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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나는 라탄 타타 “자라투스트라 + 쿠빌라이를 찾아라”

인도 최대 기업집단인 타타그룹(Tata Group)의 내부가 요즘 부산한다. 그룹 내 지존인 회장 자리를 넘겨주고 받는 일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면서다. 이달 초 라탄 타타(73) 회장은 후계자 선정 작업을 선언했다. 그는 “예정대로 은퇴하겠다”며 “차기 회장 선정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75세가 되는 2012년 12월에 은퇴할 예정이다. 2년 남짓 남았다.타타그룹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인도 최대다. 철강·자동차·금융·유통·호텔·정보기술(IT) 분야의 계열사를 거느려 업종 분산이 잘돼 있다. 오랜 식민지 생활을 경험한 인도인들 사이에서 타타그룹은 자존심과 동격이다. 자신들을 식민지배한 영국의 제철소 코러스와 명품 자동차 브랜드인 재규어를 사들여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국민기업 타타그룹의 권력 교체

라탄 회장이 물러나겠다고 선언했지만 그룹 장악력은 탄탄하다. 그룹 내 114개 계열사들이 그의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75세 은퇴’ 규정도 그가 만들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부의 제국(타타)을 지휘할 수 있다. 그런데도 라탄은 절정의 순간에 물러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타타그룹의 지주회사인 타타선스(Tata Sons) 이사회는 라탄의 선언 직후인 이달 4일 ‘5인 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는 회사 안팎의 인사들로 구성됐다. 이사회는 라탄 회장이 위원회 멤버인지를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국적과 종교를 뛰어넘어 타타그룹을 이끌 ‘바람직한 인물’을 찾겠다”고만 밝혔다.

매출 700억 달러, 직원만 36만 명
타타 가문은 자라투스트라의 후예들이다. 자라투스트라는 한국 내에서는 조로아스터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현재 이란 북부지방에서 태어난 예언자다. 기원전 1800년께 종교를 창시했다. 그의 이름을 따 자라투스트라교(조로아스터교)로 불린다. 불을 숭배해 배화교라고도 한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모태 종교쯤 된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타타 조상은 자라투스트라교 성직자들이었다. 이슬람의 박해를 피해 기원후 10~11세기 인도에 정착했다. 인도 사람들이 파르시(Parsi)라 부르는 마이너리티(소수자)다.

뿌리 깊은 가문에는 예외적인 인물이 한둘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19세기 성직자 가문인 타타 집안에 세속의 일(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진 인물이 탄생했다. 그가 바로 타타그룹의 창업자인 잠세트지 타타다. 라탄 회장의 증조 할아버지다. 그는 자라투스트라교의 성직자 길을 접고 1868년 면화 무역회사를 세웠다. 타타그룹의 시작이다.자라투스트라는 19세기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자라투스트라의 독일식 발음)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현자(賢者)를 상징한다. 라탄 회장도 인도 재계에서 현자로 꼽힌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타타그룹의 체력을 업그레이드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동시에 검박한 생활로도 유명하다. 아들 결혼식을 초호화로 치러 인도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인도 미탈그룹 총수와 곧잘 비교된다.

인도 사람들이 타타그룹 승계작업을 ‘자라투스트라의 후계자 찾기’로 부르는 이유다.절대 권력자가 절정기에 물러나면 자기 입맛에 맞는 인물을 후계자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라탄도 이 점을 익히 알고 있는 듯하다. 그는 후계자의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타타그룹의 글로벌화를 이끈 사람답게 부족주의적 사고방식을 거부했다. 그는 이달 9일 타타케미컬 주주총회에서 “타타그룹은 인도 회사다”며 “파르시 가운데 한 사람을 후계자로 선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후계자는 능력과 인품에서 적임자여야 한다”며 “파르시에 우호적이거나 반대하는지 여부는 따지지 말아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라탄은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는 “타타그룹은 매출액이 700억 달러(82조7000억원)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이라며 “매출액 70%를 해외시장에서 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차기 회장을 선정하면서) 파르시뿐 아니라 인도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지 말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공식적으론 오픈 콘테스트
라탄의 지침에 따라 차기 회장 선정위원회는 ‘오픈 콘테스트(공개경쟁)’를 선언했다. 위원회는 “경계와 장벽을 무시하고 적임자를 뽑겠다”고 밝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파르시는 다른 부족과 결혼한 사람을 동족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파르시가 현재 5만여 명밖에 되지 않는 까닭이다. “이런 인재풀 내에서 글로벌화한 그룹의 리더를 선정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인도 경제지 이코노믹 타임스는 16일 보도했다. 게다가 라탄 회장에게는 후손이 없다.

