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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국이 좋아서 … 10년간 한·일 오가며 100경기 봤죠”

미오는 K-리그 15개 팀 중 울산을 가장 좋아한다. 2001년부터 울산을 응원했다. 지난달 29일 울산과 포항의 경기가 열린 울산문수월드컵경기장을 찾은 가와사키 미오 씨가 울산 캐릭터 미호(왼쪽), 건호(오른쪽)와 기념촬영을 했다. 이 경기는 미오 씨가 관전한 100번째 K-리그 경기였다. [가와사키 미호 제공]
“수원-서울전 티켓 현장에서 살 수 있을까요?”
일본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그녀의 이름은 가와사키 미오(38). 8월 27일 오후 한국에 오는데, 다음 날 열리는 수원과 서울의 경기 입장권이 남아 있느냐는 문의였다.

K-리그 사랑에 푹 빠진 일본 여성팬 가와사키 미오

현장에서 표를 산 미오는 K-리그 최고 빅 매치로 꼽히는 수원과 서울의 경기를 특석에서 봤다. 자신이 응원하는 이상호(수원)가 골을 넣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수원 서포터 그랑블루와 하나가 됐다.

광주 상무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최성국과 김정우는 울산 시절부터 미오와 친하다. 미오는 두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4윌 광주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29일에는 울산으로 내려가 울산과 포항의 K-리그 경기를 역시 특석에서 봤다. 이 경기는 미오가 본 100번째 K-리그 경기였다. 망원 렌즈를 이용해 그라운드를 누비는 울산 선수들의 사진을 부지런히 찍었다. 자신의 홈페이지 ‘싸이월드’에 올리기 위해서였다.

다음 날 그녀는 울산 동구에 있는 울산 현대의 클럽하우스를 찾아 선수들의 회복훈련을 참관했다. 운동장을 돌던 선수들은 미오를 보자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훈련이 끝나자 미오는 가족 같은 울산 현대 구단 직원들과 함께 저녁으로 아구찜을 먹었다. 좋아하는 소주도 실컷 마셨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그녀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2001년부터 10년째 반복되고 있는 ‘일본인 미오의 K-리그와 함께하는 주말’이다.

조현·유상철·김정우에도 열광
미오는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미군 7함대의 모항으로 유명한 곳이다. 두 살 위의 오빠는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선수였다. 하지만 미오는 축구에 관심이 없었다. 열세 살 때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고등학교 축구 경기를 보고 ‘유니폼이 참 예쁘네’라고 느낀 게 전부였을 정도다.

2008년 일본 전통 의상인 유카타(여름에 입는 기모노)를 입고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을 찾은 미오. 관중은 물론 선수들에게도 큰 관심을 받았다.
그녀가 축구에 눈을 뜬 건 열여섯 살 때다. 당시 일본 열도는 샛별 나나미 히로시(2000년 아시안컵 MVP 등 일본의 간판 선수가 됨)의 등장에 술렁거렸다. 미오도 마찬가지였다. 동갑내기 나나미의 경기를 보기 위해 미오는 조퇴를 하고 처음 경기장에 갔다. 나나미는 미오 앞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후 미오는 나나미의 열성팬이 됐다. 나나미는 2008년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미오는 지금도 나나미가 뛰었던 주빌로 이와타 후원회 멤버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1998년 미오는 아시아클럽챔피언십 경기를 텔레비전으로 보다 한국의 한 선수에 반했다. 당시 포항 고졸 신인이었던 이동국이었다. 미오는 “축구를 정말 잘 했고 얼굴도 잘생겼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동국을 보기 위해 한국으로 갈 마음까지는 생기지 않았다. 포항은 그해 아시아클럽 챔피언십을 2연패했다.

