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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 때론 부적, 때론 선물 … 화폭이 된 골프 공

골프 공이 캔버스가 되고 있습니다. 이왈종 화백은 박세리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던 1998년부터 볼에 춘화를 그렸습니다(골프& 4월 30일 보도). 골프 라운드 중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즐기게 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습니다. 여자 프로 선수들 중에도 볼에 그림을 그리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유소연은 예쁜 돼지를 그립니다.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행운의 표지, 일종의 부적입니다. 자기 공을 식별하기 위해 하는 마커를 업그레이드시킨 그림도 있습니다. 안선주는 스누피나 해바라기를 그려넣고 최혜용은 하트를 그려넣는다. 양수진은 화가 수준입니다. 볼에 스폰지밥 같은 만화 캐릭터나 강아지 등을 그리는데 매우 정교합니다. 양수진은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골프를 하게 되면서 자신의 분신처럼 된 골프 볼에 끼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때론 골프 볼에 그림을 그리다 밤을 꼬박 지새우기도 한답니다. 골프 공에 그림을 그리는 캐디도 있습니다.



로스트 볼에 4개월 연습했죠



비에이비스타 골프장에서 일하는 캐디들이 각자 그림을 그린 골프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에서도 이숙영씨(왼쪽에서 둘째)가 선물하는 골프공이 손님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김상선 기자]
“골퍼들은 코스에 나오면 모두 아기가 되지요. 모두 자신에게 더 많은 신경을 써줬으면 하고 바라요. 남자든 여자든 똑같아요.” 경기도 이천의 비에이비스타 골프장에서 도우미로 일하는 이숙영(33)씨가 볼에 그림을 그리게 된 사연이다. 이씨는 “혼자서 골퍼 4명을 100% 만족시키기는 힘들어요. 라운드가 끝나면 골퍼들은 이런저런 불만을 갖게 되지요. 그런데 골프공에 그림을 그려 선물했더니 분위기가 확 바뀌었어요”라고 말했다.



자신의 분신 같은 골프 공을 캔버스 삼아 다양한 그림을 그리는 KLPGA 투어 프로 양수진.
캐디 6년차인 이씨는 미술을 전공하기는커녕 그림에 소질도 없었다. 그런데 지난 2월 초 이 골프장의 캐디 캡틴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냈다. “골프공에 그림을 그려서 손님들에게 ‘작은 감동’을 주자”는 것이었다. 동료 중에서 그림을 잘 그리는 권정숙(39)씨가 그림 그리기 레슨을 했다. 권씨는 그림 그리는 초보자를 위해 흔쾌히 꽃과 나비, 포도, 장미, 꽃다발, 게, 만화 캐릭터 등 각종 도안을 만들어 동료 145명에게 제공했다.



이숙영씨도 그 도안을 넘겨받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처음엔 어쩔 줄 몰랐죠. 아무리 밑그림을 보고서 그린다고 해도 영 재주가 없어서인지 더디기만 했어요. 처음 것은 그냥 단순하게 꽃잎 몇 장 그리는 정도였죠. 시간도 많이 걸렸고요.”



서툴렀던 이씨는 이제 이 골프장에서 그림 잘 그리기로 소문이 났다. 사부인 권씨에 이어 ‘넘버2’란 소릴 듣는다. 골프장에서 로스트 볼을 주워다 밤새워 집에서 그림 그리기 연습을 한 결과다. 지난 4개월 동안 내공을 쌓은 이씨의 그림은 골프장 회원들과 일반 골퍼들에게 큰 인기를 끌 정도가 됐다. 특히 장미와 꽃다발, 나비, 포도넝쿨 등의 그림은 일품이다. 색감이 화려할 뿐만 아니라 마치 인쇄한 것처럼 정교하다.



