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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 지배구조도 은행장 독주 막기는 역부족

강정원 전 행장을 포함한 임직원 88명.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이 지난 19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징계 내용이다. 단일 금융회사가 받은 징계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징계 대상도 다양하다. 경영진을 견제하는 사외이사 한 명과 내부 통제를 담당하는 상근감사위원까지 들어갔다. 더구나 노조 간부 두 명도 금감원의 검사 상황을 적은 수검일지를 외부에 유출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받았다.



스페셜 리포트 - 국민은행 무더기 징계, 뭘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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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국내에서 가장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갖췄다고 평가받았던 국민은행의 초라한 현실이다. 과연 국민은행의 무더기 징계 사태는 우리 금융계에 뭘 남겼나.



“정말 은행 경영이 이 정도인 줄 몰랐다.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은 이사회를 기망했다.”



징계 결과가 나온 뒤 한 금감원 간부가 배경 설명을 하면서 한 말이다. 기망(欺罔). 허위의 사실을 말하거나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상대방을 착오에 빠지게 하는 행위다. 행장이 은행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를 속였다는 뜻이다. 국민은행이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를 인수한 과정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이사회에 제대로 보고 안 해”=국민은행은 2008년 3월 이사회 승인을 받아 BCC 지분 41.9%를 9392억원에 사들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주가 하락으로 본 손실은 약 4000억원에 달한다. 금감원은 강 전 행장이 BCC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사회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거나 핵심 정보를 누락해 손실을 끼친 것은 법규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3년간 금융회사 취업을 못 하는 문책경고라는 중징계를 내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은행의 내부 검토 보고서엔 “BCC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유동성 사정이 좋지 않다”는 내용이 있었지만 이사회 및 소위원회 보고 내용에선 빠졌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인수가격도 자문사가 시나리오에 따라 높은 가격과 낮은 가격을 예상했는데 낮은 가격에 대한 부분은 이사회에 보고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 고위 임원을 지낸 한 금융인은 “이사회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손실을 끼친 것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강 전 행장 재임 시절 국민은행 이사와 KB금융 이사회 의장을 지낸 조담 전남대 경영대 교수는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에 대해 주가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제재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당시 이사회에선 BCC 인수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다양한 검토를 했다”고 말했다. 본지는 강 전 행장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임 사외이사 징계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은행은 2007년 전산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검토작업을 시작했다. 최종적으론 IBM 기종이 선정됐다. 문제는 IBM에 20년 이상 근무했고 당시에도 협력업체 대표였던 B씨가 사외이사였다. 금감원은 B씨가 은행 내부에서 IBM 기종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경징계를 했다. 자신과 관련이 있는 의사 결정 과정에선 당연히 빠져야 한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다만 B씨가 기종 선정 과정에 개입했는지 여부는 밝혀내지 못했다. B씨 측은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전문적인 의견을 표명한 것일 뿐 기종 선정 과정에 부당하게 관여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 여의도 본점 영업부에서 창구 직원들이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검사를 시작한 지 8개월여만인 지난 19일 강정원 전 행장을 포함한 국민은행 임직원 88명에 대한 징계 결정을 내렸다. [블룸버그]
◆무더기 징계받은 경영협의회=국민은행은 주요 사안을 은행장이 결정하지 않고 부행장 등 주요 간부들이 경영협의회를 구성해 결정한다. 이는 통합 국민은행장인 김정태 전 행장 시절 도입한 것으로, 은행장에 들어오는 압력을 막아 내는 유용한 수단이 됐다.



하지만 지난해 국민은행 경영협의회는 더 이상 이런 곳이 아니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5월 금융위기에 따라 외화 조달이 어렵게 되자 10억 달러 규모의 커버드본드(담보가 붙은 채권) 발행에 나섰다. 당시 국민은행은 보도자료를 내고 “아시아 최초로 커버드본드 10억 달러 발행에 성공했다”고 선전했다.



실상은 달랐다. 업무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4억5000만 달러만 들여왔다. 나머지 5억5000만 달러어치는 달러를 차입할 때 적용하는 높은 금리를 주고 원화를 빌려 오고 말았다. 금감원은 잘못된 결정으로 국민은행이 1300억원의 비용을 더 썼다고 밝혔다. 10억 달러의 외화 조달을 승인해 준 이사회엔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금감원에 따르면 강 전 행장은 실무 부서로 하여금 5억5000만 달러어치를 원화로 조달하는 방안을 마련케 한 뒤 경영협의회에서 승인을 받았다. 이 회의에 참여한 국민은행 간부들은 대부분 징계를 받았다.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은행이 대규모 징계를 당한 것은 형식적으론 경영위원회 중심의 의사 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국민은행 직원은 “행장이 하기 싫은 일은 경영위원회에서 거부할 수 있지만 정말 원하는 일을 거부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고 말했다.



◆“주주가 문제 제기해야”=전문가들은 다양한 진단과 해법을 내놨다. 강병호(전 금감원 부원장) 한양대 법대 교수는 “국민은행은 우리 환경에 비해 미국식 지배구조를 너무 빨리 따라갔다 부작용이 터진 것”이라며 “다른 은행도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지배구조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안으론 일단 절차적인 과정을 제대로 지키는 것과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들이 주요한 투자와 의사 결정을 할 때 이사회 등 내부 검토 과정을 보다 투명하고 하자 없게 처리해야 한다”며 “감독 당국도 절차에 문제가 없다면 결과가 나쁘다는 것으로 징계를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정순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법규 위반행위에 대해 집행임원을 포함한 모든 임원에 대한 개인 과징금을 비롯한 금전적 제재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정치권의 간섭을 차단하고 주주들에 의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권종호 건국대 법대 교수는 “아직도 금융계엔 정치권이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퍼져 있고, 그렇게 볼 수 있는 정황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정치권을 배경으로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영자들은 자칫 이를 믿고 책임 추궁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입김이 작용하다 보면 금융권 내에선 무책임 경영 풍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KB금융의 경우 민영화가 돼 있는데 주주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금융권의 공익성을 감안한다면 이 분야에선 주주들이 소송을 낼 수 있는 요건을 완화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다음 달 정기국회에 ‘금융회사의 경영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에 따르면 은행 부행장과 같은 집행임원은 최고경영자(CEO)가 아닌 이사회가 임면하고 임기도 보장된다. CEO에 대한 집행임원의 견제 기능을 높이기 위해서다. 사외이사의 수를 늘리고 이사회를 자주 개최하도록 해 이사회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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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배·권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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