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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구제는 돈·인력·기술 가진 대기업이 나서야”

지난4월 미국 메릴랜드주 옥손 힐에서 열린 세계 헬스케어 총회에서 연설하는 무함마드 유누스 그라민뱅크 총재. 유누스 총재는 은행업 외에 정보기술(IT)·환경·의료 등 40개 분야의 사회적 기업을 이끌고 있다. [블룸버그 뉴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 방글라데시에 빈민들만을 위한 은행이 문을 열었다. 그라민뱅크(Grameen Bank)다. 당시 방글라데시 서민들은 담보가 없어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못해 고리대금업자한테 돈을 빌려 쓰고 있었다. 살인적 고금리에 짓눌린 서민들은 수입의 대부분을 이자를 갚는 데 써야 했다. 빈곤의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이런 현실을 바꾸자고 나선 사람이 당시 치타공대 경제학 교수이던 무함마드 유누스(70)다. 그는 갖고 있던 27달러를 털어 빚에 쪼들린 사람들의 빚을 갚아줬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은행을 열게 된 계기다. 극빈자들에게 소액을 장기 저리로 대출해줬고, 거래 고객의 64%가 최악의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라민뱅크와 이 은행의 총재인 유누스는 2006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미소금융의 모델 그라민뱅크 설립자 유누스 총재

그라민뱅크는 현재 방글라데시 전역에 1175개의 지점을 두고 1600억 다카(270억원)를 대출하는 대형은행으로 컸다. 빈곤문제 해결의 성공사례로 평가받으면서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도 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저소득층을 돕기 위해 현 정부가 도입하고 있는 ‘미소금융(micro finance)’도 이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사회적 기업 돕는 역할 해야
중앙SUNDAY는 지난 2일 빈민 구제에 선도적 역할을 한 사회적 기업 그라민뱅크의 유누스 총재를 인터뷰했다. 방글라데시 다카에 있는 은행 본사 4층 집무실에서다. 기자는 또 그라민뱅크가 마련한 ‘인터내셔널 다이얼로그(International Dialogue)’ 연수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유누스 총재는 빈곤 문제에 정부보다는 기업이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사람은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기업이 갖고 있는 훌륭한 인력과 기술이 없으며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잘 모른다. 정부보다 민간이 더 창조적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민간이 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민에 대한 기본 서비스에 집중하고 (기업 등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 주는 데 집중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그는 대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거론하면서 대기업에 CSR 비용의 절반을 사회적 비즈니스에 쓸 것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사회공헌활동은 대개 돈을 써버리는 것이기 쉬운데, (이 돈의 일부로) 사회적 비즈니스를 하면 원금도 돌려받고 회사도 지속되며 여기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자긍심을 갖게 돼 회사에 대한 충실도도 높아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1976년 27달러를 갖고 그라민뱅크를 시작했다. 그라민뱅크가 가져온 가장 큰 성과는 뭐라고 생각하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도 은행 업무가 이뤄지고 있는 점이다. 오늘날 그라민뱅크와 같은 마이크로 크레디트 은행이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은행 운영으로 비난받은 적 있나.
“아주 많이, 좌·우파 모두에게서 비난을 받았다. 극단적 좌파들은 내가 아주 적은 돈으로 대출자들을 꼬여 그들을 자본주의자들로 만들고 있다고 공격했다. 사회주의 혁명에 장애를 주고 있다는 거다. 일반 은행가와 투자자들은 우리가 대출자들을 헛갈리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가난 없는 세상을 위하여』란 책을 썼다. 정말 가난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나.
“가난은 반드시 극복될 수 있다. 한국의 사례가 증거다. 60년대 방글라데시와 한국은 (경제적으로) 같은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너무 다르다. 빈곤을 극복하기 위해 나라에 어떤 엔진을 다느냐의 문제인데, 이건 정치 지도자들의 과제다.”

-한국의 예를 들었는데, 한국의 성공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한국 지도자들의 리더십과 교육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방글라데시는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했다. 방글라데시는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 경제가 굴러가고 있는 형편이다. 봉제공장이 있는 정도이고, 산업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그라민뱅크가 거의 첫 번째 산업이라고 할 정도다. 오랫동안 정치인들에게도 문제가 많았다.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과거를 돌아보며 정쟁을 벌이는 데 시간을 소모했다. 그런 점들이 두 나라를 다른 길로 가게 했다.”

유누스 총재는 드리머(Dreamer)다. 늘 어떻게 세상을 바꿀까를 꿈꾼다. 그는 미국의 밴더빌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학자다. 그런 그가 빈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방글라데시에 몰아닥친 대기근(74~75년)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는 당시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 그라민뱅크를 설립했다. ▶150달러 미만의 소액을 ▶담보 없이 ▶장기 ▶저리로 ▶서민에게만 대출해주자는 거였다. 이 은행은 대출금을 갚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지만 대출금 회수율은 98%를 넘는다. 83년과 91~92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흑자를 내고 있다.

월급은 500달러, 배당금은 안 받아
-어떻게 사회적 비즈니스를 생각하게 됐나.
“사회적 비즈니스가 고전 경제학에는 들어 있지 않다. 기업은 큰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고전 경제학의 범주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능력과 기술을 돈 버는 데 쓰도록 훈련돼 왔다. 이 기술을 사회적 비즈니스의 영역에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면 문제가 풀린다. 기업인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을 ‘돈’에서 ‘사회적 문제 해결’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가난·건강·교육·환경 등의 문제가 다 풀리게 된다.”

