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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뒤 우울한 혼란상, 인습 깬 계약가족 등 그린 시대의 은둔자

대표적 전후세대 작가 손창섭. [예옥 제공]
1950년대 한국문단의 대표적 단편 ‘잉여인간’의 작가 손창섭씨가 두 달 전 일본 도쿄 인근의 한 병원에서 쓸쓸히 숨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88세. 서울대 국문과 방민호 교수는 24일 “손창섭 선생의 소설 인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이달 초 도쿄를 방문했다가 부인 우에노 지즈코(上野千鶴子·81) 여사로부터 사망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잉여인간’손창섭 두 달 전 타계

방 교수에 따르면 손창섭은 지난 6월 23일 오후 11시 23분 치료를 받던 도쿄 근교의 무사시노 다이 병원에서 사망했다. 지병이었던 폐질환이 악화됐다. 손창섭은 알려졌던 것처럼 치매를 앓지는 않았다. 병세가 악화되면서 숨지기 전 6개월 가량은 정신이 혼미한 때가 많았고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사망 직전 의식을 회복해 우에노 여사에게 “나한테 잘 대해줘 고마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손창섭의 유해는 화장돼 유골이 한 사찰에 모셔져 있는 상태다. 방 교수는 “일본의 장례 풍습을 알 수 없지만 우에노 여사가 9월 25일 정식으로 묘를 조성해서 손창섭의 유골을 모실 생각이라고 밝혔다”고 말했다.



◆손창섭, 누구인가=1922년 5월 20일 평양에서 태어난 손창섭은 장용학 등과 함께 대표적인 전후 세대 작가로 평가 받는다. 53년 ‘문예’지에 단편 ‘사연기’가 최종 추천돼 등단한 후 60년대 말까지 전쟁의 참상과 전후 혼란상을 실감 나게 다룬 작품을 많이 썼다. 대표작인 단편 ‘비 오는 날’은 전쟁 중 부산이 배경이고, 56년 발표한 단편 ‘인간동물원초’는 말 그대로 짐승 같은 시간을 보내는 50년대 교도소 죄수들의 얘기다. 59년 동인문학상을 안긴 ‘잉여인간’은 전쟁 외상(트라우마) 혹은 비타협적 고지식함으로 경제적 능력을 잃고 부유하는 등장인물을 통해 전쟁 직후 잉여인간을 양산하는 한국사회의 우울한 단면을 포착한 수작이다.



그는 비운의 작가이기도 했다. 어려서 고아가 돼 만주를 거쳐 일본에 정착한 그는 온갖 고초 끝에 고학해 대학을 다녔고, 결국 고국에서 소설가가 됐다. 하지만 문단과 철저히 거리를 두고 은둔했다. 평론가 유종호가 ‘이상(異常) 심리학 교과서’라고 평한 자전적 중편 ‘신의 희작’에는 기괴한 성벽, 은둔성향이 굳어진 사정이 소상히 나와 있다. 그는 73년 돌연 일본으로 건너갔다. 생계를 위해 60년대 중반부터 신문 지면에 발표한 장편들이 통속적이라는 비난을 받던 무렵이었다.



◆“손창섭, 재평가돼야 한다”=방 교수는 “손창섭은 50, 60년대 단편소설은 물론 70년대 장편소설까지 검토해야 문학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작가”라는 입장이다. 『이성연구』 『부부』 『인간교실』 등 그간 통속으로 치부돼온 작품들이 실은 외부인의 시선에서 한국사회를 비판한 정치적 함의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주 그간 책으로 묶인 적이 없는 손창섭의 장편 『삼부녀』(예옥)도 출간된다. 69∼70년 한 주간지에 연재됐던 작품이다. 무엇보다 내용이 파격적이다. 아내의 불륜, 두 딸의 가출로 가족이 해체된 한 가장이 딸 같은 여대생, 그리고 친구의 딸과 새 가정을 이룬다. 여대생은 아내로, 친구의 딸은 양녀로 받아들인다. 방 교수는 “손창섭은 소설에서 세 사람의 동거를, 인습적인 가족제도에 도전하는 계약가족임을 분명히 했다. 통속적 묘사 수준을 넘어 새로운 가족담론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했다. 방 교수는 손창섭 연구서도 준비 중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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