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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여유 없는 노랫말

‘아스라이 창공에서 쏟아지는 달빛이 창을 환하게 밝히는 이 밤, 너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여중생 시절 방학 때 같은 반 친구가 보내온 편지는 이렇게 시작됐다. 나는 매일같이 평범한 말로 수다를 떨던 친구가 이런 낯선 말로 가득 찬 편지를 보낸 것이 조금 웃긴다 싶었다. 하지만 나도 뭔가 근사한 말을 적어 넣고 싶어 읽지도 않던 시집을 뒤져 낭만적인 형용사와 시어를 동원해 나답지 않은 답장을 보냈다.



요즘 아이들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때도 학생들의 말은 곱지는 않았다. 일상생활 속에서 유행어나 비속어를 입에 달고 다니던 아이들도 편지만 쓰면 예쁜 말들을 골라 썼다. 적어도 편지 같은 것에는 일상과는 다른 말들이 골라 써져야 한다는 동의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편지는 사라지고 문자메시지로만 소통하는 아이들에게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말들이겠지만, 그래도 그때는 현실과는 다른 비유를 찾아 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시절이었다.



주말 오후 인기가요 차트 쇼를 보고 있노라니 이제는 그런 말의 여유마저 사라졌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노랫말 속 곳곳에 박힌 영어 낱말의 남용이야 이젠 일상화됐다 치고, 한글로 쓴 가사 역시 은유나 시어들을 기대하기엔 너무나 척박한 분위기였다. 강렬한 느낌을 주기 위해 된소리로 외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삐리빠빠’로, 지나간 연인에 대한 아쉬움은 ‘꺼져 줄게 잘 살아’ 같은 속어로 표현되고 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발라드에서만은 문학적인 사랑의 언어들이 등장하리라 기대했지만 그 역시 사랑이 지난 뒤에도 ‘밥만 잘 먹더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직설법뿐이었다. 대중가요가 시가 돼야 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평소에 쓰는 말과는 다른 정제된 언어와 감성들로 현실을 되돌아볼 여유를 제공하는 역할 정도는 해내야 하지 않나 싶은데 말이다.



팝송 세대인 나 같은 사람이 그래도 가요를 들어야 했던 이유는 마음에 절절히 와 닿던 그 노랫말 때문이었다.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옛사랑-이영훈) 같은 한 줄로도 가슴이 아릿해 오던, ‘이 세상 어디가 늪인지 어디가 숲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꿈-조용필)처럼 히트곡 속에서도 인생을 한 번 돌이킬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요즘에도 아름다운 노랫말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루시드폴은 ‘가난한 그대 날 골라 줘서 고마워요/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라며 고등어의 눈으로 지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따뜻한 말을 건네주며, 요즘 노래 식으로 하면 ‘고무신 거꾸로 신지 마’ 같은 말로 표현될 군대 가는 남자의 심정을 ‘두 번의 겨울 동안 두 번의 여름 동안/너도 날 기억하길’ 같은 재주소년의 노래도 있다.



아무리 세상이 빨라지고 각박해졌다지만 사랑을 느낄 때 떠올리고 싶은 시심(詩心)마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강한 말들과 직설적인 언어들만이 이 시대의 가슴에 와 닿는 것만도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가슴을 좀 더 아름다운 비유와 정제된 말로 채워 적어도 노래에서만큼은 비일상적인 말을 읊조릴 수 있는 여유를 주고자 하는 대중음악인의 노력이 아쉬울 뿐이다.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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