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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로 먹고, 무쳐 먹고, 구워 먹고…3000원어치만 사도 넉넉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이영미의 제철 밥상 차리기 <28> 가을전어의 고소한 맛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가을 전어” “가을 전어 입하”.

주말에 서민들이 모이는 선술집에 부쩍 이런 광고가 많이 붙어 있다. 계절이 바뀌어 새 메뉴를 마련했으니, 와서 맛들 보시라는 유혹이다. 더 심한 유혹도 있다. 화덕을 아예 길거리에 내다 놓고 소금을 뿌려가며 전어를 굽는 것이다. 지글지글 전어가 구워지면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동네 전체가 전어구이 냄새로 진동을 한다. 이 정도면 집 나간 며느리는 물론 아직 결혼도 안 한 처녀도 젓가락 들고 찾아들 것 같다.







전어가 이토록 유행한 것은 최근 10년 내의 일이다. 생선회가 바닷가 사람들이나 일식 매니어들의 음식이 아니라, 전국적이고 대중적으로 소비된 것도 불과 30년 정도밖에 안 된 일인 듯하다. 그 시작은 연골의 뼈에 희고 고소한 살을 초고추장 맛으로 먹는 아나고나 광어·우럭 등 맑은 맛의 생선이었다. 수족관 트럭에서 부지런히 양식 광어와 우럭을 실어 나르면서 동네마다 저가 생선회 가게들이 고깃집과 경쟁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렇게 회 맛을 알게 된 사람들이 좀 더 강한 맛, 뼈째 먹는 생선으로까지 나아갔고, 그것이 전어였다고 보인다.



전어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것은 무엇보다 자연산에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점 아니었을까. 양식으로 키운 광어나 우럭보다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자연산 회를 먹을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런데 전어가 유행하자 6~7년 전부터 전어 양식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항생제를 쓰지 않는 데다 맛의 차이가 거의 없으니, 할 만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몇 년 후 새만금 등의 공사로 서해안 등의 연안 생태계가 바뀌어 전어 어획량이 급증했고, 월동을 할 수 없어 오로지 한철 장사로 끝내야 하는 전어 양식은 거의 폭탄 맞은 꼴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웬만한 전어는 모두 자연산이란다.

가을 전어가 유명해지다 보니, 성급한 장삿속에 9월 초부터 횟집에서는 ‘가을 전어’를 팔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 전어는 날이 서늘해질수록 맛이 고소해진다. 9월 초의 덜 고소한 전어를 좋아하는 취향도 없지는 않으나, 나는 고소한 전어를 좋아한다. 서울에 살다 보니, 나도 성급한 도시인의 마음이 되어서일까. 9월 초에 참지 못하고 전어 회를 한 번 사먹었다. 역시 맛이 싱거웠다.



그런데 9월 하순이 되니 현격하게 고소한 맛이 돈다. 장흥·무창포 등의 전어축제도 10월 초에 열린다. 하지만 전어는 꼭 가을에만 먹을 수 있는 생선은 아니다. 겨울에 들어선 12월 초에도 전어 회는 맛있다. 또 겨울 내내 생선가게에는 20㎝가 넘는 큰 전어가 싼 가격에 팔리니, 겨우내 생선구이 감으로 그만이다.



싼값에 전어구이를 푸짐하게 먹으려면 활어를 고집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수산시장이나 큰 재래시장의 생선가게에 가면, 갓 죽은 선어(鮮魚) 상태의 전어를 판다. 지난 일요일에 나는 시장에서 한 근에 3000원을 주고 전어를 샀다.



활어가 아닌 것을 불안해서 어떻게 사 먹냐고? 별로 걱정할 것 없다. 회를 썰 때 배 쪽의 잔가시가 살과 분리되고 살이 물러지면 횟감으로 적당하지 않은 것이다. 살이 탱탱해서 회를 써는 데에 별 어려움이 없으면 날 것으로 먹어도 된다. 회로 먹기에는 신선도가 떨어진 전어는 구워 먹으면 되니, 저렴한 선어를 사는 게 그리 손해는 아니다. 게다가 이웃 단골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동네 재래시장에서 주인에게 횟감인지 물어보고 사면 비교적 안전하다.

전어는 15㎝ 정도짜리가 회로 제일 맛있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가는 작은 생선이니 칼로 비늘 벗기기도 쉽다. 머리와 내장을 제거하고 물로 깨끗이 씻어 바구니에 받쳐 물을 뺀다.

이제부터 칼질이다. 긴 등 지느러미와 배의 작은 지느러미를 오려내고, 머리 쪽부터 어슷하게, 마치 떡국용 가래떡을 썰듯이 얇게 썰면 된다. 집에 회칼이 하나 있으면 금상첨화이지만, 웬만한 부엌칼로도 쉽게 썰어진다(워낙 전어나 병어 같은 뼈째 먹는 회를 즐기는 남편을 위해 나는 아예, 칼 명인으로 소문난 증평대장간에서 회칼 하나를 사다 놓고 쓴다).

이렇게 썬 전어는 약간의 채소와 소스와 함께 먹으면 된다. 초고추장이 가장 선호하는 소스이지만, 나는 고추냉이와 간장만으로 먹고, 남편은 걸지게 초된장에 찍어 먹는다. 초된장은 고추장과 된장을 섞어 만든 쌈장에 마늘과 풋고추 다진 것, 식초를 섞어 만든다. 식성에 따라 양념간장에 찍어먹는 사람도 있다. 뼈까지 꼭꼭 씹으면, 맹맹한 살덩어리 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비릿하게 진하고 고소한 맛이 입 안을 채운다. 청주나 막걸리로 목을 축여가며 전어 씹기에 여념이 없다.

붉은 살 생선인 전어는 회 무침을 해도 좋다. 초고추장에 미나리·쑥갓·깻잎·풋고추 등을 넣고 함께 무쳐내는데, 이 역시 멸치회처럼 고추장과 된장을 섞어 무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은 채소 값이 워낙 비싸 전어 값보다 채소 값이 몇 배로 드니, 그냥 먹을 수밖에 없다.

전어 3000원어치가 어찌나 넉넉한지, 둘이 충분히 먹고 남는다. 다 먹을 자신이 없으면 처음부터 서너 마리를 구이 감으로 남겨놓는 게 현명하다. 머리도 내장도 제거하지 않고 그냥 등에 어슷어슷 칼집을 낸 후, 소금 뿌려서 구우면 된다. 전어구이 매니어들은 머리부터 내장까지 모두 먹어야 고소한 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하지만, 혹시나 사료 먹여 키운 양식 전어이면 어쩌나 싶어 나는 그냥 살만 발라 먹는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요즘 3000원 들고 나가, 그럴듯하게 한 접시 차려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재료다. 전어야, 고마워.






대중예술평론가. 요리 에세이 『팔방미인 이영미의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와 『광화문 연가』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등을 펴냈다.





이영미 ymlee02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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