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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민주화 개헌’ 통과 … EU가입 한 발 앞으로

터키가 ‘군사 헌법’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본격적으로 민주화를 확대하고 나섰다. 터키 국영 TRT TV는 12일(현지시간)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찬성 58%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 정부의 개헌안이 통과됐다고 보도했다. 이날은 1980년 터키 근대화 이후 세 번째 군사 쿠데타가 발생한 지 정확히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새 헌법이 터키의 국시인 정치·종교 분리정책을 흔들어 국론 분열을 일으킬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영TV “국민투표서 58% 찬성”

터키의 집권 정의개발당(AKP) 지지자들이 12일(현지시간) 국민투표 후 개헌안 통과가 확실시되자 이스탄불의 AKP 당사 앞에 모여 환호하고 있다. 터키의 국시인 세속주의를 지탱해온 군부와 사법부의 권한 제한을 골자로 하는 이번 개헌안은 약 58%의 지지를 얻었다. [이스탄불 로이터=연합뉴스]
◆헌법 어떻게 바뀌었나=개헌안은 80년 쿠데타 직후 만들어진 헌법 내용 중 26개 조항을 손질했다. 핵심은 그간 터키를 지배해온 군부와 사법부의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다. 개헌안은 이를 위해 케난 에브렌 장군 등 80년 쿠데타 주모자들에 대한 기소 면책 특권을 폐지하고, 군 간부를 군사법정이 아닌 민간 법정에 세울 수 있도록 했다.



또 헌법재판소와 판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갖는 판검사최고위원회 구성원을 의회와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헌재가 갖고 있는 정당해산권도 제한했다. 반면 국민의 자유와 권한은 크게 강화했다. 국민의 사생활과 아동·노인·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신설했다. 여성 차별도 철폐했다.



◆‘미완의 민주화’ 개혁=에르도안 총리는 개헌안 통과가 확실시되자 이를 “민주주의를 향한 일대 사건(milestone)”이라고 평가하며 “쿠데타 정권의 지배는 끝났다”고 선언했다고 미국 CNN은 보도했다. 반면 반대파는 새 헌법이 “정·교 분리라는 ‘세속주의’ 국시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터키는 국민의 99%가 무슬림이지만 주변 아랍 국가들과 달리 정치와 종교를 엄격히 분리하고 있다. 23년 터키공화국을 세운 ‘터키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파샤(장군) 때부터의 국시다. 군부와 사법부는 그간 이 같은 세속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해 왔다. 군부는 이슬람 성향의 정당이 집권할 때마다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전복시켰다(60, 71, 80년). 62년 출범한 헌법재판소도 그간 이슬람 성향의 정당 26개를 해산시켰다. 국민도 국시 수호를 위해 군부의 정치개입을 용인해 왔다.



반대파들은 새 헌법이 군부와 사법부의 권한을 대폭 제한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세속주의 국시의 후퇴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에르도안 총리의 집권 정의개발당(AKP)은 친이슬람 성향이다. 그는 2002년 집권에 성공한 뒤로 끊임없이 ‘반(反)세속주의’ 논란에 휩싸였고, 2008년부터는 노골적으로 ‘세속주의와의 전쟁’을 벌여 왔다.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는 혐의로 4성 장군을 구속하는 등 군부에 대한 숙청도 벌였다.



세속주의 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은 이 같은 이유로 “새 헌법은 나라의 모든 권력을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것”이라며 “총리는 현대의 술탄(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이슬람 군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방은 터키 개헌의 후폭풍 걱정=서방 세계는 우선 터키의 개헌을 환영하고 있다. 터키가 가입을 추진 중인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안젤라 필로테 대변인은 최근 브리핑에서 터키의 개헌을 “우려스러운 내용도 있지만 전체적으론 올바른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 뉴욕 타임스는 유럽 관리들 사이에 “터키의 개헌이 사법부를 정치적 논쟁거리로 만들고 나라를 둘로 분열시킬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고 전했다.



서방이 터키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는 것은 그간 터키가 서방과 아랍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터키는 미국의 대(對)중동전략의 핵심 파트너다. 만약 터키가 세속주의를 버리고 이슬람 국가화된다면 미국으로서는 대대적인 전략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최근 터키는 이전의 친서방 정책과는 다른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이란 제재안 표결 때 반대표를 던졌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봉쇄 완화를 이끌어내 에르도안이 일약 ‘무슬림의 영웅’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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