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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의 웃음거리 된 북한의 ‘주체 리얼리즘’ 미술

1.’김일성 주석께 드리는 꽃’ 전시가 열리고 있는 전시장 풍경. ⓒ Wolfgang Woessner/MAK 2.’In early morning’(2010), Ri Tong Gon,ⓒ Korean Art Gallery, Pyongyang사진 MAK 제공3. 지하철 승강장에 붙어있는 전시회 포스터.사진 최선희 통신원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응용 미술관 막(MAK)에서 지난 5월 19일 개막해 9월 5일까지 열리는 북한 현대 미술전이 서구 언론의 조롱을 받고 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은 17일 ‘전체주의의 예술’이라는 제목 아래 “고립된 북한이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한눈에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영국 BBC는 “그림들은 북한 사람들이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꿈 속의 이상향을 다루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 24’는 “북한의 프로파간다가 빈에 펼쳐지다”라는 제목을 뽑았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고 있는 북한 현대미술전

도대체 어떤 그림들일까. 파리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반 만에 빈에 도착했다. MAK 옆 대로 변에는 ‘김일성 주석께 드리는 꽃’이라는 전시 제목을 하얀 바탕에 붉은 한글과 독어로 쓴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미술관에 들어서니 어떤 남자 두 명이 다가왔다. 자신은 북한에서 전시를 위해 파견나온 사람이며 옆에 있는 사람은 조각가라고 밝힌 뒤 “현재 천안함 문제로 남북한 관계가 긴장 상태에 있으니 부정적인 내용의 기사는 자제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그러자 내 곁에 있던 미술관 프레스 담당자가 대화 내용을 짐작하고 “언론은 쓰고 싶은 것을 쓸 자유가 있으며, 당신에게는 이런 사항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이 두 사람은 필자가 도슨트의 안내를 받아 전시를 관람할 때 합류하겠다고 말했으나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시장 벽면 안내문에는 “이번 전시가 북한의 국립미술관인 조선미술관과 백두산 건축연구원, MAK의 협력으로 이뤄지게 됐으며 처음으로 해외에서 북한 메이저 현대 미술 작품들과 건축을 소개하는 전시”라고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전시장에 걸린 100여 점의 작품은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의 현대 미술이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특히 북한에서 이 전시를 위해 특별히 보낸 총 16점의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형 초상화는 이 둘을 최대한 이상적인 인물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공을 들인 그림들이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과는 또 다른, ‘주체 리얼리즘’이라고나 할까. ‘인민을 위한 길에 함께 계시며’에서 김 위원장은 김 주석과 함께 눈발이 흩날리는 플랫폼을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서 걷고 있다.

‘오직 수령님만을 믿고 따르렵니다’에서는 농민들이 김 주석 주위에 둘러서 있고 그중 늙은 여인이 김 주석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어린이들입니다’라는 그림은 파란 잔디밭 의자에 앉아 있는 김 주석과 그 옆에 서 있는 김 위원장 주위에 예쁜 옷을 입고 분홍빛 볼이 오동통한 어린이들이 이 둘에게 안기고 있거나 이 둘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중 한복을 입은 한 남자 아이가 손에 들고 있는 연에는 ‘조국통일’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몇 점의 수묵화를 제외하고, 1960년대부터 2010년에 걸쳐 그려진 모든 그림의 스타일과 주제가 모두 한 가지라는 점이었다. 매우 사실적인 인물 및 풍경 묘사, 강한 빛을 발하는 원색과 파스텔톤의 색깔들, 평화와 행복을 보여주는 인물들의 한결같은 표정은 거의 초현실주의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MAK의 페터 노에버 관장은 7년 전 평양을 방문했을 때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4년 전부터 준비를 했다고 한다. 작품을 고르기 위해 두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그는 보도자료에 “이 전시를 바라보는 관점에 정치적인 시선은 배제돼야 한다. 이 전시가 외부 세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북한의 이상화된 예술(Idealizing Art)을 보여주는 매우 드문 기회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났다. 적어도 예술 분야에서만큼은”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이번 전시야말로 북한의 고립 상황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예술 분야에서만큼은.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절대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범주 안에 갇혀버린 북한의 예술 말이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 베티나 부세는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기획은 초기부터 북한 정부가 개입했으며, 보여주는 작품 중에서 전시작을 골랐고, 초상화는 직접 제안해왔다”고 들려주었다. “전시작이 순수 예술 작품이 아닌 정치적 목적으로 제작된 작품 아니냐”는 질문에 “국가 이념을 반영하는 특수한 장르의 작품들이며, 특정한 이미지와 주제를 담고 있다. 정해진 규정과 이념에 따른 작품들로 이상화된 이미지가 많다.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생각할지는 관람객들의 몫”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추천 작가 외에 다른 작가들의 작품은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 전시로 북한의 현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북한이 이상향처럼 비춰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특별한 형태의 예술 작품이며 관객들은 그런 관점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관람객이 북한의 현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MAK은 전시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개장 이래 정치·문화·예술 분야에서 논쟁의 대상이 돼왔다. 독일의 유력지 디벨트는 이번 전시회를 ‘가당치 않다’고 평가했다. “북한 같은 테러체제 국가에서 어떤 종류의 시각 예술도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을 곁들여서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MAK의 노에버 관장에 대해 “북한 체제를 미화하고 있다”는 비난이 많다.

그 때문에 정부 지원을 받는 미술관이 외국 미술품을 들여올 때 보험 혜택을 주던 관행이 이번엔 적용되지 않았다. 다니엘 카프 오스트리아 재무부 대변인은 “이번 전시회엔 은밀한 동정심이 깔려 있어 돈을 지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실주의를 표방한다는 북한의 미술계가 주민들의 참혹한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그림들을 그린 데 대한 반감을 반영한 것이다. 한 프랑스 관람객의 소감은 논쟁의 본질을 간명하게 보여준다.

“스탈린 체제에서나 볼 수 있는 유형의 그림들을 2010년에도 계속해서 그리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결국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MAK은 북한의 ‘예술’을 보여주고, 언론은 북한의 ‘독재’를 이야기하고. 결국 북한은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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