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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미당·황순원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⑨

미당·김수영 너머 나의 길을 찾다

시 - 장석남 ‘물맛’ 외 24편




갓 나온 신작 시집 제목이 『뺨에 서쪽을 빛내다』(창비)다.



시력 23년의 장석남 시인은 “23년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시가 아니었으면 또 뭘 했겠어요”라고 되물었다. [강정현 기자]
장석남(45) 시인은 인천항에서 고속여객선을 타고 50여 분 들어가야 닿는 섬 덕적도 출신이다. 서쪽 출신에겐 뜨는 해보다 지는 해가 익숙하다.



‘허기진 창자를 삐뚜름히 비추는 저녁볕/노는 아지랑이//솥을 열다//서쪽을 열고 뺨에 서쪽을 빛내다’(‘서쪽1’ 부분)



‘뺨에 서쪽을 빛내다’는 지는 해를 바라보다 노을에 물든 뺨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그러나 붉어진 게 노을 탓만일까.



‘똥이 튀어 변기를 닦았다/나의 윤리/불혹이 넘어 겨우 찾은/생활의 윤리/내 방황의 뿌리가 여기였는가?/그 이후로는/소변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경솔을 흘리지 않으려 애쓰고’(‘변기를 닦다’ 부분)



시인은 “부끄러움을 아는 나이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변기를 닦으면서도 얼굴을 붉히고, 쌀을 한 줌 흘리고(‘쌀을 줍다’)도 낯을 붉힌다. 시를 많이 쓴 것도 부끄럽다. 그는 “1년에 시가 20편 넘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1년간 발표한 25편 중 신작 시집에 수록한 건 9편. 나머지는 다듬거나 개작할 생각이다. 시집에 실린 9편 중에서도 소박한 시편 ‘물맛’을 골라 내밀었다.



“수다스럽지 않고 시원해서요. 복잡하고 헝클어지기보다는 상쾌하고 맑아지는 시가 점점 좋아져요.”



그는 예심위원 5명 전원의 추천을 받아 본심에 올랐다. 최현식 예심위원은 “미당 서정주와 김수영의 목소리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하다 뚜렷한 자기 시의 길을 찾은 듯하다”고 평했다.



“세상에 대한 불만이랄까, 갑갑증이 있을 땐 김수영의 호흡, 숨가쁘게 내닫는 것에 끌렸어요. 말과 말 사이에 번짐이 있는 미당의 세계도 시도해보고 싶었죠. 삶의 후반기에 접어드니 다시 한번 나로부터 출발한다는 심리도 작용하나 봐요. 그렇게 종합해가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 나의 길이 찾아지겠죠. 어차피 시는 일생 하는 거니까.”



글=이경희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장석남=1965년 인천 출생.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등. 김수영문학상·현대문학상 수상.






사랑일까, 절박할 때 솟는 감정 …

소설 - 편혜영 ‘저녁의 구애’




편혜영씨는 “구애라는 단어는 고지식하죠. 또 상대가 받아들이길 갈구하는 것이니까 애절하죠”라고 말했다. [안성식 기자]
후보작 ‘저녁의 구애’(‘작가세계’ 2009년 겨울)를 두고 ‘편혜영표 연애소설’이라고 했더니 “어, 그 말 좀 마음에 들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편혜영(38)씨의 소설엔 흔히 ‘그로테스크의 미학’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이번 작품의 경우 그로테스크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단순히 ‘연애소설’이라 이름 붙이기 어려운 건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 때문이다. 작가가 제목을 빌려온 화가 프리스 쉬베리의 ‘저녁의 구애’는 다분히 목가적인 그림인데도 소설을 읽고 나서 보면 음울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편혜영 효과’일 것이다.



화원을 운영하는 주인공 ‘김’은 연락이 끊겼던 친구로부터 10여 년 만에 전화를 받는다. 오래 전 신세를 졌던 어른이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다. 여자와 저녁 약속을 한 터라 빈소에 화환만 내려두고 올 요량으로 몇 시간 거리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달려가지만, 어른은 아직 세상을 뜨지 않았다.



“조문하러 갔는데 죽었어야 할 사람이 아직 죽지 않은 아이러니하고 역설적인 상황에 이끌려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거기에만 집중하면 저도 잘 모르는 철학적 죽음에 대한 이야기만 장황하게 하게 될 것 같아 다른 이야기도 풀어냈죠.”



빨리 돌아오길 바라는 여자의 전화에 그는 안도감과 함께 초조함, 죄책감(어른이 빨리 죽기를 바라고 있다는)을 느낀다. 상대방의 감정을 예민하게 감지해야 하는 친밀한 관계는 은근한 불편과 부담을 준다. 자기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헤아리기조차 어렵기에 더더욱. 여자에게서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그는 충동적으로 이별의 말을 던진다. 그러나 ‘홀가분해지리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의 마음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자신이 모는 것과 같은 종류의 트럭이 눈 앞에서 불길에 휩싸이는 걸 본다. 죽음을 목격하고 두려움에 휩싸인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서나 구급대가 아니라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대뜸 사랑을 고백한다.



‘그는 말을 하는 내내 자신이 몹시 낯설게 느껴졌는데, 그 느낌 때문에 고백의 일부가 진심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눈앞의 죽음으로 느낀 불안과 고독을 떨쳐버리려고 속마음과 달리 구애를 한 것일까, 아니면 불안한 정황 속에서 솟아나는 감정이야말로 진짜 사랑일까. 작가는 누구나 한번쯤은, 혹은 끊임없이 겪는 혼란의 실체를 예리하게 잡아낸다.



“사람의 마음을 몰라서 갈등하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좀 더 긴 소설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단지 연애 감정뿐만 아니라 사람이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는 지점이, 바로 폭발적으로 빛나는 순간인 것 같아요.” 김미현 예심위원은 “사랑의 절대성을 말하면서도 그 이기성과 가변성, 상황성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낼 수 없다”며 “내가 읽은 최고의 연애소설”이라고 말했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편혜영=1972년 서울 출생.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소설집 『아오이 가든』 장편 『재와 빨강』 이효석문학상·한국일보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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