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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악적 마초 근성, 그 울컥하고 뜨거운 덩어리의 근원

어째 상투적이긴 하지만, 세계 최강의 로큰롤 밴드라고 흔히 일컬어지는 팀이 있다. 바로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다. 그들은 록 사운드로 웅변한다. “위악은 우리의 힘!”이라고. 그렇다. 롤·링·스·톤·스, 멋진 그 이름 다섯 글자엔 방방 뜨는 사고뭉치들의 ‘철부지 정신’이 철철 흘러넘친다. 1970년대엔 숫제 남근(男根) 모양의 거대한 풍선으로 노골적인 퍼포먼스까지, 마성(魔性)의 미학이 뭔지를 공연장에서 재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반항끼로 불 싸지르던 그들이다. 뼛속까지 관능미로 꽉 찬 말초적 마초 근성-.

박진열 기자의 음악과 '음락' 사이- 롤링 스톤스 4집 앨범 ‘Aftermath’ (1966)

간판 걸고 런던의 마키클럽 무대에 오른 이래 49년째 시끌벅적하게 구르는 중이니 그들의 ‘장수 만세’에 나는 두 손 들 수밖에 없다. 팀의 두 기둥, One & Only의 ‘보컬 배우’ 믹 재거(Mick Jagger·67)와 동갑내기 기타맨 키스 리처드(Keith Richards·초기엔 ‘s’를 빼고 썼다). 고삐 풀린 청춘의 아이콘으로 영원할 것만 같던 이들도 내일모레면 꼼짝없이 칠순 잔칫상을 받을 테니, 세월 참 덧없다(지나고 보면 모든 게 그렇지만).

1 앤디 워홀이 아이디어를 제공한 롤링 스톤스의 ‘Sticky Fingers’(1971) LP판 재킷 커버. 여기엔 이처럼 진짜 지퍼가 달려 있다. 지퍼를 내리면 앤디 워홀 이름이 적힌 흰색 삼각팬티의 사내가 살짝 드러난다. 놀랍지 않은가. 그들의 음란한 커버 중 단연 으뜸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후견인이기도 했던 앤디 워홀은 그들의 1집 ‘The Velvet Underground & Nico’(1967·일명 ‘바나나 앨범’) 커버도 디자인했다. 듀크 엘링턴이 아꼈던 재즈 기타리스트 케니 버렐의 블루노트 명반 ‘Blue Lights’(1958)에서 멋진 일러스트 디자인 솜씨를 뽐낸 주인공도 워홀이다. 2 데카 레이블이 새겨진 ‘Aftermath’(1966)의 영국 버전 LP판 재킷 커버.
히피들의 꽃향기로 뒤덮여 뜨겁던 60년대 후반, 롤링 스톤스는 당대의 라이벌 비틀스처럼 거룩한 인류애 같은 건 노래하지 않았다(‘All You Need Is Love’). 롤링 스톤스는 아예 처음부터 삐딱함·비속함 같은 하위문화를 컨셉트로 잡고 오지게 밀어붙였으니까. 약물 탓에 툭하면 잡혀 가던 악동 이미지에 더해 배드 보이스들의 여성 깔보기 시선은 또 어떤가. “그녀를 난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어” 하는 짓궂은 노랫말(‘Under My Thumb’)도 과연 롤링 스톤스답다.

또 건들건들 삐딱한 눈빛으로 ‘(I Can’t Get No) Satisfaction’을 부를 때의 믹 재거, 그 거들먹거림을 나는 좋아한다. “만족할 수 없어, 어떤 여자애라도 나는 만족할 수 없다니까… 지금 난 또 다른 여자를 꼬시는 중이야”라고 노래하며 보여 준 현란한 발놀림 오두방정(?)까지. 아닌 게 아니라 그즈음 어느 인터뷰에선가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지, 왜 있는 그대로 노래하면 안 되는 법 있나”라고 되물었던 믹 재거 아닌가.

이상과 욕망의 연대기, 60년대를 양분했던 비틀스, 롤링 스톤스에겐 제법 아이러니한 구석이 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쪽이라면 오히려 모범생 이미지인 비틀스다. 알다시피 비틀스는 영국 리버풀의 노동계급 출신이다. 반면 믹 재거, 키스 리처드, 브라이언 존스(Brian Jones·1942~69·초기 팀의 리더이자 리듬기타리스트)는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컸다. 이 때문에 비틀스가 록음악을 통해 스타를 꿈꾸던 신분 상승 욕구가 강한 ‘범생’이라면, 롤링 스톤스는 그냥 음악 그 자체를 즐기며 한껏 뻐기는 한량쯤 되겠다. 음악의 뿌리도 로큰롤과 리듬 앤 블루스로 각각 달랐다. 롤링 스톤스는 팀 이름조차 ‘시카고 블루스의 아버지’ 머디 워터스의 노래 ‘Rolling Stone Blues’에서 따올 정도였으니까.

