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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핵무기 없는 세상과 한민족의 운명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일본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2차대전의 막은 내렸고 우리 민족은 일제 강점으로부터 해방됐다. 그러나 우리는 해방의 기쁨과 흥분에 취해 포스트 제국주의 시대와 핵무기 시대의 막이 동시에 올라가는 세계사의 거대한 전환의 파고가 얼마나 높은지를, 그 속에서 새로운 국가체제를 창출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인가를 미처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로부터 65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우리는 통일된 국토, 통일된 민족사회, 통일된 국가체제를 갖추지 못한 채 답답하고 불안한 나날을 감내하고 있는지 모른다.



65년 전 일제 패망에 직접 기여한 원폭 투하의 정당성이나 타당성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전투 요원과 일반 시민의 구별 없이 무차별 대량살상을 가져온 원폭 투하는 반인도적 행위이며 국제법의 전쟁수칙에도 어긋난다는 입장에는 아마도 많은 일본인이 동조하고 있을 것이다. 반면, 진주만 기습으로 2차대전을 촉발했으며 패전을 앞두고도 자살공격 등으로 인명 손실을 가중시켰던 일본의 비이성적 행위를 응징하고 전쟁 종결을 앞당기는 비상수단으로 원폭을 투하한 것이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입장은 대다수 미국인의 지지를 받아왔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사태를 국외자가 아니라 당사자로서 경험한 한국인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1942년 3월 이승만은 ‘미국의 소리’를 통해 고국 동포에게 보낸 방송에서 진주만 기습이란 잘못을 저지른 일본은 얼마 가지 않아 ‘불벼락’을 맞게 될 것이며 우리는 곧 독립을 되찾게 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그가 원자탄 프로젝트를 예견하고 불벼락을 언급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일본을 응징하고 한국의 독립을 가져오는 어떤 방도라도 수용하고 싶었던 것이 이 박사를 포함한 당시 한국인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히로시마 원폭 투하 이전에는 누구도 그 피해의 규모나 내용이 얼마나 놀랄 만한 것인지 전혀 실감할 수 없었다. 특히 한순간에 목숨을 잃은 25만 희생자의 약 10%가 한국동포였다는 것은 더욱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있는 한국인희생자위령탑에는 2만여 명의 우리 동포가 역사상 최초의 핵무기 희생자였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군수공장에 강제로 징용된 노무자로 식민지의 저주에 더해 핵무기의 저주까지 한꺼번에 떠안고 희생된 안타까운 우리 민족사의 한 장(章)이 아닐 수 없다.



20세기의 우리 민족은 독립을 상실한 식민지의 고통,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참상, 특히 핵무기가 수반하는 엄청난 파괴력을 모두 경험하였다. 그렇기에 다시는 남에게 나라를 빼앗기지 않는 강한 나라,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앞장서는 나라, 그리고 민족과 인류의 공멸을 자초하는 핵무기를 없애는 데 적극 동참하는 나라를 만들어가야겠다는 민족적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이러한 민족의 소원과 역사의 소명에 부응하기 위하여 남과 북의 지도자와 당국이 민족과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으로 내놓은 것이 1992년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었다.



그것은 군사적 대결이 상존하는 한반도에서 7000만 동포의 안전을 확실히 담보하는 최선의 방법이 비핵화라는 결론에 남북이 합의함으로써 역사의 교훈을 국가정책에 반영한 슬기로운 민족임을 내외에 보여준 쾌거였다. 그렇기에 저간의 우여곡절은 접어두고 이제라도 남과 북은 빛이 바래버린 ‘비핵화 공동선언’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데 하루속히 뜻을 모아야 할 것이다. 김일성 주석의 최대 업적의 하나인 이 공동선언을 활성화하는 데 북이 주저할 이유가 없다. 6자회담과 평화조약 체결을 성공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남북이 재확인하는 것을 가장 환영하는 나라는 중국일 수도 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아세안 10개국이 예외 없이 중국을 동아시아의 유일한 핵무기 대국으로 수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중국은 그러한 독점적 위치에 집착하지 않을 듯싶은 자세를 대(對)북한 관계에서 보여주며 동아시아 국제관계에 혼선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핵무기 없는 세상’을 지향하며 적극 활동 중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핵무기 없는 한반도’가 그의 원대한 목표 실현에 확실한 첫걸음이 될 것으로 환영할 것이다. 2012년 서울에서 개최될 ‘핵안보정상회의’가 한민족의 운명에 큰 발전적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전략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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