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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사청문회와 국회의 기회주의

2000년 제정된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시작된 국회의 인사청문회는 마치 국회에 대한 갖은 비판을 불식하려는 양 고위 공직 후보자들의 위법과 도덕성에 관련된 의혹을 철저히 파헤쳐왔다. 그 결과 김대중 정부에서는 두 명의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었고, 노무현 정부 때는 부총리급 인사를 포함해 3명의 고위 공직자가 낙마했다. 현 정부에서도 고위 공직자 4명이 인사청문회에 나서지도 못하고 낙마하거나 청문회 도중 사퇴했다. 이 정도 성과면 국회가 무엇인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보여준 지금까지의 활약을 국민들은 그다지 높이 평가하는 것 같지 않다. 국회의 활발한 인사청문회 활동에도 불구하고 인사청문회 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데다, 청문회 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론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가장 큰 원인은 인사청문회가 면죄부 청문회로 전락한 현실 때문이다. 도대체 청문회에 나오는 고위 공직자 후보들은 위장전입, 투기, 세금 탈루, 병역 기피 등에 어느 것 하나라도 하자가 없으면 안 되는 모양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라는 제도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고위 공직자 후보들이 사퇴한 사례들은 위법의 정도가 지나쳐서 반성과 사과로 넘어갈 수 있는 경우가 아닌 것이 대부분이었다. 엄연히 범법 행위들임에도 그 기준이 무엇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의 위법 행위는 반성하고 사과하면 되는 ‘면죄부’ 청문회로 전락한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제도적으로 우리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행 인사청문회 제도는 헌법상 국회의 임명동의가 요구되는 경우와 인사청문회법에 의해 인사 청문의 대상으로 인정되는 경우 두 유형으로 나뉜다. 헌법재판소장· 대법원장· 대법관· 국무총리· 감사원장처럼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얻어서 임명해야 하는 경우, 인사청문회는 실질적으로는 인준청문회로 정치적 의미가 크다. 국회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대통령이 지명한 후보자라 할지라도 임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장관이나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에 대한 인사청문은 국회에서 후보자를 검토해서 의견을 제시하는 정도일 뿐 대통령의 임명권을 법적으로 구속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국회 임명동의의 대상을 미국처럼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직자 중에서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모든 관리로 확대하면 자질과 능력의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청문회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도 예단하기 어려운 문제다.



국회의 임명동의를 전제로 한 청문회는 대통령에 대한 의회의 견제를 통해 권력 균형을 확립한다는 원칙 이외에도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있다. 즉 임명동의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인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의회 역시 일부분 나누어 져야 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임명동의권은 듣기에는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국회로서는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때마다 개입하여 대립하거나 타협을 이뤄내야 하는 고도의 정치적 역량이 있어야 감당할 수 있는 부담스러운 권한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의 국회는 책임 분담이 야기하는 정치적 부담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국회는 2002년 대선 국면에서 두 명의 국무총리 동의안을 잇따라 부결시켰는데, 이것이 전부다. 이후 국회는 임명동의권을 행사해야 하는 인사청문회에선 문제를 제기하는 시늉에 그쳐왔지, 임명동의안을 부결한 경우는 없다. 의원들이 임명동의권을 행사해야 하는 경우에는 대통령과 부딪쳐야 하는 정치적 부담은 되도록 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반면에 임명동의권이 전제되지 않은 인사청문회는 우리의 국회로서는 매우 흡족한 제도다. 장관 후보자들을 마음껏 공격함으로써 청문회 위원인 의원들은 공적을 쌓고 결정은 후보자의 처신에 따르거나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의 몫으로 남으니 말이다. 인사청문회 제도의 허점을 참으로 잘 이용하고 있는 기회주의적인 국회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애초에 청문회의 검증을 견딜 수 없을 인사들은 임명할 엄두도 못 내게 만드는 국회를 우리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정하용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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