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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 ‘위대한 비틀스’

사상 가장 위대한 대중음악 아티스트로 꼽히는 비틀스. 그들은 무엇보다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음악인 로큰롤을 밴드 미학으로 확립했다는 점에서 으뜸가는 역사적 위상을 차지한다. 해산된 지 올해로 꼭 40년이 흐른 저 옛날의 궤적임에도 그들은 후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재진행형의 존재로 통한다. 이것은 지금도 세계적으로 최강 비틀스처럼 되기를 열망하는 록밴드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들처럼 음악을 잘해 가장 유명한 밴드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다.



‘기성’에 저항한 60년대 서구 … 네 명의 멤버는 그 정신까지 품었다

1950년대 새로운 청춘문화로 태동한 로큰롤은 영웅 엘비스 프레슬리가 말해주듯 애초 솔로의 분야였다. 하지만 비틀스가 1960년대 등장하면서 기타, 베이스, 드럼 편성의 밴드 시스템으로 중심이 급속도로 이동했다. 그것은 젊은이들 서넛이 모여 음악의 처음과 끝을 완성하는 자주(自主)의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것으로 로큰롤, 줄여서 록은 단숨에 지구촌의 음악 청춘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비틀스의 광풍 직후인 1960년대 중반 서울 장안에도 200개가 넘는 록밴드(그때 말로 그룹사운드)가 출현했다. 당연히 록밴드 유행의 원조는 비틀스인 셈이다. 비틀스가 없었다면 1970년대를 장악한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퀸이나 심지어 1990년대의 너바나, 요즘 최고의 밴드인 뮤즈나 마룬 파이브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주류든 인디든 국내 록밴드가 추종하는 밴드 계보의 꼭짓점에는 비틀스가 있다. 1980년대 록 바람을 몰고 온 들국화의 재킷은 비틀스의 ‘렛 잇 비’ 앨범 커버를 표절했으며, 대표곡 ‘행진’을 두고 전인권은 “존 레넌의 창법을 따라 해본 것”이라고 고백했다.



비틀스는 탁월한 예술성의 음악으로 천재성을 증명했다. 그들은 초창기 제대로 로큰롤을 했을 뿐만 아니라 로큰롤을 모든 세대와 계층의 인구가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그 지평을 끌어올리는 위업을 남겼다. 록이 한낱 젊은이들의 아우성이 아니라 교양이 깃든 전(全) 세대 음악임을 만천하에 고한 것이다.



로큰롤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예스터데이’ ‘인 마이 라이프’ ‘올 유 니드 이즈 러브’ ‘헤이 주드’ ‘렛 잇 비’ 등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가 엮어낸 고급 선율과 편곡에 귀를 맡겼다. 그들 곡의 코드 진행은 어떤 음악에서도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것이었다. 그들 음악의 이 독창성이란 아무리 들어도 비틀스 음악에 질리지 않도록 만드는 힘으로 설명된다.



클래식 진영의 오랜 대중음악에 대한 홀대 또한 비틀스와 함께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예스터데이’를 발표했을 때는 “가난한 클래식 작곡가에게 몰래 돈을 주고 산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작곡가 노엘 로뎀은 ‘쉬스 리빙 홈(She’s leaving home)’을 두고 ‘슈베르트가 쓴 작품에 필적하는 곡’이라고 극찬했다. 유진 오르만디도, 카라얀도 위엄을 풀고 비틀스 음악을 연주했다. 지금에 와서 클래식 오케스트라가 대중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조금도 새로운 소식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발표한 앨범마다 도전과 실험으로 일관했다. 그것이 음악가의 절대조건임을 일깨웠다. 명반 중의 명반이라는 1967년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는 록이 펼쳐낼 수 있는 예술성에 대한 도전이었고, 1969년 ‘애비 로드’ 앨범은 팝 오페라를 실험했다.



이 두 장의 앨범과 더불어 ‘러버 소울’ ‘리볼버’ ‘화이트 앨범’은 비틀스의 5대 명반으로 불린다. 비틀스가 후대들의 영원한 벤치마킹 대상이 되는 이유는 최고 인기와 더불어 이 앨범들에 구현한 실험정신 때문이다.



비틀스 음악에 격랑의 파도와도 같았던 1960년대 정치사회 분위기와 풍속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서구사회에서 처음으로 기성 가치와 질서에 젊은이들이 저항하던 그 시절에 현실 탈출과 히피의 자유연애, 동양종교에 대한 관심, 소외와 미래불안 등 당대 청춘의 일반정서가 모두 비틀스의 음악에 담겨 있다.



폴 매카트니는 “우리는 1960년대의 대변자였다”라고 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고 동시에 비틀스광이었던 고 레너드 번스타인은 “후대의 사람들이 1960년대를 알려거든 비틀스 음악을 들으라”라고 요약했다. 청춘들이 숨 가쁘게 달려간 시대를 포착하는 비틀스 음악의 시대성이야말로 예술성과 더불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축이다.



예술성과 시대성 말고 청춘의 이상과 정열, 신념으로 세계 최고에 올라선 비틀스 네 멤버가 보여준 젊음의 순수한 태도 또한 그들을 위대하게 만든 이유다. 그들의 위대함은 이제 교육적 가치를 지니며 그것은 앞으로의 세대가 비틀스로부터 그만큼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일러준다. 대중음악평론가(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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