내가 맨 처음 손에 쥔 롤링 스톤스 음반은 ‘Black And Blue’(1976)다. 중2 여름방학 때니까 78년이다. 비록 ‘빽판(불법 LP판)’이지만. 그때 첫 느낌은 달짝지근한 ‘Memory Motel’ 빼곤 그저 그랬지만 오래도록 따스하게 기억한다. 아무튼 그 뒤로 알게 모르게 푹 빠져들었다. 하나 둘 그러모은 롤링 스톤스 정규 앨범만 40타이틀에 육박한다(지금도 간간이 나오는 부틀레그 음반을 빼고도). 그중 특히 1집부터 ‘Exile On Main St.’ 앨범(1972)까지를 끼고 사는 편이다.

가야금산조 명인 김죽파 선생이 그랬다던가, 소리에 환장한 나머지 남도 흥타령을 듣다가 “너무나 좋아 바위에 머리를 짓이겨 죽고 싶다”고. 얼추 이해할 만하다. 어떤 영화나 책이 기막히게 좋다 한들 서너 번 넘게 볼 수 있으랴. 음반은 다르다. 되풀이해 들어도 그리 물리지 않는, 아니 들으면 들을수록 미처 못 느꼈던 깊은 맛을 곧잘 우려내니 말이다.

이렇듯 네댓 장으로 롤링 스톤스 애청반을 한정하기란 고역이지만 굳이 딱 한 장 꼽자면(영국 발매반 기준으로) 4집 앨범 ‘Aftermath’(1966)다. 비틀스가 명반 ‘A Hard Day’s Night’(1964)로 먼저 성취했듯 리메이크곡 없이 처음으로 앨범 전체를 재거, 리처드 자작곡으로만 꾸몄다. 재킷 커버와 수록곡에서 영·미 발매반이 서로 다른데, 나는 영국 버전 쪽에 좀 더 끌리곤 한다. 비록 그 유명한 ‘Paint It Black’이 빠졌지만 ‘Out Of Time’(‘디어헌터’ 그늘에 가렸던 제인 폰다,

존 보이트 주연의 78년 베트남 반전영화 ‘귀향’ 엔딩 신에서 들려지던 그 먹먹함이란!)처럼 내 지친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는 연주가 네 곡 더 들어 있다. 가슴속에서 뭔가가 울컥하며 뜨거운 덩어리로 뭉친다. 시타르, 덜시머, 비브라폰 같은 악기까지 근사한 솜씨로 주무르는 브라이언 존스의 존재감 덕분이다. 삶의 오의(奧義)를 새긴 노래가 아니면 또 어떤가. 믹 재거 목소리는 저렇게 윙윙거리는데.

천하의 롤링 스톤스도 80년대 중반께부터는 구르는 돌에 슬슬 이끼가 끼기 시작한다. 나이 먹어 가며 모서리가 깎여 나가 둥글둥글해진 탓이리라. 사실 반질반질 다림질된 요즘의 팬시 록음악이든, 드림 시어터나 포큐파인 트리 같은 밴드가 쏟아 내는 초절기교이든 그 세련된 자극에 길든 젊은 록 팬들한테 롤링 스톤스 연주는 ‘핫’하지 않다. 그래서일까. 지난달 외신은 롤링 스톤스 은퇴 소식을 알렸다. 근력이 달려 내년 투어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내려올 거라고. 근데 아니다. 쾌락과 탐미와 퇴폐 사이 그 어디쯤을 여태 서성대는 그들의 격정, 멈추지 않으리라. 적어도 완벽하게 정지된 시공간, 내 방의 오디오 앞에서는.


▶▶▶톱 사진 설명:

롤링 스톤스의 저주받은 사이키델릭 걸작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1967) 오리지널 LP판 커버 디자인. 렌티큘러(입체사진) 기법으로 오돌도톨하게 인쇄해서인지 들고 이리저리 들여다만 봐도 몽롱하다. 아마 당시 세계 처음이지 싶다. 사이키델릭 록으로 풀어낸 비틀스의 컨셉트 명반 'Sgt. Pepper's…' 따라하기 버전인 셈인데 당대엔 평가절하되기도 했다. 하지만 수록곡 'She's a Rainbow' 등은 언제 들어도 황홀하다. 왼쪽부터 찰리 워츠(드럼), 키스 리처드(리드 기타), 믹 재거(보컬), 브라이언 존스(리듬기타), 빌 와이먼(베이스).

박진열 기자


정규 음반을 왜 앨범이라고 할까. LP판을 왜 레코드라고 할까. 추억의 ‘사진첩’이고,‘기록’이기에 그런 거라 생각하는 중앙일보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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