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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의 후계 구도와 문현진 회장



문현진 회장은 약 2년 전인 2008년 3월 아버지에게 서신을 통해 “진정으로 아버지의 꿈을 이루어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통일교의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초종교운동을 전개해나가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해 4월 문 회장은 남미 6개국을 순회하는 도중 가정연합세계 부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초종교운동' 언급한 이후부터 후계 구도에서 밀려



그를 대신해서 세계 회장에 취임한 7남 문형진 씨는 취임사를 통해 통일교의 필요성과 신학적 측면에서 통일원리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시기적으로 이때는 문 총재의 장남인 효진 씨가 사망하고 문 총재의 가정당이 총선에서 저조한 실적을 거둔 때였다.



통일그룹의 급격한 변화와 혼란은 2009년 초부터 시작됐다. 문 총재는 7남인 형진 씨를 새로운 후계자로 발탁했고, 아버지의 지시로 현진 씨는 2009년 세계 투어를 준비했지만 세 나라만 돌고 거의 강제적으로 한국으로 소환당했다. 거기에서 모든 직위에서 1년간 물러나 있으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이후 지난 1~2년 사이 현진 씨가 갖고 있던 모든 직책이 막내 동생 형진 씨에게로 넘어갔다. 현재 현진 씨는 UCI그룹 회장 직책만 갖고 있다.



이때부터 현진 씨는 통일그룹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표출했다. 문 총재가 생애에 걸쳐 일관되게 개척해왔던 운동의 기본방향이 동생들과 그에 동조하고 있는 세력들에 의해 역행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한 그의 반발은 곧 아버지에 대한 저항으로 인식됐고 형제 간의 권력다툼으로 포장됐다.



결국 그는 지난해 10월 자신이 책임 맡았던 UPF 공동의장 직책에서 해임되자, 11월 4일 세계평화대사 앞으로 짧은 서신 한 장을 발송했다. 이 서신에서 그는 문 총재가 UPF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비전과 사명은 GPF를 통해 계속 이어나갈 것임을 밝혔고, 이 GPF 활동은 더 이상 조직적으로 UPF와 관련이 없음을 밝혔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GPF재단을 별도로 세워 하나님의 뜻과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이어서 그는 작년 12월 조직의 전면적인 반대를 무릅쓰고 필리핀에서 글로벌피스컨벤션을 성공시켜 올해 활동의 발판을 마련했다. 올 상반기에만 아프리카·아시아·남미 등지를 돌면서 그의 독자적인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 문현진 회장이 마이크를 잡고 부인 곽전숙 씨(오른쪽에서 셋째)와 자녀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기독교·이슬람·유대교·불교·힌두교 등 주류 신앙들의 보편적인 원리와 가치는 80~90% 공통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통일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초종교운동을 벌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가 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습니다.”



통일교는…



막대한 자금력으로 ‘세계 경영’ 하는 한국의 20세기 신흥종교. 1920년 평안도 정주군 덕언면 상사리에서 태어난 문선명이 1954년 기독교계에서 분파해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설한 것이 시작이다. 1957년 교리서인 <원리강론(原理講論)>을 통해 교리 체계를 완성했다. 교회를 신령과 진리로 통일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 세계를 만듦으로써 하나님의 창조 이념을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삼는다. 예수가 한국에 재림할 것을 믿는다.



국내에서는 창설 초기부터 기독교단체들의 반발로 ‘이단’으로 몰리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1958년부터는 일본 등 해외 포교활동에 몰두하면서 세를 확장했다. 창립 초창기부터 세계를 활동무대로 표방한 문 총재는 1990년대 들어 활동 방향을 종교 자체보다 인류 보편가치로 전환했다. 1994년에는 창립 40년 만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는 간판을 내리고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명칭을 바꿨다.



문 총재는 1991년 북한을 방문, 김일성 주석을 만나 세계를 놀라게 한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비밀 핫라인 구실을 했다. 이 핫라인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에도 가동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사업에 공들이던 1990년대 중반 통일교는 ‘세계 경영’에도 관심을 갖고 뉴욕시 외곽 이스트가든에 자리한 수련소를 거점 삼아 낙후된 나라의 재정 지원 등으로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



국제구호친선재단을 설립해 아프리카와 남미 등 저개발국가를 지원하고 분쟁과 재난 지역에 긴급구조단을 파견하고 고아원 운영, 의료봉사, 기술교육 등을 지원해왔다. 종교색을 지우고 교육·관광·언론·스포츠 분야 등에서의 다양한 활동으로 이단(異端) 시비를 잠재우면서 날로 사회적 영향력을 키워갔다.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벌이기 위해 드는 막대한 자금은 신도의 헌금과 언론·교육·스포츠 분야의 다양한 사업체를 통해 조달했다. 세계 각국에서 해양산업과 항공기계산업, 에너지산업, 관광산업 등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국제클럽축구대항전인 피스컵축구대회도 지원한다.



2003년 34년간의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영구귀국한 문 총재는 “국가 간 전쟁을 종식하고 세계 평화운동에 기여하겠다”며 유엔에 유엔평화연합(UPF)을 창설할 계획을 꿈꾸고 있다. 일본과 미국 등지에 해외 신도 수가 10만 명에서 많게는 수백만 명이라는 설이 있으나 추산일 뿐 공식적인 통계는 나와 있지 않다. 전 세계에서 수만 명의 합동결혼식(교차결혼식)을 올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1년간 워싱턴타임스를 지원하기 위한 지원금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은 모두 깜짝 놀랄 정도로 갑작스럽게 일어났고, 미처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일어난 상황이었으며, UCI라는 조직에 부당한 부담을 안겨주었습니다.”



“중국이 일본의 많은 자산을 매입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한국과 남북 통일에 대해서도 이미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하루빨리 국제적 외교 역량을 충분히 갖추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운명이 한국 사람이 아닌 남의 나라 손으로 넘어가게 될 수도 있어요.”



□문현진 UCI그룹 회장은

1969년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3남으로 태어났다. 현재 글로벌피스페스티벌재단(GPFF) 체어맨 및 UCI그룹 회장이다. UCI그룹 산하에는 UPI통신과 워싱턴타임스가 있으며, 국제적 수산물 유통판매업체인 트루월드그룹(TWG)도 포함돼 있다. 한국의 JW 메리어트호텔을 비롯해 센트럴시티와 일성건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남미 파라과이에는 약 60만 헥타르에 달하는 토지를 개발 중이다. 4살 때 부친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줄곧 미국에서 생활했다.



컬럼비아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비즈니스스쿨(MBA)을 졸업했으며 이후 통일신학교(UTS)에서 종교교육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승마 종목에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다. 알래스카와 아프리카 등지를 돌며 사냥을 하고 캠핑을 하는 것이 취미. 1987년 결혼한 곽전숙 씨와 사이에 9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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