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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유물로 본 내고장 역사 ⑤ 천안 백석동 청동기시대 주거지

지난 회(8월 6일)엔 아산 남성리의 화려한 청동기 유물을 다뤘다. 천안에선 청동기 유물은 드물지만 청동기시대 유적은 많이 나왔다. 백석동 일대에선 기원전 1000년 경부터 많은 사
람들이 정착해 농경생활을 하며 살았다.

글=조한필 기자 (chopi@joongang.co.kr)
사진=조영회 기자

천안 제3공단 삼성전자 천안사업장 맞은편에 있는 천안유통센터 부지. 2700여 년 전 이곳은 청동기인들이 모여 살던 대단위 취락지구였다. [조영회 기자]
청동기시대는 오랜 세월 지속됐다. 역사학계에선 서기전(B.C) 1000년 이전부터 최소 1000년간 지속된 걸로 본다. 그 중 마지막 300여 년은 철기가 함께 사용된 시기다(아산 남성리 유적). 천안에선 20여 곳에서 청동기 유적이 발견됐다. 현재의 천안 전 지역에서 청동기시대 주민이 산 것이다. 그 중 백석동은 전기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대거 발굴된 대표적 유적지다.

발굴보고서엔 “낮은 야산과 구릉이 형성된 저산(低山)성 평야로 작은 하천이 발달돼 인간 생활에 유용한 입지 조건을 지니고 있다. 특히 백석동 일원은 침식에 약한 화강암류가 구릉화돼 대체로 완만한 저구릉성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수계(水系)로는 남서쪽에 매곡천이 흘러 북서쪽 아산만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주거 환경을 설명하고 있다.

백석동에선 1994년과 2006년 각각 두 군데서 발굴이 이뤄졌다. 모두 도시 개발에 따른 불가피한 발굴(구제발굴)이었다. 주거지 총 200여 곳이 발견돼 국내 최대 청동기 생활유적터가 됐다. 두 유적은 모두 해발 60~100m 평탄한 구릉지에 조성됐다. 모두 전기 청동기시대에 집중돼 있다. 백석동은 기원전 1000~700년 우리나라 이른 청동기인들의 생활상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늦은 청동기시대 유적은 적은 편이다. 백석동은 물론이고 불당동·쌍용동·신방동 등에선 후기 청동기 유적도 함께 발견되고 있으나 본격적인 부여 송국리형 문화단계 유적은 보이지 않고 있다.

화전 등 원시적 농경으로 살아가던 백석동 청동기인은 오랜 기간 한 곳에 머물지 못했다. 농경지가 메말라지면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했다. 전쟁이나 화재 때문에 살던 곳을 버리고 떠난 흔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농사기술이 발달되고 벼농사가 본격화되는 송국리형 문화 유적은 아직 천안에서 폭넓게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학계 일부선 백석동 일대서 청동기인이 사라지는 이유를 오랜 주거로 인한 인구 팽창으로 말한다. 인구는 느는데 경작지는 한정됐고, 농사 기술 발달은 더뎌 식량 생산량이 크게 늘지 않는 게 주요인이란 얘기다. 먹을 게 부족하니 집단은 자연히 해체되고 더욱 비옥한 곳(금강 중하류 등)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백석동 주거지에서 나온 돌 화살촉과 돌칼. [충청문화재연구원 제공]
◆천안 제3공단 유적=공주대 박물관에 의해 1994년부터 96년까지 3차 조사가 진행됐다. 유적 전체 면적은 4만5210㎡으로 주거지 94기가 확인됐다.

주거지는 바닥을 약간 파내려간 형태로 평면 모양은 네모꼴(방형)·긴네모꼴(장방형)·가늘고 긴네모꼴(세장방형)이었다. 원형은 발견되지 않았다. 주거지 안에선 한 개 이상의 ‘불 땐 곳’(爐址)이 발견됐다. 민무늬(무문)토기와 돌칼·돌화살·반달돌칼(반원형석도) 등 석기가 출토됐다. 불탄 주거지에서는 콩 등의 곡물이 수습되는가 하면 바닥에 볍씨 자국 토기도 나왔다.

발굴 관계자는 기원전 10세기에서 7세기경에 조성된 전기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보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토기들이 이 지역의 문화양상을 가늠케 한다.