타타그룹이 공개경쟁을 선언했지만 인도 사람들은 타타 가문 출신이 뒤를 이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인도의 유력지인 더힌두는 18일 “라탄의 이복동생 노엘(53) 타타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고 전했다.마침 노엘의 그룹 내 위상도 높아졌다. 타타그룹은 라탄 회장이 승계작업을 공식화하기 직전인 지난달 중순 노엘을 타타인터내셔널의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 노엘은 경영 성과도 어느 정도 거뒀다. 그는 소매유통 자회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노엘은 배경도 뛰어나다. 그의 장인은 인도 출신 아일랜드 건설 부호인 팔론지 미스트리다. 재산이 60억 달러(7조원)에 달한다. 무엇보다 타타그룹의 지주회사인 타타선스의 주요 주주다. 지분율이 18.5%다. 재단 등을 뺀 개인 주주 가운데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라탄의 지분율은 8.33%이고 노엘은 5% 남짓이다. 타타선스의 1대와 2대 주주는 그룹 설립자와 4대 회장이 재산을 출연해 만든 재단이다. 타타 문중 전체가 그룹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셈이다.그런데 라탄은 왜 공개경쟁 방식을 선택했을까.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노엘의 경력이 다국적기업으로 떠오른 타타그룹을 이끌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 때문일 것”이라고 최근 전했다. 노엘이 가문 내 후보로서는 가장 유력하지만 인도에서 가장 큰 기업집단을 이끌 만한 인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지속가능 분수령에 선 타타그룹
라탄은 1991년 회장 자리에 올랐다. 제한지르 타타의 뒤를 이어서다. 제한지르는 창업자 잠세트지의 사촌의 아들(5촌)이다. 라탄의 등장은 타타그룹 경영권이 설립자 잠세트지의 방계에서 직계로 환원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제한지르의 업적도 괜찮았다. 그는 계열사 14개를 물려받아 95개로 늘렸다. 정치인에게 뇌물 주기를 거부했고 인도 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했다. 타타그룹이 ‘인도의 국민기업’ ‘인도 사회책임 경영의 개척자’란 평을 듣게 된 계기다.

제한지르의 탁월한 업적에도 그늘은 있었다. 그가 지주회사인 타타선스를 설립하기는 했지만 중앙 집권화를 충분히 달성하지는 못했다. 라탄은 사사(社史)인 '타타:기업 브랜드의 진화'에서 “내가 회장에 취임한 91년 타타그룹은 파편처럼 분열돼 있었다”며 “계열사 경영자들이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었다”고 말했다.계열사 경영자들은 처음엔 제한지르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들은 34세밖에 되지 않은 제한지르를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8년에 옹립했다. 그들은 70년대 말까지 제한지르의 버팀목으로 역할을 했다. 하지만 80년대 들어서자 제한지르의 리더십을 약화시키며 봉건 제후처럼 굴었다. 말년인 91년 제한지르는 이름뿐인 회장으로 밀려나 있었다.

라탄은 회장에 오른 뒤 브랜드 통합 작업을 시작했다. 말이 브랜드 통합 작업이지 실상은 계열사 CEO 권한을 축소하는 일이었다. 봉건 제후들의 반발은 거셌다. 그들의 주동자들은 루시 모디였다. 그는 그룹 중추인 타타스틸의 당시 CEO였다. 그룹 내 기득권 세력인 파르시계의 거두이기도 했다. 그는 온정주의적인 경영을 주장했다. 경영적인 판단보다 시혜적인 기준에 따라 임직원들에게 후한 복지 혜택을 베풀었다. 라탄은 93년 타타스틸 CEO 자리에서 그를 쫓아냈다. 라탄이 회장 자리에 오른 지 2년 뒤다.
라탄은 눈을 밖으로 돌렸다. 2004년 한국 대우상용차를 사들였고 2007년에는 영국 철강회사 코러스를 인수했다. 최근에는 영국의 자존심이라고 하는 재규어 자동차를 품에 안았다. 이런 식으로 그가 2000~2009년 사이에 사들인 해외 기업만도 20여 개에 달한다.

조지 파울로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타타그룹은 글로벌 유동성 풍년기에 공격적으로 인수합병(M&A)을 했다”며 “140여 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변곡점에 서 있기 때문에 차기 회장의 능력에 따라 그룹의 성쇠가 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계열사 114개 중 돈 버는 데는 6곳 불과
타타그룹 사사를 쓴 모르겐 위트젤은 라탄을 몽골의 5대 칸인 쿠빌라이에 견줬다. 그는 영국 인디펜던스지와 인터뷰에서 “쿠빌라이와 라탄은 모두 내분을 이겨냈고 왕국과 기업을 업그레이드해 글로벌화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쿠빌라이 이후 몽골 제국은 현상유지에 급급하다 쇠락했다. 라탄 이후 타타도 그럴 수 있다는 얘기인가.
위트젤은 “라탄의 후계자는 글로벌화한 타타그룹의 내실을 다지면서 동시에 확장을 계속 추구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며 “라탄은 사사 제작을 위한 인터뷰에서 ‘나와 닮은 사람이 나타나 그룹을 이끌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제2의 쿠빌라이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대안이 없기도 하다. 인도 시장이 거대하긴 하지만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다. 타타그룹의 차기 회장은 해외 시장과 기업을 사냥해야 한다. 동시에 “돈 버는 계열사 수를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한다”고 인도 이코노믹 타임스는 최근 전했다. 현재 타타그룹 매출과 순이익 70% 이상이 타타스틸과 자동차 등 6개 계열사에서 나오고 있다. 제대로 돈 버는 계열사가 적다는 얘기다.

FT는 지주회사인 타타선스의 한 중간 간부의 말을 빌려 “차기 회장은 계열사들의 실적 능력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그룹 순이익 기반을 더욱 확산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공격과 수비 능력을 갖춘 멀티플레이어가 차기 회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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