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강한 남자 태수

화실은 목조건물 2층에 있었다. 재수 무렵 내 주위에는 미술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친구들 때문에 나는 화실에 자주 놀러 갔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태수도 그 무렵의 친구다. 다리가 불편할 뿐 태수는 나보다 힘도 세고 말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불렀다. 얼굴도 잘생기고 무엇보다 성격이 남자답고 시원시원해 늘 주위에 친구가 많았다. 물론 여자친구도 포함해서 말이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그런 게 질투가 났을까? 나는 태수를 자주 놀렸고 태수가 나를 잡으려 하면 재빨리 달아나곤 했다. 태수도 빨랐지만 불편한 한쪽 다리 때문에 번번이 나를 놓치고 분해했다. 매번 내게는 져주고 당해 주었지만 원래 태수는 받은 만큼 갚아주는 셈이 정확한 사람이다.

하루는 태수와 식당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데 한 서른쯤 돼 보이는 남자가 들어와 옆자리에 앉았다. 공간을 최대한 넓게 사용해 앉는 자세며 휘휘 둘러보는 눈길이며 술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고 바닥에 침을 뱉는 행동은 그가 불량배라는 사실을 직설하고 있었다.

내 만류에도 태수는 남자를 째려보았다. 시비를 유발해 자신의 폭력을 과시하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한 철없는 불량배를. 태수와 눈이 마주친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여기에 옮길 수는 없다. 온갖 무시무시한 욕이 다 들어 있었으니까. 대강의 내용만 옮기자면 이렇다.

나로 말하자면 사람 다리 하나를 못 쓰게 만들고 오늘 학교에서 나온 사람이다. 너희 같은 핏덩이가 바로 쳐다볼 수 없는 그런 분이다. 그런데 감히 겁을 상실한 어린 놈이 먹던 라면이나 처먹을 것이지 어디 어른을 쳐다보느냐.

나는 그 씹어 뱉는 듯한 남자의 말투도 무서웠고 중간에 악센트를 줄 때마다 번들거리던 눈빛도 겁났다. 그렇게 덜덜 떠는 나와 달리 태수는 그 남자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태수의 표정은 고요했고 말투는 서늘했다.

사람 다리를 못 쓰게 만들었다니 당신은 정말 나쁜 사람이다. 보다시피 나도 한쪽 다리가 불편하다. 나쁜 짓을 해서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으면 반성하고 당신이 상처 입힌 사람을 찾아가 사죄할 것이지 왜 이런 데서 유치한 건달 놀이를 하느냐.
고요함은 요란함을 이긴다. 남자가 조금 더 날뛰긴 했으나 그것은 돌아서기 위한 핑계나 구실 같은 거였고 결국 그는 슬그머니 물러갔다.

그해 겨울 우리는 해운대 백사장에 앉아 소주를 마셨다. 술기운이 오르자 객기를 부리고 싶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나는 옷을 입은 채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바닷속은 따뜻했다. 물이 가슴에 찰 때까지 들어가는 나를 성훈이 끄집어냈다. 그러면 나는 다시 바다를 향해 뛰어갔고 그런 나를 성훈이가 쫓아왔다. 그때 태수가 성훈이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그냥 놔둬. 겁이 많아서 더 못 들어가.”
그 말에 성훈이는 돌아섰지만 나는 오기가 생겨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가슴에 차고 턱밑까지 찰 정도로 들어가자 겁이 났다. 태수 말이 맞다. 나는 겁이 많다. 그렇게 나는 돌아서 나왔다. 이처럼 태수는 사람을 아는 데 정확했다.

태수는 계산도 정확했다. 한번은 화실을 나가는데 2층 창에서 태수가 고개를 내밀고 다급하게 불렀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무조건 빨리 올라오라고 했다. 삐걱거리는 긴 목조계단을 성한 두 다리로 쿵쾅거리며 달려 올라가 헉헉거리는 내게 태수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잘 가.”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스스로 우유부단하고 뒤끝 있는 성격이라 평한다. 웃음도 눈물도 많다.

선데이 배너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