미오로 하여금 한국 여행을 결심하게 만든 사람은 수원에서 뛰던 조현(1996년 수원에 입단해 2001년 울산에서 은퇴)이었다. 미오는 “당시 수원은 일본에서 꽤 유명한 팀이었고 조현은 보이지 않게 팀에 기여하는 선수였어요. 남아공 월드컵 때의 김정우라고 할까. 고종수가 최고 스타였지만 저는 조현을 응원했죠”라고 말했다. 1999년 9월 12일 그녀는 수원종합운동장을 찾아 수원과 부천의 바이코리아컵 K-리그를 관전했다. 조현은 후반 교체 출전했고 수원이 3-0으로 이겼다. 하지만 미오는 이후 한국을 자주 찾지 못했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J-리그에서 활약하는 유상철(39)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미오가 K-리그에 빠진 이유, 情
2001년 조현의 울산 이적은 미오가 다시 K-리그를 찾게 된 계기가 됐다. 당시 선수로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조현에게 응원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2001년 4월 7일 미오는 울산과 부산의 경기를 보기 위해 혼자 울산을 방문했다. 그녀의 바람과 달리 조현은 끝내 그라운드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2001년 4월 7일은 미오에게 잊지 못하는 날이 됐다. 미오는 “나와 울산, 그리고 K-리그의 인연이 시작된 날”이라고 말했다.

당시 미오는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완전 이방인이었다. 공항에서 어쩔 줄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일본어를 하는 택시 기사가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무거운 짐도 들어줬고 지도로 알려줬음에도 목적지에 정확히 데려다 줬다. 일본으로 돌아갈 때는 무료로 공항까지 데려다 준 사람도 있었다.

울산 구단도 비행기를 타고 와 울산을 찾아준 미오를 반겼다. 경기가 끝난 뒤 직원들은 뒤풀이 장소에 미오를 초대했다.

“울산에 처음 온 날 울산 분들이 보여준 정(情)에 반했어요. 일본에서는 경험할 수 없던 일이었죠.”

이후 미오는 휴가 때마다 울산을 찾았다. 토·일요일에 월요일 연차를 붙였다. 무뚝뚝하던 선수들도 비행기를 타고 오는 미오의 정성에 감동해 사인 유니폼을 주는 등 따뜻하게 맞았다. 이후 미오는 울산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한 선수들의 경기도 찾았다. 김정우·최성국(이상 광주)·이상호(울산)·이종민(서울)·김형범(전북)·유호준(부산) 등이 미오가 응원하는 선수들이다. 이들을 보기 위해 미오는 전국을 누빈다.
미오는 울산 프런트, 선수들과 더 친하게 지내기 위해 한국어도 공부했다. 도쿄에서 한국어 학원을 다녔고 겨울에는 2주 코스로 서울에 있는 학원을 찾아 보충 수업을 했다. 10년 가까이 한국어 공부를 한 덕분에 지금은 한국말로 전화 통화를 할 정도가 됐다.

일본팀 정보 제공, 스파이가 된 미오
미오는 응원만 하는 소극적인 서포터가 아니다. 자신이 응원하는 울산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다.

대표적인 것이 2006년 ‘스파이 사건’이다. 2005년 K-리그를 제패한 울산은 2006년 8월 한·중·일 챔피언이 맞붙는 A3 대회에 참가하게 돼 있었다. 일본의 감바 오사카와 제프 유나이티드 지바, 중국의 다롄 스더와 대결을 앞뒀지만 숨 돌릴 틈 없는 K-리그 일정 탓에 코칭스태프는 상대팀 분석을 못하고 있었다.

대회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울산과 성남의 경기가 열린 탄천종합운동장. 울산의 상황을 어떻게 알았는지 미오는 탄천종합운동장을 찾아 울산 코칭스태프에 감바 오사카와 제프 유나이티드 지바의 최근 세 경기 중계화면이 담긴 DVD를 건넸다. 코칭스태프가 이동 중에도 상대팀을 분석할 수 있도록 휴대용 DVD 플레이어까지 선물했다. 코칭스태프는 물론 선수들도 미오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했다.

