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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미당·황순원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⑩·끝

타국 떠돈 지 18년, 유목민의 슬픔

시 - 허수경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릴 때’ 외 8편




시인이자 고고학자인 허수경에게 시와 고고학은 동의어다. 모두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문학과지성사 제공]
인터뷰를 청했을 때 허수경(46)시인은 터키에 있었다. 옛 히타이트 왕국의 수도였던 보아츠칼레에서 발굴작업 중이라고 했다. 그는 20년 다 되도록 독일에서 살고 있다. 1992년 뮌스터대 고대 근동고고학 박사과정으로 유학을 떠난 후부터다. 매일 새벽 5시 시작된다는 빠듯한 발굴일정을 틈타 e-메일을 주고받았다. 숙소 전기가 자주 끊겨 통신환경도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시인은 A4용지 넉 장 분량을 빼곡히 채운 답장을 보내왔다.



이번 미당문학상 후보에 오른 그의 작품은 9편. 오랜 타향살이, 그리고 스스로 “지난 15년간 삶에서 아주 커다란 몫을 차지했다”고 밝힌 고고학 연구가 시 속에 시나브로 배어들어 독특하게 반짝거리는 시어로 자리잡고 있다. 옛 시간을 응시하는 듯 하지만 묘하게 현재의 삶과 겹쳐지는 슬픔과 그리움의 순간을 그는 무심한 듯 건져 올린다.



“언젠가부터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 사라졌어요. 유학시절 하루 종일 씨름했던 책들은 오래 전에 쓰여진 것, 혹은 오래 전에 일어난 일을 다루는 게 대부분이었죠. 옛 것은 제겐 생생한 현재 같았어요. 발굴도 그렇죠. 흙에 묻혀 있던 과거가 햇빛 아래 드러날 때, 과거는 현재가 되잖아요. 제게 과거는 회고의 대상이라기보단 현재의 친구입니다.”



떠도는 삶 역시 싫든 좋든 그의 친구다. ‘해맑은 밥에 따뜻한 눈물 한 방울 어려있다. 누군가 나에게 건네주는 난민의 일기장 같다’(‘슬픔의 난민’)거나 ‘이렇게 먼 나라에서 오래 살았는데 아직 눈을 기억한다’(‘눈 온다’)는 구절은 아무리 독일어를 잘해도 한국인일 수밖에 없는, 소위 유목민으로서 어쩔 수 없는 자각에서 나온 것일 게다. “한국에서 살았다 해도 마음은 언제나 떠돌았을 거예요. 가끔 전 어디론가 돌아갈 곳이 없는 인간이 될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요. 독일도, 한국도 낯설다는 불안감이 최근 쓴 시에 많이 반영이 됐을 겁니다.”



9편 중 꼽은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릴 때’는 언젠가 뮌스터 공원 벤치에 술병을 껴안고 잠든 남자를 보고 썼다. “저나 그 사람이나 지는 해처럼 갈 길 바쁜 이방인일 텐데, 곯아떨어진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서럽기도 했죠. 아무리 뜨거운 발을 바삐 굴려봐도 돌아갈 집이 없는 태양은 영원한 유목자죠. 그 태양이 정해준 우리들 삶처럼요.”



기선민 기자



◆허수경=1964년 경남 진주 출생. 독일 뮌스터대 고대근동고고학 박사. 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혼자 가는 먼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에세이집 『모래도시를 찾아서』 등.






삶이 지옥인 여자, 이상향 찾아나서다

소설 - 한강 ‘훈자’




한강씨는 “잃어버리면 안되지만 잃어버린 어떤 곳, 그런 기억들이 훈자가 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김우석 대학생 사진기자]
한강(40)씨는 소설가가 되기 한 해 전인 1993년 시로 먼저 등단했다. 아직 한 권 분량이 채워지진 않았지만 그는 “요즘도 매년 네다섯 편의 시를 쓴다”고 했다. 한씨가 생각하는 시와 소설의 거리는 예상보다 가까웠다. 한씨에게 시와 소설은 아주 다른 게 아니다. 시로만 혹은 소설로만 쓸 수 있는 것이 있긴 하지만 대개 소설로 쓸 수 있는 것은 시로도 쓸 수 있다고 여긴다. 문제는 간절한 마음이다. 간절한 무엇이 있어서 쓰는 것이지 장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씨의 소설 ‘훈자’는 그런 생각이 반영된 듯한 작품이다. 우선 소설의 서사는 인과관계로 긴밀하게 짜여 있지 않다. 주인공인 ‘그 여자’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훈자라는 공간에 대한 7년에 걸친 상념이 소설의 주 내용이다. 소설 말미에 훈자는, 그것이 훈자임을 그 여자만이 알 수 있는 것들로 제시된다. 가령 대학시절 시골 출신 남자 선배가 되게 체한 여자의 손가락을 따주던 오후 벤치에서의 에피소드가 훈자다. 이미지가 강하고 의미는 불분명하다. 그러니 시적이다.



그 여자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은 남편인 듯하다. ‘특별하게 친화력이 부족한’ 남편은 ‘체념에 가까운 무심함’으로 좌절이나 분노는 물론 ‘열정이나 연민, 깊고 끈끈한 사랑까지 침착하게’ 혹은 씁쓸히 지나치는 사람이다. 대학 철학강사인 그는 교수 자리를 따낼 가망이 없다. 그는 아이에게도 정을 주지 않는다. 아이에게 고통에 가까운 사랑을 느끼는 여자는 생계의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고 여긴다. 여자에게 고속도로 출퇴근 길은 광기 어린 공격성을 표출해 고통을 삭이는 시간이다. 여자는 이유 없이 클랙슨을 눌러대고 차창을 스치는 까치를 저주하는가 하면 대상 없는 기도와 욕설을 해댄다.



지옥 같은 삶을 사는 여자에게 훈자(Hunza)는 구원의 이상향이다. 중국-파키스탄 국경 부근의 여행자들의 블랙홀, 만년설에 둘러싸인 채 살구꽃이 피는 곳, 천년 전 훈자국(國)의 유적,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험한 도로인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타고 이틀을 달려야 닿는 세상의 끝. 여자는 과연 훈자에 갈 수 있었을까.



그런 이상향 같은 건 없다는 게 소설 ‘훈자’다. 그렇다고 소설이, 훈자는 결국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는 교훈으로 달려가는 것은 아니다.



한씨는 “소설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리기보다 질문을 품고 서성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질문하는 과정에서 간절함이든 아름다움이든 불어넣어질 텐데, 작가의 몫은 할 수 있는 한 최대치까지 쓰는 것이라고 했다. 소설을 읽으며 무얼 얻든 그것은 전적으로 독자들의 문제다. 서늘하면서 절실한 고통과 아름다움, 스스로 찾아 즐기시라는 얘기다.



일단 예심위원들은 다음 같이 읽었다. “인물에 선뜻 공감되지 않으면서도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평론가 심진경) “탈속의 욕망을 뿜어낸다.”(평론가 백지연)



신준봉 기자

김우석 대학생 사진기자



◆한강=1970년 광주광역시 출생. 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장편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등. 한국소설문학상·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이상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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