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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미당·황순원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⑧

시간을 돌아보다, 세심한 눈으로

시 - 신용목 ‘위험한 서지’ 외 21편




시인 신용목씨는 “메마르고 가파른 현실이 맨 얼굴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을 시로 기록하게 된다”고 했다.[조문규 기자]
문학청년처럼 풋풋하고 밝은 인상이지만 시인 신용목(36)씨는 등단 11년차다. 2004년 첫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2007년 두 번째 시집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 이어 내년에 세 번째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으니 나름 계획에 따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성실하게 시를 써온 게다. 공부도 할 만큼 했다. 그는 최근 대학원 박사 과정을 마쳤다.



이미 출간된 두 권의 시집 제목에는 공통적으로 ‘바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제목에서 어떤 느낌을 받으시는지. 어쩐지 신산스러운 삶 혹은 도도한 어떤 흐름 같은 게 떠오르지 않으시는지.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는 제목은 시집에 실린 첫 번째 시 ‘갈대 등본’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문장 앞에는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家長(가장)’‘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같은 시구가 있다. 바람은 아버지가 고독하고 힘겹게 겪어야 했던 세월, 풍상(風霜)인 게다.



인상과 동떨어진 신씨의 시풍은 그의 시론과 관련 있다. 신씨는 “시인이 시를 만나게 되는(그래서 시 한 편을 쓰게 되는!) 심연 같은 게 있다면 그 속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그다지 행복한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또 한 사람 본연의 모습은 생몰연대 같은 수치가 아니라 그의 고독·고통·쓸쓸함 등을 통해 온전히 드러난다고 본다.



신씨가 추천한 ‘위험한 서지’는 불투명하다. 소가 풀을 먹으면 그 영양분의 일부가 언젠가 뿔로 가긴 할 것이다. 시간의 일정한 흐름을 말하는 것일 게다. 구름의 행군도 마찬가지. 시 속 화자의 집안 생활은 어제의 날씨처럼 별 의미 없고 후줄근해 보인다. 하지만 거울, 피부, 가위표 마스크 등으로 오면 시는 혼란스럽다.



신씨는 “인간의 존재 양상을 변화시키는 시간에 대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시”라고 설명했다. 또 “집안이라는 울타리 밖에 소문처럼 존재하지만 개인의 일상을 억압하는 삶의 환경 같은 것들을 전제하고 쓴 시”라고 했다. 이런 설명으로도 시는 석연치 않다. 다만 한가지는 분명해지는 듯하다. 체념적이면서도 세심한 관찰의 시선! 예심에 참여한 시인 나희덕씨는 신씨 시가 “예전에 비해 화려하면서도 근력이 좋아진 느낌”이라고 평했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위험한 서지(書誌)



소에게 풀을 먹이고 그것이 뿔이 될 때

까지 기다린다

 

 구름의 행군이 오래 계속되었다

 집들은 양말처럼 현관을 가졌고

 

 어제가 벗어놓고 간 날씨 같았다,

 그 집에 사는 동안 아는 것은 비밀밖에

없었고 모르는 건 소문밖에 없었다 -그러

므로 침묵!

 

 거울에서 가면을 꺼내 쓰고 기다린다

거울이 피부가 될 때까지

 

 가위표 마스크를 쓰고 달력은 날마다

어제 속으로 연행되었다, 가면은 그림자

를 오려 만든 것

 가위는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이므로

 

 거울은 여러 장의 페이지로 넘어간다

 

 그 집은 너무 많은 발자국으로 더러워

졌다 구름의 왼발과 오른발 혹은 오리다

만 눈과 코- 그럼에도 침묵!

 열릴 때마다 현관은 안과 밖을 뒤집었

으며

 

 거울에는 흰 소가 검은 소로 비쳤다,

 날씨가 구름의 양말을 신고 오듯

 

 소에게 풀을 먹이고 뿔에서 꽃이 필 때

까지 기다린다 

 <시인세계 2009년 가을호 발표>



◆신용목=1974년 경남 거창 출생.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등.






아들과 아버지, 그 골 깊은 사이

소설 - 이승우 ‘칼’




소설가 이승우씨는 “내 소설이 독자들을 각성시켜 스스로 삶을 돌아보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태성 기자]
소설가 이승우(51)씨의 올해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칼’은 섬뜩하다. 칼을 품에 지니고서야 아버지를 대면할 수 있는 아들의 이야기다. 칼은 과도나 식칼 따위가 아니다. ‘해적의 검’으로 통하는 치명적인 살상무기, 즉 커틀러스(cutlass)다.



부동산 임대업자인 소설 속의 ‘남자’는 커틀러스 수집가다. ‘이 굵고 짧은 손잡이, 이 곡선의 우아함, 한 번의 스냅으로 베지 못할 것이 없는 날카로움’ 운운하며 커틀러스에 미쳐 있다. 남자는 소설의 화자인 ‘나’의 얼굴을 비켜 함부로 칼을 날린다. 칼은 나무 벽에 꽂힌다. 남자는 칼을 날린 후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다. 소설은 아버지 살해 망상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다루려는 것일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는 정반대되는 이유 때문임이 밝혀지지만 남자와 그의 아버지인 ‘노인’과의 대립은 커틀러스 칼끝처럼 첨예하다. 노인은 젊어서 엄청난 부를 쌓았지만 남자에게는 변두리 부동산 임대업만 맡길 정도로 인색하다. 한 번도 남자가 미더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인은 아내가 사망하고 얼마 후부터 원인 불명의 무서움증에 시달린다. 결정적으로, 남자가 매번 칼을 품고 자신을 만나러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남자에게 쫓기는 악몽에 시달린다. 남자는 거꾸로 노인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린다. 권위적이던 아버지에 대한 반감과 오해가 어려서부터 누적된 탓이다. 때문에 남자의 칼은 방어용이다.



이런 소설의 대립구도는 나의 사연과 맞물리며 복합적이 된다. 나는 명품만 밝히는 속물 여대생에 홀려 등록금을 날린 끝에 대학을 중퇴한다. 남자가 제안한 노인의 말상대 일을 받아들이지만, 내가 실제로 하는 일은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려 잠 못 드는 노인의 간병인 역할이다. 노인은 때때로 간병인인 나를 상대로 남자에 대한 분노를 터뜨린다. 나는 그런 노인의 눈빛에서 나를 경멸하는 내 아버지의 눈빛을 읽는다.



소설은 계간문예지 ‘자음과모음’의 올 여름호에 실렸다. 이씨는 당초 “칼이라도 품어야 자신감을 갖게 되는 무기력한 인물들을 그리려고 했”단다. 하지만 쓰다 보니 아버지 얘기가 튀어나왔다. 근본적인 힘과 권위의 상징인 아버지와의 관계를 아들이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실존적인 고민은 이씨 소설에서 익숙한 주제다. 지난해 말 출간한 장편 『한낮의 시선』만 해도 초월적인 존재인 신에게 초점을 맞추긴 했지만 아버지와의 관계가 비중 있게 등장한다. 이씨는 “인간관계에서 억눌린 상태의 사람들,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해 칼이라도 필요한 사람들을 그리는데 아버지-아들간의 갈등 관계가 유용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론가 김미현은 ‘칼’을 “연약한 인간의 생존술에 대한 슬픈 보고서”라고 평했다. 연약한 인간은 물론 아들이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이승우=1959년 전남 장흥 출생. 81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세상 밖으로』 『미궁에 대한 추측』 『오래된 일기』, 장편 『에리직톤의 초상』 『생의 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한낮의 시선』 등. 대산문학상·동서문학상·현대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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