미오의 DVD 자료 덕분인지 울산은 A3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제프 유나이티드 지바에는 2-3으로 아쉽게 졌지만 감바 오사카를 6-0으로 대파했다. 당시 K-리그를 제쳤다고 자부하던 일본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미오는 울산 현대가 일본 가고시마에 겨울 훈련 캠프를 차린 지난해와 올해 휴가를 내 찾아와 통역으로 봉사했다. 또 울산 선수들이 일본에서 판매되는 축구화를 사고 싶다고 연락하면 한국에 올 때 보따리 장수처럼 양 손 가득 축구화를 들고 온다. 생일을 맞이한 선수들에게 선물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지난해 울산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호주·중국 원정을 떠났을 때도 미오는 휴가를 내 원정 응원을 갔다.

“명품 살 돈으로 K-리그 보러와요”
지난달 31일, 일본으로 돌아가는 미오에게 K-리그 두 경기를 보기 위해 얼마를 썼느냐고 물었다. 미오는 “비행기 값 4만 엔, 숙박비는 20만원. 한국에서의 이동비가 15만원 정도니까 이것저것 다 합치면 8만 엔 정도”라고 답했다. 8만 엔이면 우리 돈으로 110만원쯤 된다.

“미오는 부자인가 봐요. 1년에 열 번 정도 오니까 매년 1000만원 넘게 K-리그를 보기 위해 쓰는 거네요.”

이 말을 듣더니 한참 웃는다. 그러더니 “절 봐요. 이 나이에 명품 없는 일본 여자 거의 없어요. 명품 사는 걸 포기하고 돈을 모아 K-리그를 보러 오는 거죠.”

미오는 지난 10년 동안 K-리그 경기를 100경기 이상 보면서 한 번도 공짜 관람을 한 적이 없다. 모두 표를 직접 샀다. 이제 고향과 다름없는 울산을 찾아도 경기장에는 반드시 입장권을 사서 들어간다.

“프로축구단은 관중 수입으로 운영되잖아요. 티켓을 사는 것이 좋아하는 구단을 응원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에요.”

울산 홍보팀 허진영씨는 “우리 구단에 해 준 것도 많은데 표를 꼬박꼬박 사는 걸 보면 가끔은 미안할 때도 있다”고 말한다.

현재 요코하마에서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미오는 도쿄에 있는 한 복사기 판매 회사 고객센터에서 일한다. 정확한 수입은 알 수 없지만 1년에 1000만원을 K-리그를 보기 위해 쓰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라는 건 추측할 수 있다.

도쿄 복사기 판매회사 다니는 보통여자
지난 10년간 미오가 본 경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경기는 무엇일까. 미오는 2008년 11월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울산과 포항의 6강 플레이오프를 꼽았다. 0-0으로 맞서던 연장 후반 10분, 울산 김정남 감독은 골키퍼 김영광을 대신해 김승규를 넣었다. 승부차기에 대비한 교체였다. 두 팀은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김승규는 포항 노병준과 김광석의 슈팅을 정확히 예측해 막아냈다. 울산은 승부차기에서 4-2로 포항을 물리쳤다. 미오는 “감독님의 작전이 정확하게 맞은 거 같아 경기가 끝난 뒤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보냈죠. 솔직히 120분은 좀 지루했는데 김승규의 선방 2개로 기분이 날아갈 거 같았어요”라고 돌아봤다.

지금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김형일(포항)이다. 지난해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포항과 알 이티하드(사우디)의 경기를 관전하다 김형일의 터프한 모습에 한눈에 반했다. 미오는 김형일을 ‘왕자님’이라고 부른다. 김형일의 친필 사인 유니폼은 보물 1호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결혼에 대해 물었다. “결혼하고 싶죠. 근데 K-리그에 빠져있는 절 이해해 줄 일본 남자가 있을까요.” 미오는 한국 남자에도 관심이 많다. 한국 남자와 몇 차례 소개팅도 했다. 미오는 K-리그 3경기를 보기 위해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 다시 한국을 찾는다. 물론 중간에 소개팅도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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