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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대륙 침략의 꿍꿍이 … 강제병합 후 국호 ‘조선’으로 바꿔

 
 
사람이나 사물, 지형지물 등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그에 개성을 부여하는 일인 동시에 작명자의 ‘소망과 기대’를 담는 일이기도 하다. 표의문자인 한자를 쓰는 문화권에서 이름의 의미는 더 각별하다. 이름이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으며,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이름을 탓하는 경우도 많다. 작명소가 성업 중인 것도 한자문화권의 한 특징이다.

1910년 8월 29일, 이름도 없고 조문도 달랑 하나뿐인 희한한 법령이 일본 칙령 제318호로 공포됐다. 전문(全文)은 ‘한국의 국호를 고쳐 지금부터 조선이라 한다’였고, 부칙은 ‘본령은 공포일로부터 시행한다’였다. 이 조문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주권만이 일본 왕에게 양도된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빅토리아가 영국 왕인 동시에 인도 황제였듯, 이 시점에서 한국은 일본의 영토로 편입된 것이 아니라 일왕에 의해 별도의 통치를 받는 독립된 지역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일본 내각은 한국 통치에 간섭하지 못했고, 일왕의 위임을 받은 조선 총독이 입법·사법·행정·군사의 전권을 행사했다.

일본은 또 조선이라는 ‘새 이름’에 자신들의 ‘소망과 기대’를 담았다. 메이지(明治)유신 무렵에 일본인들은 조선이라는 공식 국호보다 ‘한(韓)’이라는 지명을 더 즐겨 썼다. 마치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이라는 국호보다 왜(倭)라는 지명을 더 자주 썼던 것처럼. 1870년대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조선 침략론을 ‘정한론(征韓論)’이라 했는데, 여기서 ‘한’은 고대 한·일 관계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왜곡된 기억을 되살리는 기호였다. 신공황후가 삼한을 정복했다는 『일본서기』 기록에 기반해 삼한을 다시 복속시켜 일본의 옛 영토를 회복하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일본인들이 생각하기에 ‘조선’이라는 이름은 기자·위만 등 대륙의 중국과 관련된 것이며, 삼한이라는 이름은 해양의 일본과 관련된 이름이었다.

그러던 일본인들이 정작 한국의 주권을 빼앗은 뒤에는 국호를 ‘조선’으로 바꿨다. 여기에는 ‘대한제국’의 역사를 지우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심층에는 대륙 침략 야욕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한반도를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삼고자 했고, 그들의 기준에서 해양과 연관된 이름인 ‘한’보다는 대륙과 결합한 이름인 ‘조선’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한국에 대한 지정학적 평가의 기조가 바뀐 것이다.

열강이 겨루는 바둑판의 ‘잡힌 돌’ 신세가 된 것이 한 세기 전이다. 최근 한반도 주변에서 다시 이는 격랑은 한반도의 지정학에 대해 우리 스스로 더 깊이 고민할 것을 요구한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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