게! 갓난아이부터 노파에 이르기까지, 건달에서 순사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변신하는 천변만화(千變萬化)의 배우 김성녀는 1950년생으로 올해 환갑이다. 그녀는 이미 6년째 무대에 올린 ‘벽 속의 요정’을 4년 더해 10년을 채우고 싶단다. 하지만 그녀는 20년도 채울 것 같다. 정말 그녀에겐 세월이 무색하다.



# 오늘은 ‘노인의 날’이다. 솔직히 노인이란 어감은 그리 좋지 않다. 왠지 서글프다. 누구나 나이는 들지만 나이 들었다고 노인네란 말은 듣고 싶지 않다. 나이 먹는다고 반드시 철드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나이 든다고 반드시 늙는 것도 아니다. 1924년생으로 올해 86세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쓴 『나이 드는 것의 미덕』이란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늙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다. 꿈을 잃으면 나이가 어리고 젊어도 늙은 것이다. 역으로 꿈이 후회를 덮으면 나이는 들지언정 결코 늙지 않는다. 그러니 나이 젊다고 우쭐대지 마라. 그러다 녹슨다. 나이 많다고 삶을 내려놓지 마라. 아직 끝난 게 아니다.



# 모네는 76세에 수련을 그리기 시작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78세에 2초점 안경을 발명했다. 세계적인 지휘 거장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는 94세에 계약기간이 6년인 녹음계약서에 서명했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말처럼 “인생의 절정은 아직 오지 않았다!” 100세가 된 방지일 목사의 좌우명은 “닳아 없어질지언정 녹슬지 않겠다!”이다. 오래 쓰면 닳긴 한다. 하지만 녹슨 것보단 낫다. 나이는 젊은데 녹슨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노인의 날’에 되레 젊음은 반성하자! 아니 각성하라!!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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