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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초의 승부, 배트 끝 7cm에 맞으면 후련한 장타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이대호(오른쪽)가 14일 광주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 경기에서 2회초 1사 1, 2루 때 3점 홈런을 쳐 9경기 연속 홈런 기록을 세웠다. [광주=연합뉴스]
프로야구의 8월은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28)의 홈런으로 뜨거웠다. 그가 지난 4일부터 14일까지 세계 최초로 9경기 연속 아치를 그리는 동안 야구팬들은 모처럼 홈런 보는 재미에 빠졌다. 이대호는 이승엽(34·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이 국내에서 뛴 마지막 해인 2003년(56홈런) 이후 7년 만에 40홈런을 넘어 50홈런을 조준하고 있다.
야구 방망이가 투수의 공을 때리는 시간은 1000분의 1초다. 방망이가 공을 밀고 나가는 거리는 2~3㎝다. 투수와 타자는 이 짧은 승부에서 이기기 위해 재능과 노력을 쏟아낸다.  

프로야구의 꽃, 홈런의 비밀


전쟁이 끝나고 홈런이 꽃피다
1800년대 야구장엔 담장이 없었다. 미국 프로야구 탄생 후 관중을 받기 위해 펜스를 설치했지만 타구가 닿지 않을 만큼 멀었다. 1년에 홈런 10개면 여유 있게 홈런왕에 오를 수 있었다. 담장을 넘기는 홈런이 아니라 빠른 주자들이 만든 장내 홈런이 대부분이었다.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이후 메이저리그는 중대한 전환점을 맞았다. 외곽지역에 있던 야구장이 도심으로 진입하면서 홈플레이트와 펜스의 거리가 100m 내외로 줄었다. 그래도 반발력이 크지 않은 공을 담장 너머로 보내는 선수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보스턴 레드삭스의 왼손 투수 베이브 루스가 독특한 타격을 했다.

루스는 1m85㎝·95㎏으로, 당시로는 거구였다. 그는 9번 타순에서 심심치 않게 홈런을 쳤다. 모두 담장 밖으로 날린 홈런이다. 타자로 전향한 1919년엔 홈런을 29개나 쳤다. 그의 홈런은 메이저리그에 속한 5개 팀 타자들의 홈런을 합친 수보다 많았다. 대부분의 타자가 수평 스윙을 했지만 루스는 퍼올리는 듯한 스윙을 했다. 1920년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 그는 54개의 홈런을 쳤다.이 무렵 메이저리그에 홈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11년 경기당 0.3개였던 홈런은 1920년 0.75개로 늘었다. 반발력이 큰 공을 쓰기 시작했고, 루스의 타격을 본 교타자들이 포물선 타구를 날리기 시작했다. 이후 메이저리그의 역사는 홈런의 역사가 됐다. 2000년대엔 경기당 평균 2개 이상의 홈런이 나오고 있다.

루스는 너무 뚱뚱해서 뛰지 못할 지경이었던 1935년까지 통산 714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1974년 행크 에런(755홈런)이 루스의 기록을 깼다. 2007년엔 배리 본즈(762개)가 메이저리그 기록을 새로 작성했다. 그러나 에런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팬들로부터 협박을 받았고, 본즈는 약물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비난을 받았다. 미국 팬들에게 ‘홈런왕’은 여전히 루스다.
 
리그의 수준 차 말해주는 홈런
루스가 주축이 된 메이저리그 올스타팀은 1931년 일본을 방문해 일본 대표팀에 17전 전승을 거뒀다. 3년 뒤에도 일본과 18차례 붙어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1936년 일본 프로야구가 탄생한다. 오 사다하루(왕정치)는 62년부터 11년 연속 홈런왕에 오르며 요미우리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 통산 868홈런을 터뜨렸다. 일본은 세계기록이라고 주장하지만 메이저리그는 인정하지 않는다. 리그의 수준이 다를 뿐만 아니라 일본의 야구장은 미국 야구장에 비해 매우 작다.

