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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일제 경찰, “한 달 내 화장실 1500개 설치” 강압적 명령

 
  1900년께 서울의 뒷골목. 한 노인이 똥바가지를 똥지게에 넣은 채 다른 노인과 대화하고 있다. 도시화가 급진전된 근대 초엽에 도시를 대표하는 냄새는 구린내와 지린내였다. 귀족들이 냄새로부터 거리를 두기 위해 ‘향기’에 몰입한 반면, 부르주아들은 ‘무취’를 선택했다. 근대 부르주아 국가가 성립된 후 국가는 도시를 ‘무취’ 상태로 유지하는 책임을 맡았는데, 전제정치하에서는 그 책임이 국민에게 떠넘겨졌다. [서울학연구소 소장 사진]
 
지상에 도시가 출현한 이래 분뇨 처리 문제는 도시 생활의 대표적인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일찍부터 집약 농법이 발달한 동아시아에서는 도시와 농촌이 생태적인 보완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 문제를 조금 경감시킬 수 있었다. 바쿠후 시대 일본 에도(江戶)에서는 분뇨 장사꾼들이 돈을 내고 분뇨를 쳐갔는데 귀족의 것이 평민의 것보다, 남자의 것이 여자의 것보다 비쌌다고 한다.

연암 박지원이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에서 묘사한 대로, 조선시대 한양에도 분뇨 수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 덕에 분뇨 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된 적은 없었다. 도로 위에 쇠똥·말똥·개똥 천지이던 환경도 도시민들의 분뇨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했다. 1920년대 중반 이후 한편으로는 도시 인구가 증가하고 교외 지역이 산업화함에 따라, 다른 한편으로는 냄새와 위생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이 형성됨에 따라 분뇨 문제가 새삼 도시민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당국에 분뇨 수거 인력을 더 많이 배치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일제 당국은 조선인의 위생 관념 부족에 책임을 떠넘겼다. 그들은 특히 서울의 중심 가로인 종로에 악취가 진동하는 것은, 대로변 상점에 변소가 없어 상인들이 요강의 내용물을 거리에 함부로 버리는 탓이라고 진단했다.

1932년 7월 종로경찰서는 종로 대로변 상점에 대한 전수 조사에 나섰다. 1535호의 상점에 변소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고, 경찰은 그들에게 한 달 내에 변소를 설치하라고 지시했다. 8월 31일 경찰은 그때까지 변소를 설치하지 않은 735호의 상점을 적발해 2~3일 내에 지시를 이행하지 않으면 엄벌에 처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발했다. 상점주들은 부랴부랴 비좁은 가게 한 구석을 잘라내어 옹색한 변소를 만들었고 경찰은 한 달 새 무려 1535개의 변소를 만드는 ‘실적’을 올렸다.

오늘날이었다면 시민들이 오히려 당국에 공중변소를 설치하라고 요구했을 상황이지만, 그때는 요구의 방향이 정반대였다. 전제정치하에서는 관리가 시민들을 부리지만, 민주정치하에서는 시민이 관리들을 못살게 군다. 그런데 시민들의 요구는 너무 다양하고 자주 상충된다. 그러니 민주 사회의 관리는 경청하고 설득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1500개의 변소를 만드는 능력보다 1500명의 요구를 조화시키는 능력이 더 소중한 오늘이지만, 실적만으로 관리를 평가하는 풍토는 여전한 듯하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역사 속의 오늘을 되돌아보는 ‘그때 오늘’ 연재를 오늘자로 마칩니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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