◆천안유통센터 유적=충청문화재연구원(공주 소재)이 천안시 백석동 62-3번지 일원 천안유통단지 부지 12만7961㎡에서 대규모 청동기 시대 취락유적을 발굴했다(2006.10~2008.3). 유통센터 부지 중 일부는 근린공원 조성과 후대 발굴을 위해 원형보존지역으로 남겼다. 이곳은 총 4곳(1, 2, 3, 4지역)으로 나눠 발굴됐다. 주거지 110곳이 조사됐다. 주거지 형태는 세장방형과 장방형이 주를 이뤘다. 장방형 주거지가 파괴되고 그 위에 원형 주거지가 조성된 곳도 있다. 토기는 공렬문 토기가 대부분이었다. 이때문에 백석동 유적은 청동기시대 전기 역삼동·흔암리형 유적으로 분류된다.

반달돌칼(반월형석도)은 추수용 농기구였다. 구멍에 끈을 걸어 손에다 묶고 벼 등을 훑어냈다. [충청문화재연구원 제공]
석기는 돌칼·돌도끼·돌화살·반월형석도와 방추차가 발견됐다. 반월형석도는 곡식 추수용이다. 위쪽 구멍에 끈을 묶어 손에 고정시켜 벼 등을 훑는 데 썼다. 배모양(舟形)석도와 삼각형 석도가 있는데 삼각형 석도는 후기 때 것으로 백석동에선 출토되지 않았다. 청동기시대라고 하지만 농기구·무기로 석기를 더 많이 사용했다. 청동기는 귀해서 일부 계층만 가질 수 있는 물건이었다. 주거지에서 쌀·보리·밀·콩·조·기장 등 각종 씨앗의 유체(遺體)가 다수 확인됐다. 백석동에서 농경이 폭 넓게 행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백석동은 전기 청동기(기원전 1000~700년) 유적으로 후기(기원전 700~400년) 주거지는 많이 발견되지 않았다. 충청문화재연구원 나건주 조사연구부장은 “천안은 울산·대전 등과 함께 청동기 유적이 집중적으로 발견된 지역”이라며 “우리나라에선 후기 청동기 주거지가 많이 발견되지 않는 데 그 까닭은 후기가 되면 주거지가 평지로 내려와 조성되는 데 이런 곳들은 이미 도시화돼 발굴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장방형 주거지 만든 이유는

짝 만난 아들, 살림 따로 차려 주긴 벅차고 …


청기시대 살림집터(주거지)는 동굴과 움집이 있는데 신석기시대와 마찬가지로 움집이 보편적이었다. 움집은 하천과 가까운 낮은 야산에 위치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들 청동기인들은 후기 청동기시대 대표적 집자리인 부여 송국리와 같이 약 10호 안팎의 작은 마을을 이루고 살면서 그 주위에는 마을의 경계와 방어를 위한 도랑을 파거나 나무울타리를 세우기도 했다.

집터 모양은 공간활용이 편리한 방형·장방형이 대부분이다. 움의 깊이는 50㎝내외가 일반적인 형태였다. 지상구조는 서까래가 있는 맞배지붕으로 추정한다.

특히 천안유통단지 유적에서 한변이 긴 대형 주거지가 많았다. 초대 23m짜리도 있다. 세장방형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큰 주거지 바닥에선 기둥구멍 외에 저장구멍 및 화덕 자리인 노지가 여러 개 발견되고 있다. 저장구멍은 음식물 등을 보관하던 구덩이를 말한다. 그 안에서 저장용 토기의 조각들이 발견된다. 대부분 대형 호형토기였다.

화덕은 음식 만드는 것 뿐아니라 난방, 조명 역할도 톡톡히 했는데 이런 화덕이 한 개가 아니라 최대 서너 개씩 있는 곳도 있다. 이런 집은 대가족이 함께 살거나 석기제작소와 같은 공동작업장 성격을 띤 게 아닌가 생각된다.

장방형이던 주거지를 옆으로 늘려 세장방형으로 증개축한 경우도 있다. 아들이 짝을 만났으나 ‘분가’시키지 못하고 함께 살면서 벌어진 일일까.

후기로 가면 둥글거나 타원형의 움집에 바닥 가운데에 타원형 구덩이 두 개를 파고 기둥을 세운 송국리형 원형 집터가 나온다. 이 집터에는 화덕자리가 없으나 저장구덩이가 있어 네모꼴 집터와 구분되는 특수한 문화영역을 이루고 있다.



