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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한류의 꿈, 공예문화상품 ⑥ 정수화 칠장과 작가들의 ‘옻칠’

전통적 문양이나 형태가 우리 공예의 전부가 아니다. 우리 전통 공예의 경쟁력은 소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소재를 현대화하려는 노력이 바로 우리 공예를 세계화하는 또 하나의 방안이 된다. 지난 회엔 현대 디자인에 접목되고 있는 ‘나전(자개)’의 세계를 보았다. 이번 회에는 옷칠이다. ‘나전칠기’라는 이름으로 늘 나전의 뒤에 붙어 다녔던 옷칠이 열어가는 독자적 공예의 세계는 의외로 넓다. 옷칠은 말 그대로 자연재료를 이용한 칠이다. 이 옻칠은 현대과학이 만들어놓은 화학적 칠 재료들은 범접하기 힘든 여러 가지 기능을 한꺼번에 수행해 낸다. 먼저 항균·방부·방수 기능이 탁월하다. 또 한번 붙으면 뜨거나 울지 않는 접착제이기도 하다. ‘칠흑(漆黑)’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깊은 색감도 지녔다. 요즘 칠 장인들과 젊은 작가들은 이런 옻칠로 새로운 세상을 열고 있다.



건축서 핸드백까지 ‘젊은 공예’ 옻칠에 눈뜨다

자연을 품은 집 한옥에는 자연 도료인 옻칠이 가장 어울린다. 정수화 칠장이 추녀 끝에 옻칠을 하고 있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집에 옻칠하면 장마에도 보송보송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권오춘(60)씨의 한옥은 옻칠로 마감했다. 무형문화재 정수화 칠장이 처마에서 기둥을 거쳐 아홉 칸 대청마루를 꼼꼼히 칠했다. 옷칠한 대청마루는 이 한여름의 습기 찬 날씨에도 눅눅한 기운이 없었다. 권씨는 “장마에도 실내는 보송보송하다”며 “옻칠은 나무의 부식을 막고 불도 잘 붙지 않는 최고의 도료”라고 말했다.



정 칠장은 “이 집엔 정제칠을 했다”고 말했다. 정제칠이란 우리가 아는 까만 칠이 아니라 나무결을 그대로 드러나도록 하는 투명칠이다. 원래 옻나무에서 방금 딴 칠은 투명하지만 공기 중에 놔두면 검게 변한다. 칠을 판에 놓고 고무래질을 하는 등 정제 과정을 거치면 칠은 다시 투명해진다. 요즘 이 집처럼 옷칠을 하는 집들이 은근히 늘고 있다. 주로 한옥들이다.



목재에 직접 하는 칠뿐 아니라 옷칠한 장판도 있다. 권씨의 한옥에도 옻칠 장판이 깔렸다. 정 칠장이 시공했다. 한지 위에 삼베를 바르고 옻칠과 찹쌀풀을 섞어 바른 뒤 생칠을 덧입혔다. 한지를 만드는 장성우(44)씨는 “옻을 입힌 장판지는 색감뿐만 아니라 방습·방충 효과가 뛰어나 요즘 한지 공방에서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옻칠은 가격이 비싸고, 시공은 다소 까다롭다. 원주산 옻칠의 경우 1㎏에 60만원 정도다. 그래서 몇 겹으로 옻칠 하는 장판지의 경우 15㎡에 300만원 정도 든다. 또 옻칠은 온도·습도가 높은 환경에서 잘 마르기 때문에 가을·겨울철엔 할 수 없다. 정 칠장은 “온도 20도, 습도 75% 이상의 환경에서만 마른다”며 “장마철이 칠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삼베와 만나 생활용품이 되다



옻칠은 마감재이기도 하지만 강력한 접착제이기도 하다. 특히 옻칠과 풀을 섞어 삼베에 바르면 콘크리트와 철골이 만난 것처럼 단단해진다. 나무와 새끼를 감고 진흙을 바른 틀 위에 옻칠·풀을 바른 삼베를 놓고 굳히면 어떤 형태든 만들 수 있다. 마치 주물(鑄物)을 뜨는 것과 같다. 이렇게 삼베와 칠이 만나면 플라스틱처럼 가볍고 단단한 생활용품을 만들 수 있다.



정 칠장은 삼베와 칠을 활용해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화병·그릇과 성수통·묵주함 등 가톨릭 전례용품을 내놓고 있다. 플라스틱 제품 정도의 두께와 무게지만 표면의 색이 더 깊고 선명하다.



