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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거짓말의 발명

거짓말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거짓말의 역사는 기록에 없지만 이를 궁금하게 생각한 두 남자가 엉뚱한 발상의 영화를 만들었다. 제목은 ‘거짓말의 발명’. 설정은 거짓말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아니 거짓말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세상이다. 그래서 그들의 대화는 이런 식이다. 한 남자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 출근이 늦어지게 되자,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오늘은 늦잠 자서 지각할 것 같다”고 한다. 교통정체니 접촉사고니 하는 세상에 흔한 핑계를 대지 않는다. 거짓말이 없는, 사실만을 말하는 세상이니까. 그런가 하면 불편한 점도 있다. 막 출산한 아기 엄마에게 "아기가 쥐새끼처럼 쪼글쪼글하네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소위 하얀 거짓말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공 남자가 집주인에게서 월세 독촉을 심하게 받자 은행에 가 보지만 통장 잔액이 월세에 못 미치는 걸 기억하게 된다. 그러나 은행 직원이 출금할 금액을 묻자 자신도 모르게 월세 금액만큼 부풀려 말하고 만다. 거짓말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이다. 그러나 사실만을 말하는 세상에 사는 은행 직원은 그의 말을 의심할 수가 없다. 전산 착오로 통장에 잔액이 잘못 기재된 것이라 생각하고 오히려 사과 인사와 함께 그가 청구한 전액을 내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거짓말의 단맛을 알게 된 주인공은 스스로 거짓말을 발명했다고 생각하고 그 유희의 세계에 빠져들어 간다. 거짓말은 더 헛된 거짓말을 낳아 그의 말을 믿는 마을 사람들을 패닉 상태로 몰고 간다. 청문회가 있었던 지난주 내내 거짓말이라는 단어가 난무했다. 어떤 이는 거짓말도 하얀 것과 빨간 거짓말이 있다고 했는데 대체 거짓말은 왜 ‘발명’됐으며, 빨갛다 못해 새빨간 거짓말이 왜 청문회장을 널뛰고 다녔는지 답답한 마음속에서 이 영화를 기억하게 됐다.



그렇다면 거짓말은 왜 하게 되는 걸까. 거짓말은 밖에서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도록 커튼을 치는 것이다. 그래야 가려진 내 본심 혹은 흑심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불안심리에 기초한 자기합리화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불안심리에 의한 자기방어 기제라고 단순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이것을 통해 남을 속여 부당이득을 취하거나 남에게 또는 사회에 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사회 지도층이나 정치 지도자들에게 더 날선 도덕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것이다.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풍자되었던 옛 지도자나, 청문회 자리에서 끝까지 ‘기억을 더듬어보겠다’와 ‘죄송’으로 일관한 그들은 아직 도덕성이 왜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소크라테스는 마음속에 다이몬을 섬겼다고 한다. 다이몬(Daimon)이란 옳지 않은 길에 접어들면 보내오는 신호, 즉 내면의 울림이다. 앞으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선 다이몬 칩을 뇌 속에 장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릇된 행동을 할 때마다 알람이 울려 세상에 탄로 나게 말이다. 그러나 그런 SF적인 아이디어를 내지 않아도 된다. 이제 도덕적 투명성은 국가지도자뿐 아니라, 미래사회의 모두에게 중요한 원칙이며 경쟁력이 되고 있다. 한 개인이 하나의 거대 미디어를 가지는 세상에서는 이제 서로 가릴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트위터를 비롯한 다양한 소셜미디어가 곧 신문과 방송에 버금가는 강력한 파워 미디어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즉 개인이 방송국이나 신문사를 하나씩 갖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4000만이 넘는 미디어의 눈을 누가 무엇으로 가릴 수 있단 말인가. 과거의 잘못된 행위도 문제지만 거짓말로 적당히 넘어가려는 태도와 적당히 넘겨주려는 야합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야 한다.



일요일 아침 총리 후보와 장관 후보 두 명이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 또한 정(政), 당(黨) 모두에게 불편한 진실이었고, 운 나쁘게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는 생각이 아니길 바란다.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야, 그런 마음이 정, 당, 국민 모두에게 느껴져야 비로소 청문회 따위도 필요 없는 내일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을 기대해보자. 8·15 광복절 축사에서 대통령은 "윤리의 힘을 더욱 키우고 규범화해야 한다”면서 "모든 영역에서 공정한 사회라는 원칙이 확고히 준수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이제 윤리의 힘을 키운 지도자들이 만드는 공정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 그렇다면 이번 내각 구성의 결과도, 불거진 4대 강의 진실 여부도 국민들이 원하는 바 투명하고 공정하게 풀어내질 것이 아니겠는가. 대통령이 외친 ‘공정한 사회’가 ‘공허한 사회’로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유재하 UCO마케팅그룹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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