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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청문회와 프라이버시의 수난

유난히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올여름, 환국(換局)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 청문회가 시작됐다. 여당의원들은 후보자의 허물을 덮어줄 수사(修辭)를 찾아 분주한 반면, 야당의원들은 전진 배치된 정권 후반기의 장수들을 한방에 쓰러뜨릴 비밀병기를 들고 의욕이 충만하다. 후보자들은 ‘망신’과 ‘영광’ 사이의 그 아슬아슬한 담장 위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터이다. 자칫 잘못하면 고군분투했던 자신의 인생이 삼류소설로 전락할 수도 있는 그 위태로운 징검다리를 어쨌든 건너야 ‘가문의 영광’이고, 한갓 유생(儒生)을 넘어 당상(堂上) 벼슬을 족보에 기록한다. 그런데, 허물이 없는 사람들도 아닌 그들, 국회의원들 앞에 서면 왜 그리 작아지는가, 왜 위축되는가.



사생활이 공공성의 심판대에 오르기 때문이다. 뭔가 수상한 것을 색출해내려는 수천만 명의 시선이 자신의 몸에 꽂힌다고 생각해 보라. 언쟁과 심문에 이골이 난 프로급 선수들이 자신의 인생사에 관한 각종 증거물을 들고 송곳 쑤시듯 공박하는 광경을 생각해 보라. 순도 100%의 청정인간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진대, 하나의 흠결이라도 걸릴 요량이면 인격파탄자, 부도덕한 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그러니, 누가 수천만 명이 예의 주시하는 인체투시기에 들어가고 싶겠는가? 그러나 어쩌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걸려면, 대어(大魚)가 되어 정치판에 큰 물결을 일으키려면 저 위험천만한 투시기에 몸을 욱여넣어야 하는 것을.



인사청문회의 취지는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의 정책수행능력, 철학, 도덕성 검증에 있다. 국가 대사를 담당할 지도층이기에 사람됨을 낱낱이 살펴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통과의례다. 그런데, 이 제도가 도입된 이래 대중적 관심은 능력과 정책관보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집중되었다. 말하자면 사생활,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프라이버시를 들춰내는 것 말이다. 철학은 지루하고 논쟁거리를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사생활엔 흥미진진한 시빗거리가 널려 있다. 그런데, 마구 파헤치다 보면 지극히 예민한 부분이 다칠 우려가 있다. 특히 가족 얘기들이 그렇다. 얼마 전 모 장관은 아들 병역문제를 질의받자 눈물을 흘렸다. 알리고 싶지 않은 아픈 사연을 공개해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혐의가 있는 것이라면 더 철저히 규명하라고 요구한다. 지난 20일 열렸던 첫 번째 청문회는 ‘시시했다’는 게 일반적 여론이다. 그런 감이 없지는 않으나, 어디까지 파헤쳐야 하는가는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사생활은 자기 고유의 감성, 취향, 성향이 작동하는 영역으로 자신의 존재를 직조하는 제조창이다. ‘존재의 이유’가 생성되는 이 영역의 스토리를 공공 영역으로 끄집어내는 데는 지극히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탈세, 위장전입, 땅투기 등 청문회의 단골메뉴들도 더 깊이 파내려 가면 프라이버시와 맞닿기 때문이다. 쪽방촌 매입이 그렇다. 이재훈 장관 후보는 정작 그것의 소재와 매입가를 알지 못했다. 여기까지는 명백히 지탄받을 일이다. 그러나 한 꺼풀 벗겨 왜 그런지를 묻기 시작하면 민망한 일들이 사정없이 드러난다. 그는 그것이 중년세대의 관습대로 내자(內子)의 일이라 했다. 그럼 아내와는 일절 대화가 없었는가? 아내는 투자를 전담하고 남편은 돈만 벌어 왔는가? 이런 추측들 말이다. 야당의원이 투기가 아니냐고 다그치자 그는 ‘노후대책’이라 둘러댔는데, ‘노후’란 사생활이고 ‘대책’은 공공영역의 개념이다. 즉, 공공성과 프라이버시를 연결시킴으로써 무작정 망가질 위험을 겨우 모면했지만, 쪽방촌 매입자의 입에서 나온 친서민정책론은 궁색하기 짝이 없게 되었다.



부도덕의 대명사인 ‘위장전입’에도 부모 봉양, 자녀 교육, 재산 증식 등 다중 변수가 깔려 있다. 누가 봐도 투기꾼임이 명백하다면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피치 못할 속사정’은 가려내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런데, 국민은 단호한 것을 원한다. 모 일간지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능력과는 무관하게 위장전입자는 반대한다는 의견이 65%에 달했다. 지도층의 부도덕과 비리에 지친 탓이다. 청문회의 순기능을 폄하하거나, 지도층의 자질 검증을 완화하자는 게 아니다. 프라이버시를 병리학적 공간으로 욱여넣고 싶은 우리의 습관은 공적 논리에 의한 ‘프라이버시의 파괴’ 또는 국가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를 낳는다는 점을 한번 확인하자는 것이다. 사회학자들이 사적 관계로 이뤄진 공동사회의 미덕인 ‘우애(fraternity)’를 어떻게 이익사회에서 개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했던 것은 100년 전의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프라이버시에서 건진 소재들을 공공연하게 도마질하고 탐닉하는 관음증에 걸린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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