젊은 작가들도 이 기법을 활용하면서 옻칠 디자인의 한계에서 벗어나고 있다. 옻칠예술가인 한은정(24)씨는 개인 작품전을 통해 핸드백을 선보이기도 했다. 옻칠과 삼베를 섞어 굳힌 이 작품에 대해 처음 본 사람들은 돌이나 플라스틱인 줄 안다고 한씨는 말했다.



옻칠 생활용품의 가장 큰 특징은 항균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정 칠장이 한국원적외선협회에 의뢰해 시험한 결과에 따르면 포도상구균·폐렴균을 옻칠 제품 위에 놓고 24시간을 배양했을 때의 99.9%가 줄어들었다. 암모니아 탈취율도 90%가 넘었다.



다양한 색상의 물감으로도 활용



옻칠은 칠기에 주로 쓰는 흑색과 붉은색이 전부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나전칠기나 그릇 등에 보수적인 색을 썼을 뿐이다. 노랑·초록·파란색도 가능하다. 투명칠과 안료를 섞은 뒤 밀대로 수차례 정교하게 밀면 색칠이 만들어진다. 이 색칠을 기물 전체를 감싸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화려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전통 공예에서도 슬쩍슬쩍 보이던 기법이다. 권영진(51) 명장은 “일본에서는 금·은가루 입히는 기법을 주로 쓰지만 우리는 전통적으로 색칠로 그림을 그려왔다”며 “자개장에 그려진 목단 등의 그림은 색칠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작가들은 이 화려한 색칠을 기물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서울 인사동 쌈지길에서 옻공예품점을 열고 있는 박정인(36)씨는 다양한 색깔을 이용해 액세서리를 만든다. 손거울 뒷면에 붓으로 무늬를 새기고 머리핀에 나비를 그려 넣는다. 옻칠은 물감과 다름없다. 플라스틱 제품에도 가죽에도 그림이 그려진다. 박씨는 “젊은이들은 나전칠기보다 디자인이 예쁜 제품을 선호한다”며 “옻칠로도 대부분의 색이 표현된다는 것을 알고 놀라면서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한 윤상희(32)씨는 옻칠로 그림을 그린다. 유화처럼 캔버스에 그리지 않고 금속 등 독특한 소재에 그려낸다. 그가 윤씨는 “옻칠의 색감은 깊고 풍부하다”며 “작업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들지만 분위기가 색다르다”고 말했다.



유약 안 바르고 옻칠한 도자기도



옻칠을 한 도자기도 있다. 유약을 바르는 전통적 방식으로 만든 도자기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보통 도자기는 700~800도의 불에 초벌로 구워낸 뒤 유약을 바르고 1200도가 넘는 온도에서 다시 굽는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옻칠한 도자기는 모양을 빚은 흙을 바로 1200도의 온도에 구워 단단하게 굳힌 뒤 옻칠을 하고 습도·온도가 높은 곳에서 말린다. 작가에 따라 120도 정도 온도에 굽기도 한다. 옻칠도자기 작가 신보연(34)씨는 “옻칠은 유약보다 농도 조절이 쉬워 원하는 색을 낼 수 있는 데다 살균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문경대 도예학과 유태근(46) 교수도 옻칠·금박을 도자기에 입혔다. 유 교수는 “옻칠의 빛깔은 유약과 다른 묘한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2008년 열렸던 경상북도 산업디자인전람회에서는 도자기에 옻칠을 한 작품이 금상을 타기도 했다. 수상자인 정춘택(49)씨와 안은선(39)씨는 도자기로 만든 함·접시 등에 수차례 옻칠을 하고 말리는 작업을 통해 독특한 질감을 표현해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도자기에 옻칠을 접목한 시도가 참신하다”고 평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나무·가죽·자기 … 다양한 칠기들



● 목심칠기




옻칠을 하면 나뭇결이 더욱 선명하게 살아난다.
목재에 옻칠을 한 것을 이른다. 칠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나무를 완전히 건조시킨 뒤 바른다. 목재가 뒤틀리거나 썩는 것을 막는다. 나무 종류에 따라 각각 다른 기법이 쓰인다. 물푸레나무·상수리나무 등 무늬가 선명하고 단단한 활엽수에는 나뭇결을 살려 투명칠을 한다. 소나무·잣나무 등 침엽수에는 생칠에 쌀풀을 섞어 바른다.



