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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체결 현장 중명전 105년 만에 복원 29일 공개

복원된 중명전이 27일 언론에 공개됐다. 러시아 건축가 사바친이 설계한 2층 벽돌 건물의 아름다운 외관이 드러났다. [조용철 기자]
1905년 11월 17일, 일본 헌병과 경찰이 중명전 회의실 베란다와 하나밖에 없는 출구를 둘러쌌다. 을사늑약 체결을 끝까지 반대한 참정대신 한규설(1848~1930)은 다락방에 갇혔다.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잃었다. 고종은 헤이그 특사(1907년)를 파견해 조약의 부당성을 알리려다 강제 폐위된다. 을사늑약 현장인 덕수궁(사적 제124호) 중명전이 복원됐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29일부터 일반 개방된다. 중명전은 1897년 고종이 황실 도서관으로 건립한 러시아풍 근대 건축물이다.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 대화재 이후 고종은 중명전으로 거처를 옮겨 폐위될 때까지 3년여 집무를 봤다. 원래 덕수궁 권역에 포함됐던 건물이지만 일제가 궁궐을 3분의 1가량만 남기고 훼손해 지금은 정동극장 옆에 외따로 떨어져 있다. 일제 강점기엔 외국인 사교클럽으로 쓰였고, 황실 재산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민간에 매각돼 사무실로 개조되기도 했다.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2006년 중명전을 인수해 2007년부터 원형 복원에 들어갔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아치형 테라스로 둘러싸인 붉은 벽돌 건물 원형이 되살아났다. 지하실은 수십 개의 방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문화재청 궁능문화재과 이재서 사무관은 “한국 전통 방식으로 화강암 기초를 쌓고 그 위에 서양식으로 벽돌을 쌓은 독특한 건축 방식이 지하실에서 확인됐다”며 “용도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복원된 중명전은 역사전시실로 활용된다. ‘중명전의 탄생’ ‘을사늑약을 증언하는 중명전’ 등 주제별 패널과 사료·영상자료 등을 보여준다. 하루 6차례(오전 10시부터 매 정시, 정오 제외) 매회 25명씩 안내자의 인솔을 받아 관람할 수 있다. 20명은 덕수궁 홈페이지(www.deoksugung.go.kr) 사전 예약, 5명은 현장 접수를 한다. 무료. 월요일 휴관. 02-732-7524.

글=이경희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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