이씨는 자신이 그림을 잘 그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공에 그린 그림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고객이 ‘작은 정성’을 기쁘게 받아주신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렇게 작은 것에서 골퍼와 캐디의 유대감이 생긴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그는 캐디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다. “첫 홀은 누구나 즐겁잖아요. 그 즐거움을 18홀이 끝날 때까지 리드해 주는 사람이 바로 캐디라고 생각해요. 고객이 즐거우면 우리는 더 즐겁죠.”



이런 골퍼에게 그림 그려주지요



“15년 동안 골프를 했지만 이런 공을 선물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해 봤지요. 처음엔 그림 스티커를 붙여서 주는 줄로 알았어요. 그게 아니더군요. 손으로 직접 그린 정성이 대단하고 글귀도 마음에 들어요.” 이숙영씨로부터 지난 12일 라운드 후 골프 공을 선물받은 오세광(65)씨의 말이다. 이씨는 볼에 그림 말고도 “고객님, 오늘 우리 팀의 분위기 메이커였습니다. 즐거운 라운드 감사드립니다”라는 글귀도 함께 적었다. 이씨는 고객의 라운드 내용, 성격에 따라 감사 메시지를 함께 적어 선물한다.



플레이가 잘 안 풀리거나 볼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기면 중간중간에 분위기 전환을 위해 ‘긴급 처방’을 하기도 한다. 집에서 미리 준비한 그림 그려진 골프 공을 꺼내 “스윙이 참 멋있어요. 다음 홀에서는 버디를 할 겁니다. 힘내세요”라는 메시지를 띄운다.



중요한 비즈니스와 관련된 팀일 경우 친구들의 라운드보다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이럴 경우에도 중간중간 그림 공을 선물한다. 특별히 잘 그려주고 싶은 골퍼도 있다. ‘언니’라는 호칭 대신 이름 불러주는 골퍼, 매너와 에티켓이 좋은 골퍼, 반말하지 않는 골퍼를 만나면 동료 모두가 정성을 드려 그림을 그려준다고 한다. “1~2분에 뚝딱 그리는 그림도 있고요, 2홀에 1개, 9홀에 1개 정도를 그리기도 해요. 18홀 내내 그리는 그림도 있죠. 일주일에 한두 명 정도 그런 분을 만나요. 밑그림은 미리 로스트 볼에 그려오기도 하고요,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잠시 쉬는 그늘집 등에서 짬을 내 그리죠.”



캐디도 ‘작은 것’에 감동받는답니다



“숙영아, 네가 그려준 볼로 오늘 싱글할 거다.” 이씨는 요즘 일할 맛이 더 난다고 했다. “자주 오시는 회원들께서 좋아하세요. 경기과나 주차장 등에서 마주치는 회원들이 이전 라운드 때 받은 그림 볼로 ‘오늘 잘 치마’라며 즐거워하실 때 저도 덩달아 우쭐해져요.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가 다른 사람에게 큰 기쁨이 된다는 게 좋아요. 물론 반대로 상처가 될 때도 있죠.”



골프공에 그림을 그려 선물하면서 상반된 일도 생겼다. 진행이 늦어지기도 하고 빨라지기도 한다. “꼭 그림 공을 찾으려고 하세요. ‘그 공 잃어버리면 안 된다’면서 러프를 샅샅이 뒤지고 계곡까지 내려가 숲을 뒤지는 일도 있어요. 그래서 진행이 늦어질 때도 있어요. 어떤 분들은 그 공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더 잘 치려고 하세요. 그 때문에 한편으로는 경기 진행이 더 빨라지기도 해요. 아예, 그 볼을 안 치고 소장하시는 분들도 있죠.”



경기과의 모소현(37) 캡틴은 “골프장 고객들이 골프 볼에 그려진 그림 하나에 감동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실 때가 많은데 종업원들도 힘이 난다”고 말했다. 강상현 팀장은 “골프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면서 “캐디들이 자율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작은 그림 하나 때문에 골퍼들의 마음이 확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이숙영씨는 “좋은 그림을 보고 좋은 라운드를 하시니 앞으로 더 열심히 그림을 그리겠다”라며 활짝 웃었다.



글=창호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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