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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칼럼] 수치의 옷을 이제는 벗자

엊그제로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지났다. 을사늑약이 체결됐던 중명전이 복원됐다. 당시는 덕수궁의 일부였다가 일제 때 궁을 축소하는 바람에 밖으로 쫓겨났다. 덕수궁 뒤 정동극장 골목을 돌아 그곳을 찾아 보았다. 내친김에 덕수궁 안을 돌아보았다. 석조전의 복원이 한창이었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덕수궁 안에 이 두 건물을 포함해 6개 건물을 신축했다는 설명이 있었다. 착잡했다. 나라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가물가물 꺼져 가는데 왕은 궁궐을 짓는다? 제국의 위엄을 보여야겠다는 생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럴 재정이 있었다면 왜 대포 한 문이라도 더 사서 나라를 보존하려 하지 않았을까? 하수도가 없어 코를 찌르는 한양의 거리를 먼저 정비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것이 조선 왕의 한계였다.



신하들은 어떠했는가? 개화파 윤치호는 군부대신을 지낸 아버지에 대해 “관직을 지키려는 욕심이 너무 커서 아무 수치심도 없는 것 같다”며 “왕이나 위정자들에게나 애국심이나 명예는 찾아볼 수 없다”고 일기에 썼다. 망국의 날인 8월 29일에도 순종은 훈장을 수여하기에 바빴다. 이완용 등 고관대신들은 그 며칠 전 이미 훈장을 받았다. 나라가 없어지는데 훈장을 받는다? 그 훈장은 무엇에 쓸모가 있었을까? 일본으로부터 연금이나 하사금을 받는 데 쓰였다. 나라를 팔아 내 안일을 챙기자는 것이었다. 주변부에 있던 세력도 비슷했다. 동학당의 일부와 서자로 설움을 받던 송병준 등은 일진회를 만들어 쓰러져 가는 나라의 권력을 놓고 양반과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나라가 없는데 무슨 정치를 하며, 그 권력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나 왕과 신하의 의식은 마비되어 있었다.



역사는 기억해야 할 것이 있고 잊어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한일병합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사건에서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조선의 멸망은 외부와 내부의 두 요인에 의한 것이다. 지난 100년 우리의 시각은 밖에 대한 원망이 더 우세했다. 제국주의가 요동치던 세계사적 입장에서 볼 때 약소국인 조선은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지 모른다. 조선 역시 독립을 보전하기 위해 어느 강대국에 기대어야 할지만이 관심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붕괴 원인은 내부에도 있다. 앞에서 보듯 집권층이 무능한 데다 나라 생각은 뒷전이었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는 일본만을 탓하며 지내왔다. 그렇다면 우리의 잘못과 못남은 없었는가? 우리의 잘못은 덮어두고 남의 탓만을 하는 마음이 올바른가? 이는 고종이 내부의 역량을 모으려 하지 않고 강대국에 기대려고만 했던 마음과 무엇이 다를까?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일본 탓은 이제 그만하면 족하다. 언제까지 남의 탓만 할 것인가. 남의 탓을 한다는 것은 남에게 기대려 했다가 실망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이제부터는 우리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으며 다시 그런 수치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우리의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사회문제도 마찬가지다. 내가 못사는 것이, 실패한 것이 다른 사람의 탓, 제도의 탓이라고만 생각할 때 결코 발전이 있을 수 없다. 주어진 여건에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이었으며, 무엇을 소홀히 했나를 돌아보는 마음들이 많아질 때 나라도 건강해진다.



이 시기에 북한의 김정일은 만주의 항일유적지를 돌아보았다. 항일무장투쟁은 남북 모두의 자랑이다. 안중근이 그렇고 김좌진 장군이 그렇다. 그러나 100년이 지나서도 북한은 항일투쟁의 의식 속에 잠겨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반미를 외치고 있다. 북한이 못사는 것이 미국 제국주의 탓인가? 북한은 사실상 국가로서의 존재의미를 상실했다. 국가의 기능은 마비되고 온 백성은 굶주리고 있다. 권력 주변만이 강제력으로 버티고 있다. 국가는 소멸단계에 와 있는데 깡통조각 같은 훈장을 줄줄이 붙이고 거들먹거리는 그들의 모습이 1910년의 조선 대신들 같지 않은가? 북한은 왜 내부의 문제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가? 2세를 넘어 3세 세습을 인정받기 위해 중국 지도자를 알현했다고 한다. 주체사상을 앞세우며 민족을 입에 달고 사는 그들이 할 일이 아니다. 부끄럽지 않은가?



나라를 잃는다는 것은 수치를 당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날을 경술국치일이라고 불렀다. 그 수치는 백성 모두가 함께 당하는 것이지 책임이 있던 왕과 신하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운명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공동체를 지키려면 국민 스스로가 깨어 있어야 한다. 100년이 지난 이 시점에 우리가 기억으로 남겨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우리는 반쪽이나마 지난 반세기 동안 이 공동체를 바꾸어 놓았다. 우리 힘으로 말이다. 세계의 누가 지금의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불쌍한 나라라고 생각할 것인가. 더 이상 과거의 수치에 매달려 있지 말자. 이제는 수치의 옷을 벗어 버리자.



문창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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