● 칠피칠기



가죽에 옻칠을 한 것. 대개 소가죽을 쓴다. 가죽은 질기고 부드럽지만 보존이 어려워 방습·방부 효과가 뛰어난 옻칠을 했다. 조선시대에는 장군의 갑옷이나 말안장 등에 옻칠을 했다.



● 도태칠기



도자기에 옻칠을 한 것. 과거에는 화병 모양의 도자기에 주로 발랐다. 1200도 정도로 초벌 혹은 재벌로 구운 도자기에 유약을 바르지 않고 바로 옻칠을 했다. 낮은 온도에 굽거나 굽지 않고 건조시켰다. 옻칠을 한 뒤 200도 이상의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옻이 도자기 표면에 붙지 않고 뜨게 된다.



● 지승칠기



한지를 끈처럼 꼬아 형태를 만들고 옻칠을 한 것. 또는 판 위에 한지를 겹겹이 바른 뒤 한지로 문양을 만들고 투명칠을 하기도 했다. 전통혼례에서 시집가는 새댁의 가마 안에 넣는 요강으로 놋쇠 소재 대신 옻칠한 한지 요강(사진)을 넣기도 했다.



● 남태칠기



얇게 쪼갠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 등의 표면에 옻칠을 한 것. 중국의 남쪽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썼다.



● 협저칠기(건칠)



삼베와 옻칠 등으로 형태를 만든 뒤 굳히는 것. 곡선 형태를 만들 때 주로 쓰인다. 새끼줄·점토·석고 등으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삼베·옻칠·쌀풀을 몇 차례 발라 굳힌다. 완성된 기물은 가볍고 단단하다. 옻칠 작업 중 가장 어렵다.



무형문화재 정수화 칠장 “옻칠이 공예로 인정받은 건 불과 10년”



옻칠이 공예로 인정받은 건 최근 일이다. 나전칠기장은 1966년 일찌감치 중요무형문화재에 지정됐다. 하지만 옻칠이 따로 공예의 한 분야로 지정된 것은 2000년이다. 옻칠 정제 기술을 인정받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가 정수화(56·사진) 선생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 장인들의 공방을 돌며 40여 년간 정제기술과 나전칠기를 비롯한 옻칠 공예를 익혔다. 4년 전부터는 배재대학교 옻칠학과 겸임교수로 제자들을 길러내고 있다. 그에게 ‘젊은 공예’ 옻칠의 미래를 물었다.



Q 옻칠하면 나전칠기가 떠오른다



옻칠은 도료지만 재료의 겉을 덮는 게 아니라 그 특징을 더 확실하게 살려준다. 나전칠기가 유명해진 것은 화려한 자개를 눈에 띄게 살려주는 옻칠이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옻칠이 나전칠기에 속하는 게 아니라 나전칠기가 수많은 옻칠의 장르 중 하나다.



Q 옻칠 공예란 무엇인가



옻칠을 정제하는 과정부터 장인의 손길이 미친다. 제대로 정제된 옻칠이어야만 제대로 된 공예품을 낼 수 있다. 옻칠 공예는 단순한 칠이 아니다. 예를 들어 옻칠의 장르 중에 협저칠기라는 게 있다. 건칠이라고도 한다. 이를 이용하면 둥근 화병, 휘어진 그릇 등 온갖 형태의 기물을 만들 수 있다. 또 옻칠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칠화는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예술 작품이기도 하다.



Q 옻칠은 현대공예에선 어떻게 쓰일 수 있나.



옻칠은 이제까지 가구 중심이었다. 자개장이나 함 등의 기물에 주로 쓰였다. 지금은 여성 생활용품으로도 진화 중이다. 학생들을 가르쳐 보니 전통기법을 활용하는 상상력이 대단했다. 핸드백·액세서리 등도 옻칠로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옻칠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이를 적용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한국원적외선학회에 의뢰해 살균 효과가 있으며 원적외선을 방출한다는 걸 증명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젊은 옻칠공예 지망생들을 많이 가르쳐 감각과 기법을 전수하는 게 목표다. 옻칠이 장인으로 인정받은 것이 이제 10년이다. 전통 공예로서의 옻칠은 수천 년이 됐지만, 현대적 의미로 따지면 어린아이인 셈이다. 정제기법도 전통 방식에 한 세대가 흐르면서 더 효과적으로 바뀐 것이 많다. 옻칠공예도 많은 젊은이의 상상력이 더해지면 더 나은 모습으로 바뀔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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