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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랜드마크

1981년 사회당을 이끌고 첫 좌파 대통령에 오른 프랑수아 미테랑(1916~96년)은 취임 직후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가장 큰 논란은 루브르 뜰 안에 유리 피라미드를 설치하려는 중국계 미국 건축가 I M 페이의 설계안이었다. 반대여론이 들끓었다. 800여 년의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루브르에 손을 댈 경우 고전미를 해친다는 이유였다.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이 되는 89년 그 모습을 드러냈다. 1m짜리 유리판 600여 개로 구성된 21m 높이의 유리 피라미드에 ‘과거와 현재의 절묘한 조합’이라며 전 세계는 극찬했다.



미테랑은 95년까지 재임 14년간 사형제 폐지, 유럽 통합 등 정치적·사회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파리를 기념비적 건축물로 재탄생시키려 한 ‘그랑 트라보(Grands travaux, 일명 大役事)’ 정책은 가장 돋보였다. 유리 피라미드를 비롯해 프랑스 대혁명에 불씨를 댕긴 바스티유 감옥 자리에 세운 오페라극장, 내부가 뻥 뚫린 거대한 정육면체로 된 그랑 다르시(Grande Arche, 일명 신개선문), 책을 펼쳐놓은 형상의 국립도서관(미테랑 도서관) 등 10여 개의 건축물이 그것이다. 모두가 파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됐다. 평소 그는 “건축의 위대성, 그것은 미학적 수준과 위대한 국민성 사이에 직접적 관계가 있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85년 소르본대에선 “문화가 경제다. 문화에 대한 투자가 곧 경제에 대한 투자다”라며 자신의 건축철학을 열변하기도 했다.



미테랑에겐 86년과 93년 행정부를 우파 총리에게 넘기는 좌·우파 동거정부(Cohabitation)라는 정치적 시련이 있었지만 건축정책에는 변함이 없었다. 거대 건축물에 집착한 탓에 ‘파라오 콤플렉스’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관광객은 미테랑 시절 건립된 파리의 랜드마크를 보려고 오늘도 몰려들고 있다.



서울 한강대교 밑에 있는 노들섬에 한국의 랜드마크로 건립을 추진해온 오페라하우스 사업이 좌초될 위기라고 한다. 세계 유명 도시에는 어디나 랜드마크 하나쯤은 있다.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상하이의 동방명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등이 쉽게 떠오른다. 그렇다면 고작 남산타워(현 N서울타워)와 63빌딩을 서울의 랜드마크라고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까. 낯이 뜨겁다. 서울도 번듯한 랜드마크 하나 정도는 있어야 국제도시라는 소리를 듣지 않겠는가.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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