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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진짜 진짜 러브스토리

백남준 이야기 (상)

뭔가 좀 개운한 이야기가 없을까. 시시한 정치소식이나 연예계 뉴스와 차원이 다르고, 동시대에 함께 음미해볼 빅 스토리 말이다. 심금을 울릴 수 있다면 더욱 좋으리라. 내 눈에 비디오예술가 커플인 백남준과 일본인 부인 구보다 시게코의 삶을 다룬 신간 『나의 사랑, 백남준』이 그 중 멋졌다. 이야기란 캐릭터가 살아있고 선명한 내러티브가 핵심인데, 그걸 두루 갖췄다. 가히 우리시대 이야기로 손색이 없다. 영화·뮤지컬 등 문화상품으로 키워낼 순 없을까 하는 즐거운 기대도 해본다.

쉽게 말하자. 백-구보다 커플은 20세기 초 멕시코의 프리다 칼로-디에고 리베라 커플, 혹은 피카소의 여성 편력 스토리에 비해 못할 게 없다. 이름값이 그렇고, 휴머니티 역시 물씬하다. 몇 해 전 할리우드 영화로 선보인 프리다 이야기는 물론 가슴 저민다. 하지만 본질은 마초 남편에 상처 입은 비극적 스토리다. 피카소의 여성 편력은 차라리 스캔들이다. 반면 1960년대 이후 뉴욕에서 활동해온 백-구보다는 부부가 함께 성공했다. 불행했던 한· 일 현대사의 꽃인 이들의 러브스토리도 대하소설 감이다. 백남준을 잡은 건 구보다 쪽. 1963년 신문에 난 백남준 기사를 보는 순간 번개 맞았다.

“나도 예술가로 성공해 그 남자를 잡을 거야”라고 다짐한 그녀는 이듬해 뉴욕으로 날아갔다. 백남준· 조셉 보이스· 존 케이지가 활동하던 그 유명한 플럭서스 그룹에 가입한다. 사랑에 눈멀어 20세기 예술운동의 아지트로 단신 입성했지만, 결혼까지는 우여곡절이었다. 짝사랑을 몰라주자 여자는 한때 유대인 작곡가와 결혼했던 일도 있다. 그러다 3년 뒤 이혼한 ‘돌씽’구보다를 품어줬던 게 ‘싸나이’ 백남준이었다. 하이라이트는 동거녀 구보다가 자궁암에 걸렸을 때다. 수술비에 절절 맬 때 백남준이 전격 제안했다. “우리 결혼하자. 그럼 의료보험이 되잖아.” 77년의 일이다.

그렇게 맺어졌던 뉴욕 빈민타운의 커플이 20세기 미술사의 거물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알콩달콩 사랑도 알려진 것 이상이다. 백남준에게 아내란 예술적 성공을 안겨준 ‘복덩이’였고, 아내는 남편을 ‘우주적 천재’로 떠받들었다. 백남준이야말로 “반세기 전 발견한 나의 욘사마”라는 게 구보다 고백인데, 근거 있는 얘기다. 알고 보니 그의 이모도 일제시대 일본서 활동했던 한국인 스타 춤꾼 박영인(1908년생)과 사랑에 빠졌다. 바로 내일이 한·일 강제병합 100돌인데, 이런 휴먼드라마는 큰 위안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둘 사이의 러브스토리를 멋진 문화상품으로 못 만든다면, 향후 100년을 개척할 한· 일 양국은 선린 우호 파트너로 자격미달이다. 백-구보다는 양국이 각기 배출해낸 파인아트의 월드스타가 아니던가. 아니 그 이상이다. 백남준은 공부는 독일에서, 활동은 뉴욕서 했다. 때문에 독일은 93년도 베니스비엔날레 참가작가로 백남준을 선정했을 정도다. 그의 유골도 한국·일본·독일 세 곳에 나뉘어 묻혀있다. 순서는 이렇다. 우선 이번 책을 영어·일본어·독일어로 번역하자. 영화, 뮤지컬은 그 다음이다. 사후 4년 백남준, 그의 스토리는 지금부터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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