백석동‘옛 주부’들 좋아한 구멍난 토기

두만강 유역서 유행한 게 천안까지 …


백석동에선 공렬문토기(사진)가 많이 나왔다. 공렬문(孔列文)토기는 구멍(孔)이 열(列)지어 있는 무늬(文)가 있는 토기를 말한다. 구멍은 토기 안쪽에서 바깥으로 뚫었다.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무문토기)의 대표적 토기다.

민무늬 토기는 청동기시대에 널리 사용된 무늬없는 토기이다. 그렇지만 공렬문토기에는 짧은 빗금 무늬가 있는 것도 있다. 이 토기는 서기전 1000년 이상 무렵부터 사용돼 1000~1200도 고열에서 굽는 회색경질토기와 와질토기가 나오는 4세기 전후 사라졌다

공렬문토기는 두만강 유역에서 시작해 동북지방(함경도)에서 유행했다. 서북지방(평안도)의 대동강 유역 팽이형토기와 대조를 이룬다. 예전에는 공렬문토기와 팽이형토기 분포 양상이 지역 별로 달랐으나, 이후 여러 곳에서 발굴이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전 지역에 고루 분포된 게 확인됐다.

백석동에서 공렬문토기가 많이 나오는 건 이곳 주민들의 고유 취향으로 생각하면 된다. 이 토기의 구멍에 대해선 끈을 묶어 사용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그냥 하나의 유행으로 보는 게 맞다.

모양은 발형·심발형(深鉢形)이 많이 발견됐다. 발형이란 입 부분이 넓은 사발로 심발형은 토기가 커져서 속이 더 깊은 걸 말한다.

옛 토기는 모양에 따라 또 호(壺)·완(碗) 등이 있다. 호는 토기 몸(동체) 가운데가 뚱뚱하고 윗쪽으로 가면서 좁아지는 토기다. 요즘의 주둥이 작은 큰 꽃병을 연상하면 된다. 완은 대접이다.



천안의 청동기시대 유적들

신석기 유적 드문데 청동기는 ‘우르르’


천안의 선사유적은 구석기시대까지 올라간다. 2000년대 들어 두정동·용곡동·신방동·청당동 등에서 서기전 1만여 년 후기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됐다. 신석기시대 유적은 드문 편이다. 1966년 봉명동에서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이후 또 백석동에서 신석기 주거지가 한 기 확인됐을 뿐이다.

반면 청동기시대 유적은 비약적으로 늘고 있다. 시내 지역에선 백석동 이외에 인근 업성동·불당동·두정동과 성정동·쌍용동·용곡동·신방동·청당동·봉명동 등에서 발견됐다. 읍·면 지역으론 풍세면의 남관리·두남리·용정리, 성남면은 석곡리·대흥리와 용원리, 병천면 가전리, 수신면 발산리, 목천읍 운전리 등에서 유적이 나왔다.

이 중 대부분이 전기 청동기 유적이고 시기가 늦은 후기 유적으론 업성동 및 남관리·석곡리·대흥리 등이다. 전기 유적 가운데 백석동·불당동·쌍용동·신방동 및 용정리에서 후기 유적이 발견됐다. 후기 유적에선 전기의 장방형·세장방형 주거지와 달리 송국리형인 원형 및 말각 방형(모서리를 라운딩한 형태) 주거지가 확인되고 있다. 규모도 전기보다 축소돼 ‘핵가족화’에 따른 주거지 형태 변화로 볼 수 있다.

성남 석곡리·대흥리 유적에선 주거지보다 소형 수혈유구(竪穴遺構)가 다수를 차지한다. 수혈유구의 용도는 해석이 분분하다. 주거지보다 구릉의 정상부에 있는 수혈유구에 대해서 고려대 한국고고환경연구소 손준호 책임연구원은 월동용 곡식 보관장소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에서 나온 소수의 주거지는 이들 저장시설을 관리하는 사람들 거주 장소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렇게 볼때 청동기 후기에 이르면 전기에 비해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식량 관리가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천안출토 유물 진품 전시 중

요즘 천안박물관에 가면 국립공주박물관 등에서 빌려 온 천안 출토 중요 유물 몇 점을 볼 수 있다. 백석동서 나온 공렬문토기와 빗살무늬토기(신석기시대), 두정동의 원삼국시대 인면파수(人面把手, 사람얼굴 모양 손잡이·사진)도 전시 중이다. 성남면 용원리 출토 검은간토기와 화성리 환두대도 진품이 선을 보인다. 이들 유물은 다음달 26일까지 열리는 ‘탁본으로 엿본 천안의 염원’기획전에 포함돼 있다.

▶문의=041-521-2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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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