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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민홍규에 놀아난 허술한 대한민국

각종 의혹에 휩싸인 제 4대 국새(國璽) 제작이 사기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 국새제작단장 민홍규(56)씨는 경찰 조사에서 600년 된 전통 방식의 주물기법으로 국새를 만드는 원천기술이 없다고 자백했다. 국새 제작은 경남 산청의 전통 가마가 아닌 이천의 전기로에서 했다고 털어놨다. 국새를 만들고 남은 것을 포함해 금 1.2㎏을 빼돌린 것도 시인했다. 서울 미아리 뒷산에 땅굴을 파고 주물 연습을 했다는 얘기는 삼류 코미디 같다. 입만 열면 드러나는 민씨의 거짓말에 조사 경찰조차 할 말을 잊었다고 한다.

국가의 상징물인 국새가 어떻게 민씨 같은 업자의 손에 맡겨졌을까. 민씨의 사기 행각에 대한민국 전체가 놀아날 때까지 예산을 집행하는 행정안전부는 무엇을 했을까. 제4대 국새는 2007년 행안부(당시 행정자치부)가 공모 과정을 거쳐 전통적인 주물기술이 있다고 주장하는 민씨에게 맡겨졌다. 1998년 현대적 방식으로 제작해 사용하던 국새에 균열이 생기자 전통적 방식으로 새 국새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당시 행자부가 민씨를 선정하며 시연해 보도록 하고, 주물기술이 있는지 확인만 했어도 오늘의 혼란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선정 과정이 이랬으니 사후 관리가 제대로 됐을 리 없다. 행안부는 국새가 완성된 후에도 성분이나 무게를 챙기지 않은 채 민씨의 말만 듣고 포함되지도 않은 주석이 들어간 것으로 홍보물을 만들었다. 주문한 상품을 확인하는 기본적인 절차조차 거치지 않았다.

정부는 민씨에게 국새 제작비용으로 1억9000만원의 예산을 줬다. 경남 산청군은 2007년 대왕가마를 갖춘 전각전을 세우는 데 5억원을 지원했다. 산청군과 경남도는 2008년에는 60억원이 드는 국새 관련 의장품을 전시할 등황전을 착공, 지금까지 40억원을 투입했다. 행안부는 최근 7억원의 특별교부금까지 주기로 했다가 논란이 일자 집행을 중단했다. 정부 예산을 써 본 사람은 알 것이다. 1000만원 예산을 타 쓰는 데 얼마나 많은 서류와 읍소와 절차가 필요한지. 도대체 민씨는 5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어떻게 그리 쉽게 타 썼을까.

언론도 민씨의 사기 행각을 걸러 내지 못한 책임이 있다. 대부분의 신문·방송 매체는 정부와 민씨의 얘기를 그대로 믿고 기사화했다. 한 방송사는 거짓으로 판명된 제작기법까지 담은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기도 했다. 중앙SUNDAY도 6월 6일자 14면 ‘한국인의 혼을 일깨우는 민홍규 국새문화원장’이란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기사를 작성한 시점이 각종 의혹이 불거지기 이전이긴 하지만 민씨의 신뢰성을 냉정하게 따져 보는 사전 취재를 거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 자리를 빌려 독자에게 사과를 드린다. 경찰은 1~3일 민씨를 소환해 조사했다. 무엇보다 누가 그에게 국새 제작을 맡게 했는지가 선명하게 밝혀져야 한다. 이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 검증 시스템을 검증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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