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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한 새우젓에 애호박 송송, 돼지고기 넣고 보글보글

한여름에도 밥상에 더운 음식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따뜻한 음식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참으로 대단하다 싶다. 조반과 저녁은 새로 한 따끈한 밥이 있어야 하고, 남은 찬밥으로 때우는 점심일지라도 마지막에 눌은밥 끓인 것이라도 먹으면 갑자기 찬밥 먹었다는 느낌이 가시면서 한 끼를 제대로 먹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서양 사람들은 더운 김을 한 김 내보낸 빵이 제맛이 난다지만, 우리는 시루에서 갓 꺼낸 김 펄펄 나는 시루떡을 가장 좋아하듯 빵도 오븐에서 갓 구워져 나온 따끈하고 촉촉한 빵을 더 좋아한다. 이런 증상이 나이 들면서 점점 더해지는 것을 보면, 우리 몸의 요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여름에도 이렇게 따뜻한 음식을 찾는데, 하물며 처서가 지난 9월에 들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영미의 제철 밥상 차리기 <25>애호박 새우젓찌개의 개운한 맛

여름에 생각나는 찌개가 있다. 애호박 새우젓찌개다. 주재료는 애호박과 새우젓, 돼지고기다. 이 세 가지야말로 재료의 조화로 치자면 기막힌 어울림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새우젓과 돼지고기의 궁합이야 따로 말할 필요가 없다. 편육이나 족발을 찍어 먹는 기본양념은 새우젓이며, 돼지고기 비지찌개나 뼈로 국물을 낸 순댓국에는 새우젓으로 간을 해야 돼지고기 누린내를 잡을 수 있다. 새우젓은 애호박과도 잘 어울리는 재료다. 호박을 볶을 때도, 호박을 쪄서 무칠 때도 새우젓으로 간을 하면 그 짭짤한 맛이 소금이나 간장과는 또 다르게 맛깔스럽다. 이렇게 기막힌 조화의 세 재료를 섞은 찌개가 애호박 새우젓찌개다.

특별히 레시피를 이야기할 것도 없다. 돼지고기를 넉넉히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해 끓인 후 애호박과 두부를 썰어 넣고 마늘 정도만 넣어주면 끝나는, 아주 쉽고 편안한 찌개다. 기호에 따라 먹기 직전 고춧가루를 넣기도 하고 깨소금을 뿌려주기도 한다.
돼지고기로 찌개를 끓인다고 하면 사람들은 일단 누린내와 느끼함을 떠올린다. 하지만 새우젓으로 간을 한 이 찌개는 돼지고기의 감칠맛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새우젓 덕분에 깔끔한 맛을 낸다. 심지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여기에 제철 애호박을 곁들이면 달착지근한 호박의 향취를 살리고 두부의 부드러움까지 더해진다.

주의할 것은 새우젓을 건더기째 넣을 경우 끓으면서 새우에서 우러나온 짠맛이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새우 건더기가 굵을수록 간이 우러나오는 시간이 더 걸린다. 따라서 처음에는 너무 짜지 않게 간을 하고, 다 끓은 후에 다시 한번 간을 보는 것이 현명하다. 새우젓을 사는 것도 주의할 대목이다. 수퍼마켓에서 소포장으로 판매하는 새우젓이나 조개젓의 상당수가 원재료가 중국산이라고 표기돼 있다. 중국산을 국산으로 속여 파는 경우도 많다고들 해 아예 새우젓도 담가 먹어야 하나 하는 고민까지 하게 만든다.