오 사다하루가 뛸 때 요미우리의 홈인 고라쿠엔 구장의 홈플레이트에서 오른쪽 펜스까지의 거리는 90m(실제로는 87m라는 설도 있다)에 불과했다. 현재는 한·미·일의 야구장 규격이 거의 비슷하다. 그래도 세계기록, 또는 아시아기록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2003년 이승엽이 세계 최연소로 통산 300개의 홈런을 치고 아시아 최초로 한 시즌 56개의 홈런을 기록했을 때도, 이대호가 9경기 연속 홈런 기록을 세웠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메이저리그 바깥의 기록에 대해 ‘세계 최고’나 ‘세계 최초’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홈런은 리그 사이의 수준 차를 설명하는 잣대로도 쓰인다. 일본 최고의 거포 마쓰이 히데키(LA 에인절스)가 메이저리그에서 기록한 한 시즌 최다 홈런은 31개(2004년)였다. 메이저리그 최고기록(73개·2001년 본즈)의 절반도 안 된다. 1999년 54개, 2003년 56개 등 국내에서 두 차례나 한 시즌 50개 이상의 홈런을 친 이승엽이 일본에서 기록한 한 시즌 최다 홈런은 41개(2006년)다.
 
힘+기술 조화된 종합예술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난 뒤 나온 홈런왕들은 시즌 40홈런에도 이르지 못했다. 후계자로 꼽혔던 이대호는 2006년 26개, 김태균(28)은 2008년 31개로 타이틀을 따냈다. 지난해부터 1982년생 홈런 타자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김태균은 제2회 WBC에서 홈런 3개를 터뜨려 공동 1위에 올랐다. 올해 일본 롯데 마린스에 입단한 그는 20일 현재 19개의 홈런을 쳐 상위권에 올랐다. 메이저리그의 추신수(28)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지난해 20개, 올해는 21일 현재 14개의 홈런을 쳤다.

홈런은 힘과 기술이 모두 필요한 ‘종합예술’이다. 역대 최고의 홈런 스페셜리스트는 이승엽이다. 만 27세까지 통산 324개의 홈런을 쳤다. 1년만 더 국내에서 뛰었다면 서른 전에 통산 1위 양준혁(351개), 2위 장종훈(340개)보다 훨씬 많은 홈런을 쳤을 것이다.

이순철 MBC SPORTS+ 해설위원은 홈런 타자를 ‘회전형’과 ‘이동형’으로 구분한다. 몸의 중심을 고정한 채 몸통을 회전하며 치는 타자가 ‘회전형’, 중심이 앞으로 나가면서 힘을 싣는 타자가 ‘이동형’이다. 이승엽은 전형적인 ‘이동형’ 타자다. 힘이 아주 뛰어나지 않기 때문에 체중을 앞으로 이동하며 타구에 힘을 싣는다. 김태균은 하체를 거의 고정한 채 상체의 회전력으로 공을 때린다. ‘회전형’ 타자는 공을 오래 보기 때문에 정확성이 높지만 타구의 비거리에서 손해를 본다. 이대호와 추신수의 스윙에는 이승엽과 김태균의 특징이 섞여 있다.

이대호의 몸은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키 1m94㎝에 체중 130㎏을 넘나드는 그는 데뷔 때부터 몸무게를 줄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타고난 유연성으로 방망이를 잘 돌리기는 하지만 살을 빼면 더욱 잘 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2007년 겨울 입산 수련을 통해 체중 조절을 시도했지만 힘이 떨어졌다.  

홈런과 삼진은 7㎝ 차이
홈런 타자들은 직구를 가장 좋아한다. 빠른 투구를 제대로 받아치면 강한 타구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고 변화구도 안심할 수 없다.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스위트 스폿’으로 불리는 배트 중심(배트 끝으로부터 7㎝ 밑부분)에 정통으로 얻어맞을 확률이 높다.

지난해 한화에서 은퇴한 송진우는 역대 최다승(210승) 투수인 동시에 가장 많은 홈런(272개)을 맞은 투수다. 다승 역대 3위(152승) 이강철 KIA 투수코치도 승리보다 많은 홈런(218개·3위)을 허용했다. 이 코치는 “홈런이 두려워 도망가다 보면 경기를 이길 수 없다. 오히려 자신감 없는 공이 홈런을 맞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모든 타자가 약한 코스는 몸쪽 높은 공이다. 팔꿈치를 향해 날아드는 투구는 무서울 뿐만 아니라 고난도 기술이 있어야 받아칠 수 있다.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는 이 코스를 공략할 줄 안다. 이곳을 겨냥한 공이 조금만 가운데로 치우치면 홈런을 얻어맞기 딱 좋다. 공 한 개(지름 약 7㎝) 차이로 삼진 존과 홈런 존이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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