-사회적 비즈니스는 무엇이고, 기업의 사회공헌활동(CSR)과는 어떻게 다른가.
“사회적 비즈니스는 말 그대로 비즈니스다. 다만 돈을 보고 하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푸는 데 중점을 두는 비즈니스다. (기업이기 때문에) 이윤을 남겨야 하지만, 그 이윤을 개인이 가져 가는 게 아니라 (회사에 재투자돼)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하고 더 많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쓰여야 한다.
CSR 활동은 기업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한 PR 영역으로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비즈니스에 참여하면 기업엔 종국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나.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한편으로 사회를 위해 일한다는 자긍심을 갖게 돼 직원들이 회사에 대한 충실도도 함께 높여준다.”

-그렇다면 빈민구제에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정부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힘이 없다. 그들에겐 기업이 갖고 있는 훌륭한 인력과 기술이 없다. 모든 걸 다 하려 하기보다는 정부는 국민에 대한 기본 서비스에 집중하고, 민간이 사회적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 협조를 해주는 게 좋다. 그러면 세금도 더 효과적으로 쓰이게 된다.”

-다농그룹과 합자해 요구르트 회사 그라민-다농을 만들었다.
“다농그룹은 회사 투자자들에게 사회적 비즈니스가 무엇인지 설명한 뒤 그들의 소득 중 일부를 사회적 비즈니스에 펀드로 넣으라는 제안을 했다. 단 한번의 설명회를 했을 뿐인데 투자자들의 98%가 동참을 했다. 연 배당금 중 몇 %만 사회적 비즈니스에 투자해도 원금이 보전되면서 사회적으로 일자리 창출을 하고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게 되니 투자자들이 만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난 글로벌 대기업들에 제안한다. 그들의 투자자들에게 사회적 비즈니스를 설명하고 한번 의향을 물어보라고. 또 헤지 펀드 사람들에게도 투자액 중에 0.1%만이라도 사회적 비즈니스에 투자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개인적으로는 큰 돈이 아니어도 사회적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최근엔 일본 의류회사 유니클로와도 합자회사를 만들었는데.
“2005년 다농이 탁월한 기술을 갖고 있는 요구르트 생산 기술을 방글라데시 빈곤층 어린이의 영양 상태 개선과 연결시켰다. 아디다스는 어린이들에게 신발을 값싸게 제공하는 사업을 하기로 했고, 비올리에는 좋은 물을 값싸게 공급하는 일을 시작했다. 최근엔 일본의 유니클로가 그라민과 합자해 사회적 비즈니스에 참여하기로 했다. 유니클로는 방글라데시의 시골 사람들과 학생들, 릭샤 운전사들에게 의류를 매우 싼값에 공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한 공장이 설립될 것이고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들과 협력해 합자 회사를 만들어볼 의향은 없나.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에 가고 싶다. 한국의 CEO들을 만나 사회적 비즈니스가 뭔지, 그 일들이 어떤 사회적 결과를 낳는지 설명하고 싶다.”

그는 사회적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식시장(Stock Market)을 만들자는 제안도 했다. “현재의 주식시장은 오직 돈을 버는 데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가 기존의 주식시장에 들어가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게 될 것”이라며 “별도의 주식시장을 만들어 수익 배분금을 받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회사에 돈을 투자하게 하자”고 말했다.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면서 동시에 가장 행복한 나라’다. 유누스 총재는 아내와 두 딸을 두고 있다. 그는 과연 행복할까? 가족들은 어떨까?
“난 행복하다. 그러나 가족은 행복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내가 바쁘니까 싫고, 내가 칭찬받으니까 좋아한다. 큰딸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오페라 가수(모니카 유누스)다. 둘째 딸은 방글라데시에서 비즈니스 스쿨에 다니고 있다. 딸들은 내가 자기들에게 별로 관심을 안 갖는다고 불평한다.”

-그라민뱅크에서 받는 월급은 얼마인가.
“한 달에 500달러를 월급으로 받는다. 자가용과 아파트도 제공받고 있으므로 한 달에 1000달러 정도 받는 셈이다. 방글라데시의 경제 수준에서 볼 때 이건 풍족한 월급이다. 배당은 한 푼도 받지 않는다.”

-2006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이전과 이후, 어떤 차이가 있나.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국제사회의 관심이 커졌다. 예전에는 소리를 질러도 안 들었는데, 노벨상 이후에는 속삭이는 듯한 소리로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이 귀를 기울인다(웃음).”

-향후 계획은.
“의료 분야에서 어떻게 소외 계층에 서비스할 것이냐를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시골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고, 의료 과학대학 설립도 계획 중이다.”
유누스 총재는 사회적 비즈니스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 “당신이 세상을 전부 바꿀 필요는 없다. 작게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창조적 아이디어”라고 강조했다.


이진 객원기자는
한국외국어대를 나와 잡지사 기자로 활동 했다.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 스쿨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블룸버그통신사에서 아시아 마켓 리서처로 일했다. 청와대 행정관·한국화이자제약 전무를 지냈다. 저서로는 '나는 최고의 이진이다''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나는 미국이 절반만 좋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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