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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pecial] 거문도의 ‘생계형 낚시꾼’ 작가 한창훈

“인생이 허기질 땐 바다로 가라”는 외침에 끌려 작가 한창훈을 만나러 거문도로 가는 길은 허기 탓이 아니라 철부지 늦더위의 횡포에 살기가 싫을 정도였다. 쾌속선은 쾌적했다. 거문도까지 1시간10분이 길지도 짧지도 않았고, 빵빵한 에어컨에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았다. 파도 없이 잔잔한 바다는 시내버스 타고도 멀미하는 사진기자의 품위를 지켜주었다. 그렇게 도착한 섬에서 우리를 처음 맞은 건 역시 땡볕이었다. 사진기자를 살려준 바람은 끝내 거동하지 않아 끝물 여행객들을 -사진기자를 포함해- 푹푹 삶는 데 힘을 보탰다. 한 뼘 그늘 속에 숨어 있으니 거의 빗지 않는 듯한 반백의 머리칼 아래 헐렁한 티셔츠를 받쳐입은 잘생긴 사내가 나타났다. 우리는 악수를 하는 둥 마는 둥 섬에서도 몇 개 남지 않은 다방 안으로 피난할 수밖에 없었다.



“장보고 이후, 작은 땅뙈기만 보고 살지 않았나”

글=이훈범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배 탈 만하죠? 우리 어릴 땐 일본 화물선 고쳐 만든 배 밑바닥 다다미에서 8시간을 굴러야 도착했다니까요.”



좋아진 건 배만이 아니다. 섬 다방도 세련돼졌다. 아이스커피를 시켰더니 크림을 넣을지 설탕을 뺄지 묻는다. 얼음물을 한입 물고 여름이 늘 이렇게 더운가 물었더니 정작 힘든 건 여름이 아니라 겨울이란다.



“북서풍 칼바람 불 때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 뼛속까지 시려옵니다. 외지 사람들이 가장 못 견디는 것도 겨울이지요. 가을에 시집온 색시는 잘 살아도 봄에 시집온 색시는 못 버티고 떠나요.”



한창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래도 예전에 잘나갈 때는 주민 수가 8000명이 넘었다. 지금은 1500명 정도다. 육지에 논을 사서 소작농을 부리는 어민도 많았다고 했다. 고기가 점점 덜 잡히고, 주민 수도 따라서 줄어갈 때 그도 뭍으로 나왔다. 대전·천안·서산·아산… 연고도 없던 충청도 땅을 이리저리 떠돌다 5년 전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



“겨울이 싫어서 떠나셨던가요?”



“그건 아니고… 제대하고 대학에 갔었죠. 세 학기밖에 못 버티고 그만뒀지만….”



“왜요?”



“뭐, 재미가 없어서.”



“그럼 오징어배 타는 거나 포장마차 주인, 공사판 잡부, 홍합 가공공장 노동자, 시골다방 DJ, 목수 같은 일은 재미있던가요?”



“그건 먹고살려고 했던 일이고….”



“글은 어떻게 쓰게 됐는데요?”



“놀아도 욕 안 먹는 직업이 뭘까 생각하다 그렇게 됐네요. 투자비도 적게 들고… 종이하고 볼펜만 있으면 되니까.”



“원래 좀 쓰셨어요?”



“아니요, 국민학교 때 사생대회 나가 본 적도 없어요. 대학 휴학하고 이 일 저 일 하는데 하도 사람들이 고졸이라고 무시해서 복학을 했어요. 그때부터 전공(지역개발학과)은 안 듣고 문학이나 문예창작 비스꾸무리한 것만 들었지요.”



“그때부터는 쭉 글만 쓰셨어요?”



“아니요, 전업작가라는 게 실업작가라는 말과 동의어더라고요. 아까 그 일들을 또 했죠. 생계비 벌려고 신문사 신춘문예 같은 데도 내보고….”



그는 지방지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했다. 물론 상금이 탐나서였다. 그 후 더 폼 나는 중앙지와 문학전문지에서도 당선됐지만, 이력서에는 늘 지방지 당선을 처음 적는다.



“지방지에서 등단해도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요. 우리나라 작가들은 죄 수도권에 모여 있잖아요.”



그래서 거문도로 돌아온 거냐고 물었더니 엉뚱한 대답이 돌아온다.



“옛날 거문도 사람들은 스케일이 컸어요. 돛 하나에 노 젓는 조각배를 타고 울릉도까지 갔었거든요. 가는 데 두 달, 오는 데 두 달, 울릉도에서 머무는 게 두 달, 6개월 코스였는데….”



배 만들고 집 지을 목재와 요즘 집어등 노릇 할 횃불용 송진을 구하러 갔다는 거다. 가다가 풍랑을 만나면 피난할 수 있는 곳이 딱 영일만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날씨가 궂으면 그쪽 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거문도 어부들이 오면 배에 실린 쌀을 빼앗아가기도 했단다.



“포항 사는 선배가 있는데 ‘형네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한테 못된 짓 많이 했으니 형이라도 대가를 치르라’고 해 술도 많이 얻어 마셨죠. 하하.”



그래서 거문도 뱃사람들의 옛 가락에는 울릉도가 많이 등장한다고 했다. 이른바 대양문학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엔 해양을 소재로 한 작품이 하나도 없잖아요. 고작해야 연안이나 갯벌 얘기 정도죠. 장보고 이후에 조그만 땅뙈기만 보고 살았으니까. 그러니 누구나 바다 좋아한다고 하지만 바다는 그저 여자나 꼬시고, 애인과 헤어지고 질질 짜는 곳 정도밖에 안 되고….”



