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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형제애만 남은 프랑스 정신

자유·평등, 그다음은 반사적으로 ‘박애’다. 학창 시절 귀에 못이 박이도록 프랑스혁명 3대 정신을 학습한 덕이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진리나 정의 등을 함께 나열한 뒤 ‘다음 보기 중 프랑스혁명 정신이 아닌 것을 고르라’고 주문하는 시험 문제를 푼 기억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박애의 나라’라는 믿음은 그렇게 시작된다.

자유나 평등에 비해 박애(博愛)라는 개념은 좀 어렵다. ‘널리 사랑한다’는 뜻으로 통용되지만 범위와 대상이 모호하다. 그래서 종종 논쟁거리가 된다. 최근에는 프랑스어 ‘프라테르니테(fraternite)’의 일반적 뜻에 가까운 ‘형제애’(‘자매애’는 왜 안 되느냐는 페미니스트들의 지적도 있다)로 표기하는 학자들이 늘고 있다. 여기에는 혁명 당시 이 단어가 인류애가 아니라 혁명 동참의 동지적 연대감을 의미했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요즘 프랑스 사회를 보면 박애보다는 형제애가 더욱 프랑스의 국가 정신에 부합하는 번역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자들처럼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인식을 반영한 해석이다. 국경과 이념을 초월한 보편적 인류애가 아니라 혈통이나 공유된 가치를 기반으로 한, 제한된 범위의 사랑이라는 인상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은 로마(집시에 대한 국제기구의 공식 영어 표기) 추방 등의 최근 프랑스 정부가 시행하는 이민 정책을 지켜보면서 더욱 강해졌다.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는 로마의 거주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근대 국가들의 경계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유랑생활을 해 온 이들의 역사성과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EU의 경고를 무시한 채 생계지원금 300유로(약 45만원)를 손에 들려 이들을 출신 국가인 루마니아나 불가리아로 내쫓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시민권을 얻은 이민자가 중대한 범법행위를 하면 시민권을 박탈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국제적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다. 프랑스는 이미 부르카(얼굴과 신체를 가리는 이슬람 전통 복장)를 착용하면 벌금을 물리는 법을 시행하고 있다. 민족적 혈통이나 국가가 표방하는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거주자들은 형제애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로마 추방은 프랑스 안팎에서 반발을 사고 있다. 집권당 내에도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는 정치인이 있다. 하지만 지식인들의 비난만 무성할 뿐이다. 새해가 오는 것을 축하하는 풍습에 반대하는 집회(2006년 12월 31일 낭트시에서)까지 열릴 정도로 시위가 일상다반사인 이 나라에서 아직 로마 추방을 저지하는 집단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인류의 보루로 여겨져 왔다. 유럽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 자유와 평등을 보장할 것 같은 낭만적 신뢰감을 줘 왔다. 그런데 이슬람권과의 문명적 충돌 확산과 수년째 지속된 경제적 어려움 때문인지 이방인(異邦人)에게 점점 인색한 면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의 믿음이 오해였을까. 아니면 지금의 모습이 일시적 현상에 불과한 것일까. 답을 얻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상언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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