하지만 적어도 수퍼마켓에서 파는 소포장 새우젓은 눈으로 봐서도 ‘아니올시다’이다. 건더기 새우는 아주 잘고 국물은 흥건한 것이 많다. 물을 탔으니 화학조미료는 당연히 들어가야 했을 것이다. 좋은 새우젓은 눈으로 봐서 새우가 통통하면서도 곰삭은 느낌이 있고 거의 국물이 없는 듯이 건더기가 빡빡한 것이다. 갑자기 필요할 때 가게로 뛰어가면 매번 중국산을 먹을 수밖에 없으니, 여유 있을 때 전문 사이트나 전문 시장에서 믿을 만한 제품을 좀 많이 사놓고 1년 내내 쓰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새우젓 전문점에 가면 새우젓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흔히 모르는 사람은 “새우젓이라면 모름지기 육젓을 써야지”라고 쉽게 이야기하지만, 살림해 본 아줌마들은 속으로 “웃기네, 누가 육젓 좋은 줄 모르나?”라며 픽 웃는다. 육젓이 새우젓 중 최고인 것은 옳은 이야기지만, 값이 매우 비싸 찌개나 김치에 넣는 식으로는 함부로 쓸 수 없다. 산란기에 잡은 통통하고 하얀 육젓은 그 자체가 반찬으로 밥상에 오르는 것이며, 나머지 찌개나 김치 등에는 저렴한 추젓 정도를 써도 무방하다.

여름에 생각나는 찌개가 또 있다. 이 찌개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쉽게 말하면 MT 찌개다. 된장과 고추장을 넣고 온갖 채소를 넣어 대충 끓인 찌개 말이다. 특별한 음식도 아닌 아주 평범한 찌개인데, 왜 여름이면 꼭 이것이 입에서 당기는 것일까? 기억, 추억, 이런 것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1980년대만 해도 MT는 물론 등산에서조차 취사도구는 필수품이었다. 버너와 코펠, 쌀과 채소, 양념거리들을 챙겨 넣은 거대한 배낭에 심지어 텐트까지 짊어져야만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산에서 취사가 금지된 이후 포장된 밥이나 김밥, 족발이나 보쌈 등으로 등산객의 점심거리가 바뀌었지만, 이전에는 으레 산에 가면 석유 냄새 풀풀 풍기면서 버너를 가동하고 거기에 찌개를 끓이고 밥을 해 먹은 후, 시원한 숲 속 나무 냄새와 함께 스테인리스 컵에 커피 한 잔을 타서 마셔야 등산을 온 기분이 들었다.

집에서는 부엌 근처에도 가 보지 않았던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 혹은 아저씨들이 그래도 밥 한 끼를 끓여 먹으면서 찌개 흉내를 내어보던 것이 이런 찌개였다. 된장과 고추장을 적당히 풀고 애호박, 감자, 양파, 파, 마늘 등 온갖 채소를 넣고 함께 끓인다. 감칠맛을 내는 것은 그저 마술처럼 맛을 내주는 복합조미료 듬뿍 넣는 방법밖에 몰랐다. 비릿한 맛이라도 괜찮다면 만만한 꽁치통조림 하나를 따서 털어 넣었다. 참치통조림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꽁치의 인기는 시들해졌지만, 아직도 이 맛을 잊지 못하는 세대들은 집에서도 꽁치통조림으로 김치찌개를 끓여 먹기도 하고 이런 사람을 위해 아예 김치를 넣은 꽁치통조림이 제품으로 나와 있기도 하다. 혹시라도 삼겹살이나 쇠고기를 챙겨온 ‘럭셔리’한 팀이라면 그 고기를 좀 썰어 넣는다. 와, 이 정도면 그야말로 황제의 식사 부럽지 않다(얼마 전 이 말을 함부로 썼다가 분노한 네티즌들의 원성에 혼쭐난 분이 계셨다. 이 말은 이럴 때나 쓰는 것이다).

두 찌개 모두 고기에, 온갖 여름 채소, 그리고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본양념으로 맛을 낸 것들이다. 아무렇게나 끓인 찌개라고 하지만, 이런 찌개가 맛이 없을 수 없다. 여름이 더 가기 전에, 오늘은 오래간만에 MT 찌개나 끓이고 남편과 소주 한 잔 기울여야겠다.



대중예술평론가. 요리 에세이 『팔방미인 이영미의 참하고 소박한 우리 밥상 이야기』와 『광화문 연가』 『한국인의 자화상, 드라마』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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