거문도에 돌아온 이유가 울릉도를 들렀다 오니 설명이 됐다. 본격적인 해양문학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 말이다. 그는 2003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국장을 할 때 회의시간에 “잃어버린 북방의 상상력을 복원하자. 위만 보지 말고 뒤로 돌아 대양을 보자”고 역설했단다.



“그랬더니 다들 멍~ 하더라고요. 바다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린가 했겠죠.”



그래서 혼자 뛰어다녔다. 현대상선을 찾아가 작가 100명을 싣고 태평양을 한 바퀴 돌자고 읍소를 했다. 조르고 조른 끝에 컨테이너선에 작가 서너 명씩 태우고 유럽이나 두바이를 왕복하기를 몇 차례 할 수 있었다.



“2만t짜리 배 타고 두바이 가면서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도와주고 했더니 선원들도 잘 해주더라고요. 인도양의 장대한 노을, 수심 4000m의 울트라머린 바다색 같은 건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런 걸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죠.”



갑자기 원양어선을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빛을 읽었을까.



“더 늦기 전에 우리나라 원양사업 1세대들의 활약을 채록해 둘 필요가 있어요. 그들과 작가가 한 달간 배 같이 타고 얘기를 나누는 거죠. 그런 1차 저작물이 많이 나와야 해양 소설들도 따라 나오지 않겠어요. 이런 걸 국토해양부 같은 데서 해줬으면 좋겠어요. 작가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뛴다고 될 일도 아니고.”



그는 “작가들이 인터넷만 들여다보고 카페에만 앉아 있으니 늘 사랑 타령이나 신변잡기 소설밖에 안 나오는 것”이라며 혀를 찼다. “열심히 낚시하시니 곧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같은 작품이 하나 나오겠다”고 언죽번죽 말했더니 그가 웃는다.



“그거 순 뻥이에요. 낚시 좀 하는 사람은 다 알죠. 이리저리 주워들은 걸 가지고 극적으로 엮은 것뿐이죠.”



사실 낚시 얘기는 그가 전혀 낚시할 기미를 보이지 않기에 던진 말이었다. 자칭 ‘생계형’ 낚시꾼이 낚싯대라도 던져야 동료 사진기자가 좋아할 그림이 나오지 않겠는가. ‘생계형’이란 생선 잡아 팔진 않아도 나 먹을 찬거리는 스스로 마련한다는 뜻이다. 그런 그에게 동료 작가 예닐곱 명이 “각자 200만~300만원씩 내서 배 하나 사주겠다”는 제안을 해왔다고 했다. 처음엔 솔깃했지만 이내 사양했단다.



“배 사주고는 허구한 날 찾아와 낚시하러 가자고 할 게 아녜요. 거절할 수도 없고… 지들이 주인이고 나는 머슴밖에 더 돼?”



그에게 낚시는 반찬을 마련하는 작업 말고도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낚시는 생각을 지우는 최고의 작업이에요. 오전에 글을 쓰며 언어를 만드는 행위를 했으니 밤에는 그걸 다시 지워 없애야지. 새로운 걸 채워 넣으려면… 과열된 머리 냉각도 시키고….”



“오늘도 좀 지우셔야 하지 않나요?”



“요즘은 더워서 낚시 안 해요.”



이런 변이 있나. 사진도 사진이지만 밤낚시 재미와 그 자리에서 쳐 먹는 싱싱한 참돔 맛을 은근히 기대한 터였다.



“그럼 뭐 드세요?”



“전에 잡은 거 냉동해 둔 거 먹죠.”



“냉장고에 해산물이 종류별로 꽉꽉 찼나요?”



“나 사실 해산물 안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해산물 안 좋아하는 섬 소년은 참 불행했겠습니다.”



“여기 그런 사람 많아요. 저도 육류를 더 좋아해요. 돔을 낚아도 냉장고에 넣어두고 라면 끓여 먹기도 한다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작가는 실망한 표정의 기자를 ‘할매집’이라는 작은 간판이 붙어 있는 민가로 데려갔다. 이른바 관광객들은 몰라서 못 가는 거문도 주민들만의 맛집이었다. 할머니가 직접 담근, 밥알 동동 뜨는 동동주와 뼈째 쓱쓱 썰어서 밥공기에 담아온 자리돔, 짜지 않아 달았던 갓김치를 허겁지겁 먹느라 모기 물리는 줄도 몰랐다. 그 뒤로 자리를 옮겨 소주와 맥주로 2차와 3차를 했다.






j 칵테일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는 작가 한창훈의 새 책 제목이다(9월 1일 발간 예정).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라는 부제처럼, 손암 정약전 선생이 200년 전에 쓴 국내 최고(最古)의 어류학서 『자산어보』에 나오는 해산물 중에서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30가지를 추려 이야기를 풀어냈다. 손암 선생의 설명과 함께 낚시나 채취법·요리법 등이 담겨 있지만, 바다와 부대끼며 살아가는 허기진 인생들의 논픽션 삶이 때론 초고추장처럼 때론 고추냉이처럼 버무려져 있다는 것이 『자산어보』와 다른 점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섬으로 시집온 여자가 부부싸움 끝에 육지로 떠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사내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만 여자는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그때 친구가 도다리 낚시를 가자고 불렀다. “갈 테면 가라.” 호기 있게 외치고 나왔지만 그렇게 떠난 여자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는 사내는 가슴이 찢어졌다. 돌아와 보니 여자는 아직 집에 있었다. “간다고 큰소리치더니 왜 안 갔어?” “도다리는 먹고 가려고.”



한창훈은 높낮이가 뚜렷한 산보다는 평평한 바다를 좋아한다. “적어도 찬거리는 생기는” 바다를 소재로 본격적인 해양소설을 써보겠다고 마음먹고, 고향인 거문도로 스스로 유배됐다. 육지로 가겠다던 여인도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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