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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번역가 ①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김석희

창작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번역도 지난한 일이다. 오죽하면 반역이란 말까지 있을까. 단어 단어에 깃든 역사를 읽어내야 하고, 문장 문장에 숨겨진 철학을 끄집어내야 한다. 사상과 감정의 징검다리,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번역가 시리즈를 시작한다.



원고 토씨 하나 손 못 대게 하는 이사람

번역가 이름만 보고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경우가 있다. 『로마인 이야기』 15권 시리즈, 『털없는 원숭이』 『고야 평전』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로 유명한 김석희(58)씨는 그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힌다. 번역에 손을 댄 지 30년이 흘렀다. 지금까지 180종, 250권을 번역했다. 불문학을 전공하고, 영어와 일어까지 능통한 그는 허먼 멜빌의 『모비딕』 같은 까다로운 작품을 만났을 때는 3개 국어를 동원해 문맥을 파헤친 뒤 우리말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었다. 그는 또 단어 하나를 놓고 씨름하며, 손 하나 댈 것 없는 ‘완벽원고’를 출판사에 넘겨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히 ‘번역 장인’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지난해 4월 고향 제주도로 낙향해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번역과 창작 활동을 겸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김석희씨는 “번역에 30년을 바쳤다고 해서 단어 하나 건너 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글이 주는 희열과 함께 해온 시간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태성 기자]
-요즘 번역가들의 프로필을 보면 깜짝 놀랄 만큼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선배 번역가로서 감회가 다를 것 같다.



“번역은 다른 문화, 새로운 문물을 가장 첨단에서 소개하는 작업이다. 책이라는 형태가 아니어도 번역은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다. 번역가들은 앞으로 더욱 늘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번역에 평생을 바칠 각오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 번역해 번 돈으로 생활도 하고, 작업이 성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각오가 필요하다.”



-과거에 비해서는 번역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그래도 아직도 번역을 무시하는 풍조가 있다. 외국어를 읽을 수 있으면 번역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여긴다. 독해와 번역은 엄연히 다르다. 번역을 쉽게 여기는 풍조에는 과거 근대화·산업화 시기에 일본 번역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서 ‘무임승차’한 원인도 있다. 그들의 번역이 나름대로 치열하게 연구하고 번역한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최근 민음사·시공사·문학동네·펭귄 등 문학전집 형태로 출간되는 고전이 늘고 있다.



“굉장히 바람직한 현상이다. 본격적으로 번역 경쟁이 벌어진 것이다. 독자들이 비교할 수 있게 됐으니 번역이 제대로 평가를 받을 시기가 왔다고 본다. 문학이 시대를 반영하지만 번역도 첨예하게 시대를 반영한다. 1950년대 번역된 『마담 보바리』와 요즘 번역되는 『마담 보바리』가 같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까뮈의 『이방인』 첫 절을 보자. 1950년대 이휘영 선생이 번역한 것은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로 시작한다. 반면 80년대 김화영 선생의 번역은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시작한다. 같은 문장인데도 시대가 바뀌니 번역이 이렇게 달라졌다. 과거에 번역된 고전도 다시 돌아봐야 한다.”



-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창작집 『이상의 날개』, 장편소설 『섬에는 옹달샘』도 냈다. 창작 경험이 번역에 도움이 되나.



“물론이다. 80년대 초에 번역하고 97년에 새로 매만진 『프랑스 중위의 여자』는 번역에 내 인생을 바쳐도 되겠구나 하고 깨달은 기회가 됐다. 좋은 글을 만나 번역할 때 창작의 갈증이 해소되는 희열을 느낀다. 작가가 유난히 공들여 쓴 대목을 볼 때는 원작자와 한 마음이 된다. 저자의 문체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와 호흡을 함께 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이다. 번역자가 원작자의 감흥을 공유하지 못하면 기계적인 번역이 된다. 그런 점에서 작가를 꿈꾸며 문학 공부한 밑천이 번역에 큰 도움이 됐다.”



-완전원고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면서 함부로 고치지 말라고 말한다. 성격이 그렇다.(웃음) 번역 의뢰를 받으면 그 출판사의 보조용언 표기법부터 물어본다. 그곳 표기법에 맞추기 위해서다.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연필로 표시해 보내달라고 당부한다. 이제는 인터넷 시대다. 번역을 공부하는 젊은이들이 내가 번역한 힐러리 자서전『살아있는 역사』를 교재로 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내가 이해되지 않으면 넘어가지 않는 게 원칙이다.”



-번역가 지망생들에 한마디 한다면.



“번역가도 직업이다. 직업인다운 성실성이 필요하다. 번역을 시작하려면 먼저 태도를 분명히 설정해라. 멀리 내다보고 생활 리듬을 지키며 자기관리를 잘해야 한다. 번역도 글 쓰는 작업이지만 창작과는 다르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영감을 받아 2~3일 밤샘하는 일은 창작할 때나 하는 일이다. 번역은 꾸준히 일상화하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 몸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요즘 출판계를 어떻게 보나.



“수익성 추구는 당연하지만 ‘대박 논리’는 안 된다. 책은 문화적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 요즘 저작권료가 올라가는 일이 자주 일어나고 있어 안타깝다.”



글=이은주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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