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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사 편력] 묵자처럼 레넌도 ‘더불어 사는 세상’ 꿈꿨지요

가수들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음대로 부를 수 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주 먼 과거도 아니지요. 마르크스와 이름이 비슷한 독일 철학자 막스 베버의 책을 지녔다고 ‘불온세력’으로 연행되기도 했던 때였으니 노래하는 입 하나 막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겠지요.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대표적인 금지곡이었습니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띄운다’. 이처럼 서정적인 노랫말을 서슬 퍼런 권력이 부르지도, 방송에서 틀지도 못하게 했었지요.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라는 비장한 후렴구와 장중한 가락으로 반정부 ‘운동권’이 즐겨 불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어처구니 없고도 암울했던 시기에 무사했던 노래가 있습니다. 존 레넌의 ‘이매진(Imagine)’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노래가 별 탈 없이 불렸다는 게 신기합니다.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봐요/발밑에 지옥도 없고, 머리 위엔 그저 하늘뿐이죠/나라가 없다고 상상해봐요/무엇을 위해서 죽거나 죽일 필요가 없어요/소유가 없다고 상상해봐요/욕심을 내거나 굶주릴 필요가 없어요’.



종교도, 국가도, 사유재산도 부정합니다. 반정부가 아니라 아예 무정부적인 노래지요. 게다가 그 대열에 동참하도록 노골적으로 부추깁니다. ‘당신은 내가 몽상가라 말할지도 모릅니다/하지만 나만이 아닌걸요/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놀랍지요? 막스 베버 때문에 끌려가던 시절이라니까요. (물론 금방 풀려났습니다만…) 폴 매카트니가 부른 ‘렛 잇 비(Let it be)’ 같은 불후의 명곡도 마약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해서 금지곡이 됐던 때였습니다.



아무튼 ‘이매진’이 무사했던 건 다행이었습니다. 존 레넌이 갈구했던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된 것 같진 않지만 적어도 그 아름다운 노래를 맘껏 듣고 부를 수 있었으니까요. 무정부주의적 자유와 극단적 평등을 외치는 히피 철학에 빠져 있었다 해도 존 레넌이 궁극적으로 갈망한 것은 박애와 세계평화였습니다. ‘내세가 아닌 현세에서 세계가 하나가 돼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 말입니다.



사실 그건 동양에서 2500년 전에 발현됐던 철학입니다. 바로 묵가(墨家) 사상이지요. 묵자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반전 선언을 한 사람입니다. “한 사람을 죽이면 한 번 죽을 죄를 지은 것이며 백 사람을 죽이면 백 번 죽을 죄를 진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을 죽이면 당연히 그만큼 죄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죄가 없을 뿐 아니라 천하사람들이 영웅으로 치켜세운다. 이 어찌 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는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자기처럼, 다른 사람의 가족을 자기 가족처럼, 모든 이들을 평등하게 사랑하는 박애, 즉 겸애(兼愛)를 실천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묵자나 레넌의 생각은 결코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몽상일 수 있지요. 하지만 그것을 현실적으로 수렴하면 결국은 한 얘기가 됩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 말입니다. 남을 배려하는 삶 말이지요. 고(故) 전우익 작가의 말이 기막히게 들어맞습니다.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 이라크전쟁 전 바그다드에 갔을 때 느낀 점도 그것이었습니다. 사담 후세인의 아들이 수많은 스포츠카를 가졌다는데 포장도 제대로 안 된 도로와 삶에 찌들어 고개 들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 사이를 달려 무슨 재미를 찾을 수 있었을까 말이지요. 무인도에서 턱시도 입고 구두 광내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남을 배려하는 건 결국 나를 위해섭니다. 더불어 잘살아야 다툼도 없을 테니까요. 다윈은 이타주의적으로 진화하는 동물들을 관찰했습니다. 흡혈박쥐는 먹이를 나눠 먹고, 돌고래는 아픈 친구를 수면으로 밀어 올려 숨을 쉬게 한답니다. 코끼리도 다친 동료를 구하려고 최선을 다한다지요. 그것이 곧 자신을 위하는 길인 걸 아는 겁니다. 나도 언젠가 도움이 필요한 때가 올 거라는 걸 아는 거지요.



인간은 짐승보다 이기적이기에 묵자나 레넌처럼 몽상가가 필요한 겁니다. 우리가 따라 몽상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작은 실천으로 그 꿈에 한 발짝 다가설 수는 있을 겁니다. 상상해 보세요. 내 작은 배려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그런 세상을요. 이 사회에 전체 행복의 양이 커지면 내게 돌아오는 몫도 큰 겁니다. ‘이매진’의 노랫말 중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기억해 두시고 지금부터 시작하세요. ‘마음만 먹으면 쉬운 일이에요(It’s easy, if you try)’.



이훈범 중앙일보 j부장






1968~70 전설의 종말



68년 봄 오노의 등장.
비틀스는 인도의 리시케시에 체류했다. 새로운 안정과 평화를 찾아 나서기 위한 여행이었지만 멤버 간 차이를 이해하고 좁히는 데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레넌은 5월 중순부터 오노 요코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69년 1월 30일 최후의 라이브 공연. 런던의 애플 스튜디오 빌딩 옥상에 멤버들이 모였다. ‘Get Back’ 공연이 시작됐다. 원래 폴 매카트니는 그룹의 재단합을 위해 공연을 제안했다. 북아프리카의 로마 원형극장을 비롯해 여러 무대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결국 옥상 무대로 합의점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오노 요코는 비틀스 진영에 침입했고, 매카트니는 그룹을 좌지우지하며 해리슨의 연주에 설교를 늘어 놓았다. 이 모든 갈등은 전년도에 ‘The Beatles’를 녹음하면서 곪아 터진 것이었다. 봄이 지나고 사업상 문제들을 어떻게 누가 관리할지 두고 멤버들 간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벽이 생기고 말았다.



70년 4월 10일 해체. 사실상 비틀스가 해체했다는 폴 매카트니의 말이 세계 신문 1면에 일제히 실렸다. 68년 8월 링고 스타가 그룹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도, 69년 1월 조지 해리슨이 잠시 밴드를 떠났을 때도 이내 상황은 원상복귀됐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폴 매카트니는 질의응답 형식으로 언론에 배포한 자료에서 그룹의 미래가 없으며, 멤버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4월 10일은 비틀스의 장례식이 치러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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