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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86㎞ 빙하 끝서 신의 영역을 넘보다

에레베스트(8848m) 남쪽으로 펼쳐진 웨스트쿰은 워낙 험해 ‘살인적인 빙하’라고 불린다. 한데 파키스탄히말라야에 가면 그보다 더 험한 빙하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발토로(약 86㎞) 빙하다. 이곳은 ‘검은 바위’로 상징되는 카라코람히말라야로 진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이며, ‘세계 최고의 오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로 갈 수 있는 마지막 마을, 아스콜리(Ascole)에서도 꼬박 일주일을 걸어 들어가야만 한다. 빙하 북쪽은 8000m 고산이 밀집해 있다. K2(8611m)·브로드피크(8073m)·가셔브룸Ⅰ(8068m)·가셔브룸Ⅱ(8035m) 8000m 고봉 4개가 직경 24㎞ 안에 들어차 있다. 그중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솟은 K2는 단연 압권이다. 지난 7월, K2가셔브룸5봉 원정대(중앙일보·K2코리아 후원)는 발토로 빙하 깊숙한 곳에 자리한 가셔브룸5봉(7321m)에 도전했다. 아쉽게도 정상에 이르지는 못했다. 하지만 발토로 빙하에 기대 사는 사람들의 삶과 그 ‘오지’의 경관을 구경한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다. 

발토로(파키스탄)=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K2로 들어가는 입구, 세계에서 가장 긴 빙하

가셔브룸 5봉 해발 5200m에서 내려다 본 발토로 빙하(4600m), ‘빙하의 광장’ 이다
아스콜리에서 이틀을 걸으면 파유(Pauu)에 닿는다. 이틀 동안 약 30㎞,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은 걸어야 한다. 발토로 빙하 초입은 황무지다. 30도가 넘는 따가운 햇살 아래 풀 한 포기 없는 사막과도 같은 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주변은 온통 검붉은 산과 바위, 그리고 황량하게 불어오는 모래바람뿐이다.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척박한 땅을 걷다 보면, 빨래 장대처럼 솟은 푸른 포플러나무 군락을 만나는데 그곳이 파유다. 그래서 파유는 발토로의 오아시스로 불린다.

발토로 빙하로 들어가는 모든 원정대·트레커는 이곳에서 이틀 밤을 자며 체력을 보충한다. 이후부터는 해발 4000m에 근접하기 때문에 고소 적응을 위한 적합한 장소이기도 하다. 파유는 20세기 초반, 유럽 산악인들이 K2 등정을 탐내기 시작하면서 ‘소 잡는 마을’이 됐다. 아스콜리 마을에서 끌고 온 소나 염소를 이곳에서 잡아 회포를 푸는 것이다. 염소 한 마리 가격은 50∼100달러 정도. 우리 팀의 주방을 맡고 있는 현지 요리사 알리(27)는 “외국 원정대가 많은 여름철에는 염소 값이 두 배로 뛴다”고 전한다. 소는 염소보다 5∼7배 비싸다. 그러나 파키스탄 물소는 질기고 노린내가 많아 한국원정대가 소를 잡는 경우는 드물다.

트레킹시즌, 파유 앞 브랄도 강가에서는 매일 아침마다 두세 마리의 염소가 도축된다. 우윳빛 빙하 물이 흐르는 강가 언저리 여기저기에 붉은 피가 흩뿌려진다. 유럽인들이 발토로 빙하에 첫발을 내디딘 약 1세기 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유구한 풍경이다. 현지인들이 염소를 잡아 가죽을 벗겨내는 광경은 흥미롭다. 사내들은 칼로 사뿐하게 목덜미에 긋고 한참 동안 피를 뺀 후 가죽을 벗겨낸다. 벗겨낸 가죽은 담요 등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기 때문에 최대한 칼집을 내지 않고 통째로 벗겨야만 한다.

염소를 잡는 사내들의 표정은 싱글벙글이다. 이들에게 염소 잡는 날은 축제나 진배 없기 때문이다. 살코기는 주인 격인 원정대원들이 먹고, 이들은 내장 등 부속 부위를 가져가 우리의 보신탕과 같은 탕을 끊인다. 그리고 어김없이 춤과 노래, 여흥으로 이어진다. 플라스틱 기름통을 두드리며 경전을 외우듯 애잔하게 부르는 노랫가락 속에 이들의 삶과 애환이 깃들어 있다. 앞으로 닥칠 험난한 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기에 흐느적거리는 춤사위는 왠지 모르게 구슬프다.

검은 산, 흰산 … 7000~8000m 봉우리들이 한눈에

100여년 전부터 원정대의 짐을 져나르는 현지 포터들.
파유에서 4일이면 콩코르디아(4600m)에 닿는다. 1930년대, 발토로 빙하에 들어온 프랑스등반팀이 파리의 광장 이름을 따서 붙였다. 너른 광장이라기보다 방사형으로 펼쳐지는 길의 시발점에 가깝다. 발토로 빙하라는 큰 고속도로 위에 K2·브로드피크에서 흘러내려온 빙하가 만나는 지점이며, 초고리사(7665m)에서 시작해 곤도고라패스로 이어지는 빙하가 다시 시작되는 지점이다. 이른바 빙하의 교차점, 자연스럽게 빙하 광장이 펼쳐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광장에 서면 7000∼8000m 고산준봉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가셔브룸Ⅳ(7932m)를 시작으로 시계 방향으로 K2·브로드피크· 가셔브룸Ⅴ·발토로캉그리(7312m)·초고리사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아쉽게도 K2가셔브룸원정대가 이곳에 닿은 날은 격한 눈보라가 끊이지 않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구름 위로 볕이 쨍쨍해, 사방은 화이트아웃 현상처럼 ‘하얀 암흑’에 빠졌다. 오리무중 탓에 8000m 봉우리를 향한 경외심 또한 생겨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다음 날 이른 아침, 눈을 품은 구름은 거짓말처럼 흩어지고 동쪽 가셔브룸 산 능선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가셔브룸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면 K2다. 소문대로 K2는 어마어마했다. 거대한 피라미드, 마치 외계인이 끌고 왔을 것만 같은 거대한 피라미드 행성이 공중에 떠 있는 것만 같다. 날 선 리지 끝 육중한 봉우리는 그야말로 남성의 산이다. 입가에서 ‘야아’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일주일 발품 고생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순간이다.

이곳에서 K2 베이스캠프까지는 하루 거리다. 각국의 원정대는 콩코르디아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왕성에 들어가기 전 성 밖에서 하루를 머무르며 옷매무시를 고치는 것처럼, 원정대원들은 이곳에서 대기하며 신들의 영역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트레커의 경우, K2·가셔브룸 베이스캠프(약 5200m)까지 들어간 후 다시 되돌아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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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