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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Sports Pub]마운드 떠나는 ‘왼손 영웅’ 구대성에게 보내는 갈채

서울의 야구는 이른 봄에 시작됐다. 아니, 겨울의 끝자락이라는 말이 정확하리라. 3월이면 대통령배고교야구대회의 서울시 예선이 열렸다. 대통령배 대회는 매해 고등학교 야구 시즌을 열었다. 경기는 고등학교 운동장이나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렸다. 궂은 날에는 눈이 내렸다. 마운드에 선 투수의 모자에 눈이 하얗게 쌓였다.

부산이나 대구·광주 같은 야구 도시의 팬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아무튼 서울에서 나고 자란 기자 같은 사람에게 야구의 첫 기억은 그렇게 새겨졌다. 그러므로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 기자는 당연히 서울 청룡, 즉 MBC 청룡의 팬이었다. 우승 한 번 못해보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못난 팀. 그러나 기자는 고백하건대 여전히 이 팀에 대한 순정을 간직하고 있다.

82년 3월 27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개막전. 이종도가 끝내기 만루홈런을 쳤을 때 골수 서울팬은 숨이 넘어갈 듯했다. 청룡이 우승권에서 멀어진 다음 ‘골라 잡은’ 팀이 OB베어스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아마추어 시절의 홈런 타자 김우열과 윤동균이 베어스에서 뛰었다. 박철순의 투구도 매력적이었다. 대전 연고의 팀이었지만 구천서·구재서 등 서울 연고의 선수도 많았다.

베어스는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누르고 우승했다. 개막 시즌의 프로야구는 수미일관하듯 만루홈런으로 시작해 만루홈런으로 끝났다. 베어스의 김유동이 10월 12일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만루홈런을 쳤다. 이 홈런으로 트로피의 주인이 결정됐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기자는 개막 시즌의 프로야구를 추억하는 나이가 됐다. 추억의 첫 장에 떠오르는 이름은 결코 이종도나 김유동이 아니다. 이선희. 그들의 방망이에 희생된 불운한 투수다. 아마추어 시절의 이선희는 위대했다. 특히 국제경기에 강했다. 일본과 붙었을 때는 최고의 투구를 했다. 그의 투구는 현명하면서도 대담했다. 이 대담성이 그의 개막 시즌을 불운으로 몰아갔을지도 모른다.

기자는 왼손잡이를 좋아한다. 왠지 멋있어 보인다. 중·고등학생 시절,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가 좋았고 폴 뉴먼이 주연한 영화 ‘왼손잡이 건맨’(The Left Handed Gun)의 빌리 더 키드에 반했다.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요’라는 이상의 시구를 외며 잘난 체를 했다. 스포츠 기자가 되어서는 농구의 허재, 야구의 이승엽처럼 멋진 왼손잡이 선수들을 만났다.

최근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왼손의 영웅이 은퇴를 선언했다. 구대성(사진). 이선희처럼 구대성도 왼손 투수였고, 이선희처럼 일본에 강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그의 투구는 압도적이었다. 일본과의 경기에서 시종 공격적인 투구로 몰아붙여 한국에 동메달을 안겼다. 시드니의 마운드에 우뚝 선 구대성의 카리스마란!

41세 베테랑 투수의 은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전고·한양대를 졸업한 구대성은 한국과 일본·미국 마운드에 모두 올라 보았다. 선수로서 미련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은퇴를 바라보며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진다. 구대성의 은퇴는 또 한 시대의 황혼을 보여준다. 선수만 나이를 먹는 것은 아니다. 팬들도 스타와 더불어 나이를 먹는다. 황혼 앞에 선 사람은 한낮을 추억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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