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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대한민국을 미워하는 병

북한 주민의 ‘대한민국 국민화’ 작전이 수립됐다 한다. 을지프리덤가디언(UFG)연습에서 이 계획을 가상 훈련했다고 통일부가 얼마 전 밝혔다. 북한 급변(急變)사태 때 치안질서 및 행정력 회복 등의 안정화를 도모하는 정책이다. 언젠가 닥칠 사태에 대비한 적절한 계획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 보도를 보면서 오히려 ‘대한민국 사람들의 대한민국 국민화’가 더 시급한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양승태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에 펴낸 저서 『대한민국이란 무엇인가』에서 대한민국의 국가로서의 존립에 의문을 제기한다. 국가란 집합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나 이상에 의해 규정되고 구별되는데, 공통가치를 결여한 대한민국은 큰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몇 달 전 끝난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인들은, 특히 젊은이들은 다시 “대한민국”을 소리 높여 외쳤다. 이전의 국제적 스포츠 이벤트에서도 똑같은 열정이 넘쳐났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대한민국에 대한 부정과 폄훼(貶毁)가 난무한다. 이러한 모순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한국인들은 ‘대한민국’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알고 있을까? 그러기에 무작정 외치는 “대한민국”이란 구호는 무척이나 공허하게 들린다.

좌파 지식인의 대표 격인 분이 요즘 열심히 공부한다는 소문을 여러 믿을 만한 소스를 통해 들었다. 그런데 공부하는 분야가 본인의 전공이 아닌 물리학·화학·선박 좌초·어뢰 등에 대한 것이며, 그 목적은 천안함 폭침(爆沈)이 “절대 북한의 소행이 아니며 대한민국 정부의 조작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강변하기 위함이라 한다. 이 정도면 거의 병적인 집착 수준의 국가 정체성 부정이다. 그런데 국민의 20여%가, 특히 많은 젊은이가 이런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사회정신의학적 취약성을 보여 준다. 진정 국가로서의 존재를 의심해 봐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해방 후 식민지체제를 탈피하고 근대 국민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민족주의 교육이 강조됐다. 손상 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당연한 과정이었고 또 기대했던 성과도 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혼동하는 폐쇄적 민족주의가 뿌리박는 부작용이 생겨났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과도한 국가주의도 문제였다. 최고지도자가 곧 국가이고,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이 횡행했다. 그런데 이러한 세태에 대한 반(反)작용으로 어느 사이 반(反)국가주의가 퍼져나갔다.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던 1980년대 초반 당시, 필자가 철저하게 배우고 세뇌된 것은 조직적인 대한민국 미워하기와 반국가주의였다. 폐쇄적 민족지상주의와 반국가주의의 결합은 강력했다. 이런 사조는 오랜 숙성 과정을 통해 근래 맹위를 떨치고 있다. 미래세대를 키우는 국사교과서에서조차 대한민국을 부정할 정도다.

주위에서 ‘애국’이란 개념이 촌스러운 단어로 인식되며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막무가내식 불복종, 방종과 반항이 민주주의라 착각하는 것이 이런 흐름의 한 현상이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성숙하기도 전에 쇠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조차 든다. 공항·고속철·치수사업·항만 등 인프라(Infra) 건설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이 아닌) 무조건적인 반대는 이런 풍조의 또 다른 현상이다. 인내심 있는 설득의 부재, 그리고 4대 강을 꼭 동시에 착공해 임기 내에 완료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있다. 그러나 인천국제공항 건설에 대해 갖가지 터무니없는 이유를 대며 결사 반대한 사람들이 한마디 자기 반성도 없이 비슷한 레퍼토리로 이제는 4대 강 사업도 무조건 반대한다. 재미있게도, 절대 짓지 말았어야 할 경제성 없는 예천공항, 무안공항 등 포퓰리즘적인 선심성 사업에는 별 반대가 없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현재 좌우를 초월한 공통가치를 못 갖고 방황하고 있는 나라다. 이제는 정반합(正反合)의 발전과정에서 합을 지향할 때다. 즉, 과거의 거친 권위주의적 국가주의와 현재의 파괴적인 반국가주의를 변증법적으로 넘어서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합리적 애정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을 더 나은 공동체로 만들기 위한 ‘공화주의적 애국(共和主義的 愛國)’의 덕성으로 무장해야 하지 않을까. ‘공화주의적 애국’이란 시민적 일체성을 중시하고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특정 공화국의 법, 정치체계, 생활방식에 충성”하는 것이다(모리치오 비롤리, 『공화주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식하고, 그 발전과정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차원의 애국이다.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 대학원 교수·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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